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열정이 고갈되는 이유: 양극화
창의적 열정이 고갈된 이유:
사회의 양극화
한 사회의 창의성은 두 극이 존재할 경우 이 두 극간 긴장관계가 끊어지지 않았을 때 생성된다. 사회적 에너지도 한 사회적 공동체 안에 플러스 극과 마이너스 극 두 극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두극이 항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교류할 때 생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 키가 160Cm라면 190Cm로 크려는 열망을 내재화해야 키를 키우려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다. 160cm 현 상태를 마이너스 극에 비유하면 190cm에 대한 열망은 플러스극이다. 이 두 극이 나에게 내재화되어 긴장을 유지하는 한 나는 성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내 키가 160cm라는 것만 알고 190cm의 그림이 없다면 나는 염세주의자가 된다. 또한 내가 현재 160cm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190cm의 그림만 있다면 긴장관계가 무너져 공상가로 전락한다. 모든 창의적 에너지는 두 극이 한 몸에 내재화되어 긴장관계를 창출할 수 있는 발전소 역할을 하고 있을 때에만 생긴다.
이런 현상을 두고 Fitzgerald는 “인간으로 최고 수준의 지능을 구가할 때는 반대되는 두 극단의 생각을 마음속에 담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전체의 창의성을 죽이는 암세포이다. 양극화는 사람들 마음 속에 이어져있는 이 양극을 끊어 놓기 때문이다. 양극화는 양극으로 존재하는 자기계층이 주장하는 한 가지 입장을 선택하지 못하면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는 구조이어서 자신의 계층이 주장하는 한 쪽을 현실이라고 믿고 다른 쪽을 배척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양극화라는 존재가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구속하여 다른 한 쪽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창의성의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폐쇠하는 작업이 양극화에서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창의적 지혜는 이원론적으로 나눠놓은 것들을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 어떤 사람은 이 연결을 위해 교각을 5개 세워야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2개만 세워서 연결하는 사람이 있다면 5개가 아닌 두 개로 연결하여 똑 같은 결과를 산출하는 사람을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칭한다. 나중에 한 개로 연결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이 사람은 더 창의적이 된다.
사람들은 논리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를 혼동하는 과정에서 실제에서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 맞는다는 이원론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원론은 논리의 세계의 도구인 반면 실제 세계에서는 논리적으로 이율배반적으로 나눠놓은 것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치가 창출된다. 동양에서의 음과 양을 결합해 새로운 조화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서양에서는 변증법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는 과정이다. 요즈음 창의적 기업의 문제해결 과정으로 등장한 디자인 사고도 바로 이 이원론의 양 극단에 다리를 건설하는 작업이다.
변화 대 질서, 보수와 혁신, 좌파와 우파, 비용 대 품질, 자율성 대 통제, E이론 대 O이론, 장기적 성과 대 단기적 성과는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둘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조직이나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의 블루오션을 창출한다. 이와 같이 이율배반적인 것을 결합하는 천재성 (genius of both)은 타협이나 평균과는 다른 개념이다. 타협이나 평균은 단일차원을 이야기 하지만 이율배반적인 것을 결합하는 천체성은 두 개의 독립된 차원을 가정하고 두 차원이 다 높을 수도 다 낮을 수도 하나만 높고 하나는 낮을 수 있는 상황을 모두 상정한다. 이와 같은 통합원리는 음과 양을 합해서 회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은 음으로 인정해주고 양은 양으로 인정해 줌에 의해서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여 이 차이를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창의적 지혜가 찾아오는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는 우리 정신세계를 이원론적으로 영구히 분절시키는 주범이었다. 또한 이렇게 분절된 세상을 실제 세상이라고 믿고 이를 통합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만든다. 양극화된 세상은 계층간 싸움을 넘어 창의적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를 고갈 시킨다. 사회의 정신을 영구히 굴절시켜 불구로 만든다.
실제로 많은 사회과학 연구들은 사회가 양극화되어 있을수록 창의적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하여 종교적 근본주의 성향이 판을 치고, 한 종파내에서도 교조주의가 판을 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양극화로 인한 창의성 고갈은 세대간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동성애를 혐오하고, 여성과 남성의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고, 회사에는 낙하산 인사가 많아지고, 노동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생산성과 상관없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전 국민들의 건강수준도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이 사회의 양극화로 모든 사회문제를 논리적 이원론의 싸움으로 귀결시켜 창의적 문제 해결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다른 가능성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포기하게 해서 창의성의 발전소를 부수는 주범이다. 양극화는 단순희 계층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창의성 발전소를 무너트린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소득주도 일자리 등 지금 문제가 생긴 것들을 같은 수준에서 해결하는 일을 넘어서 이런 사회적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서 이것을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가 좌충우돌하는 이유도 모든 문제를 문제의 결과의 수준에서 고식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이전 정부에서 했던 방식과 전혀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