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흐르는 혼혈의 피
우리에게는 혼혈의 피가 흐르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진실
우리는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아 혼혈민족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교육의 일환으로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보이는 다혈질이나 역동성을 볼 때 대한민국은 한번도 단일민족인적이 없다. 이 단일민족이라는 시대착오적 동굴에서 벗어나 혼혈의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단일민족에 대한 미신은 지금도 우리를 편견의 감옥에 가두고 세상이 변해감에도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도록 조정해왔다. 동굴에 가두고 벽에 비쳐진 시대의 진화와 동떨어진 그림자를 진실인 것처럼 믿게 만들었다. 동굴속에 갇혀 진실을 보지 못하면 모든 것을 그림자만 보고 올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림자가 진짜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줄을 세워야 하는 정치가들이 득세해왔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진리라고 믿고 살아왔지만 한번도 단일민족인적이 없다.
지금이라도 단일민족이라는 잘못된 신화의 가면을 벗어버리면 우리는 편견의 동굴에서 해방된다. 편견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세상은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다. 한번도 단일민족인 적이 없었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이것이 주는 무궁무진한 기회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일민족으로 채색된 애국심이 아니라 진실의 눈이다.
내가 좋아하는 황석영씨의 글 중 어느 부분에 6.25 당시 인천으로 피난 가는 장면이 나온다. 밤이 되어 토굴비슷한 곳에 숨어 있는데 북한군인지 국군인지 모르는 수색 군인들이 찾아와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채 손전등으로 위협해가며 이승만을 응원하는지 김일성을 응원하는지에 응답하라고 명령한다. 군인들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에 사는지 죽는지의 문제는 반반의 확율게임이다. 이때 황석영씨는 부친이 다음과 같이 기지를 발휘해서 가족의 생명을 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족은 너무 몽매해서 어느 쪽이 옭은지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쪽을 따라야 될지 가르쳐 주시면 지금부터 배우고 따르겠습니다>.
시대가 변했지만 아직도 황석영 가족이 6.25 난리에 경험했던 삶을 비일비재하게 경험한다. 동료들이나 친구나 이웃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네 그림자는 누구편인지를 밝힐 것을 요구한다. 좌빨인지 보수꼴통인지를 밝히라고 총구를 끊임없이 들이댄다.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더 심하다. 군인들이 황석영씨 가족에게 했던 것처럼 그나마 있는 기회를 주거나 박탈하기 위해 우리편인지를 밝힐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총구를 드리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우리에게 해오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산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해 수도없이 사살 당하지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편인지 질문에 내가 어떤 스토리로 답해왔는지에 따라 내 삶의 대부분이 결정되어 왔다.
같은 편일 경우에만 살려두겠다는 단일민족의 신화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작 답을 피할 수 없는 국면에 몰리면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답을 이원론적 양비론에서 찾는다. 이원론적 양비론에 빠지면 확율게임을 하다가 결국 어느 순간 운이 다하고 세상으로부터 퇴출당하는 불운을 경험한다. 이원론이나 양비론은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논리적으로 문제를 이해하는 시작점이지 답이 될 수는 없다. 이중 한 쪽을 답이라고 믿고 행동하는 순간 자신은 인간본질의 문제를 놓치고 편견을 홍호하는 극좌나 극우의 정치가로 전락한다. 아직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쓰는 가장 큰 총구가 빨갱이인지 수구꼴통인지이다. 우리도 이들의 질문을 받아들이면 우리도 어느 편을 들어 세상을 정치판으로 만드는데 공헌하고 있는 것이다. 공평하게 돌아가는 글로벌한 세상이 편견에 가득찬 사람에게 기회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단일민족 신화가 이념적 양비론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지금까지 가장 창의적인 답을 내는 리더들은 이원론을 연결해 제삼지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었다. 정치가들이야 이 이원론과 양비론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정치가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이원론과 양비론에 빠져 산다면 자신에게 굴러들어오는 기회의 반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형국이다.
황석영씨 부친이 살아난 비결은 회색지대의 사고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런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는 <회색지대>의 사고가 아니라 양비론을 극복하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베이스 캠프로 삼는 <제삼지대>의 사고이다. 제삼지대의 사고란 이 둘을 결합해서 더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세우는 대안적 사고이다.
단일민족과 이원론의 신화적 미신으로 가득한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은 죽음으로 치닫는 것이다. 인간의 살아있는 진리를 제대로 볼 수도 없고 살아 있는 진리를 놓친다면 제대로 살 수 있는 삶의 기회도 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편견의 감옥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찾아서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답을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온통 기회의 땅인 것이다.
우리는 한번도 단일민족이어본 적이 없다. 한국사람들이 가진 다혈질이나 변화를 지향하는 성질은 다 혼혈의 기질이 발현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혼혈의 피가 흐르고 있다. 단일민족 신화는 정치가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의 감옥이다. 이런 단일민족의 이데올로기가 진화한 형태인 단일민족이나 수구꼴통이니 빨갱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 정치인들을 사라져야 나라가 New Normal을 벗어나는 열쇠를 얻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