진성코치라면 어떻게 할까?
진성코치라면 칭찬과 인정 어떻게 할까?
자만심이 아닌 자부심에 불을 붙여라
좋은 결과에 당근을 주는 방식의 칭찬은 상대에게 독이 될 개연성이 높다. 같은 결과를 산출해 칭찬을 받기 위해 실수하지 않는 방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칭찬은 Dweck이 이야기하는 성장동기를 죽인다. 또한 같은 성공에 같은 수준의 여러번의 칭찬을 받는다면 사람들은 이것을 칭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상화 효과도 있다. 더 강도가 높은 칭찬을 해주어야 하는데 이런 <더 많이 더 세게의 게임>에서는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또한 어느 정도 칭찬을 받았을 경우 칭찬을 못받는 상황이 오면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할 가능성도 높다. 성공한 결과에 집중하는 칭찬은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의 프래임으로 갈라놓는다.
성공한 결과에 집중하는 칭찬의 문제점에 대해 개선된 모형이 칭찬의 원인을 찾아서 하는 칭찬이다. 칭찬을 하려면 좋은 결과를 산출한 원인을 찾아서 칭찬의 원인과 결과 모형을 완성하고 이 완결된 시나리오 형태로 칭찬할 것을 권고하는 경향들이 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너는 무엇에 집중해서 이런 좋은 결과를 얻은 것같다”라고 칭찬하는 방식이다. 원인을 찾아서 칭찬하는 방식이 결과만 놓고 칭찬하는 방식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도 어떤 원인과 결과가 연결된 특정한 성공모형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세상이 바뀌어서 다른 모형이 필요할 경우 이전의 성공모형에 갇혀 있다면 학습이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이런 칭찬은 자만심에 불을 붙인다.
미래로의 성장욕구를 자극하는 완벽한 칭찬과 인정은 어떻게 가능할까? 진성코치라면 어떻게 할까?
원인과 좋은 결과를 연결시키는 것을 넘어서 이것이 미래의 자랑스런 자신으로 태어나는데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칭찬과 인정이 최고의 칭찬과 인정이다. 예를 들어 “X라는 원인에 집중해서 노력한 결과 Y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는데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말 잘 한 일이야. 그런데 더 자랑스러운 것은 이런 것들이 누적되면 네가 이전에 이야기 했던 너의 정체성에 대한 존재이유를 명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라는 시나리오를 이용할 수 있다. 최고의 칭찬은 과거의 성공에 대한 좋은 평가를 넘어서 이 좋은 평가가 미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불러 일으켜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학습하려는 동기를 유지할 수 있을 때 최고의 칭찬이다. 과거 성공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있겠지만 자부심은 자신에게 약속한 미래의 자신을 완성시키는 학습의 가장 큰 동력이다. 자부심은 다른 일반적 정서와 구별되는 윤리적 감정이다. 만족, 흥미, 행복 등과 같은 일반적 정서와 자부심을 중 선택하라면 모든 인간은 일반적 정서보다는 자부심이라는 윤리적 정서를 선택한다. 윤리적 정서는 조직와 인간의 존재이유를 구현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이다.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에게 어떤 때 가장 행복하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었는지 물어볼 떄가 있다. 이들 대부분의 공통된 대답은 자신이 해보고 싶었던 어려운 일을 자신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성공적으로 완수했는데 이것을 지켜보던 존경하던 상사가 자신을 칭찬해주었을 때라고 대답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례를 직장인들이 칭찬받기 위해 일한다고 잘못 귀인시킨다. 칭찬이 외재적 보상으로 작용해서 이들을 일에 몰입시킨 것이 아니라 이들을 흥분 시켰던 것은 자신이 자신 선택과 노력으로 성장을 체험했다는 존경받는 인간으로서 자부심이다. 상사는 객관적인 눈으로 이런 자부심이 타당성을 인정해줘 불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다. 그것도 자신이 존경하는 진정성이 있는 상사가 인정했다는 점이 큰 요인이다.
상사가 인정한 것은 성공적 결과를 넘어서 당신도 당신의 주체적 선택에 의해서 일을 통해 당신을 성장시키고 그럼을 통해 조직가치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동료이자 핵심인재라는 사실이다. 자신의 정체성에서 열망하던 상태에 대한 이 객관적 사실 인정이 자부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자부심은 칭찬과 인정을 넘어 나의 존재의 가치에 대해서 자신과 타인이 감사함을 전달할 때 느껴진다. 상사가 나에게 표현한 것은 칭찬도 아니고 인정도 아니고 나의 존재에 대한 진정성 있는 감사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나를 자극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허영심과 자만심을 키워주는 상사가 아니라 자신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상사에게 몸을 바친다고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