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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전을 잃은 증거

Mar 31, 2019 ·2분 ·jkyoon · 2,213

우리가 비전을 잃었다는 증거?
이카루스의 눈

본인이 장님이었다가 어느 날 기적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볼 수 있는 능력인 비전을 회복한 후 맹인은 무엇을 가장 먼저 보고 싶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눈을 뜨고 있어도 자신의 모습을 모르고 있다면 이미 비전을 상실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비전을 상실하는 것일까?

이카루스의 날개 원리가 설명해준다. 자신의 날개가 밀납으로 봉해졌음에도 이것을 잊어버리고 탐욕을 극대화시켜 태양을 향해 솟아 오를 때이다. 우선 순위를 보면 탐욕 때문에 태양을 보지 못하고 이미 눈이 멀었을 것이다. 비전을 상실했음에도 탐욕 때문에 태양을 향해 계속날아 오르게되고 결국 밀납이 태양에 녹아내려 완전히 추락하는 순간까지 날게 된다. 결국 탐욕이 자신의 눈을 멀게한 것이다. 탐욕이 비전상실의 주범이다. 이렇게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이 찾아나서는 것이 사막의 신기루이다.

비전은 목적을 각성하고 여기에 믿음을 획득했을 때 보지 못하던 기회의 세상을 보게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보게된 새로운 세상이 비전이다. 목적은 비전을 볼 수 있게 하는 안경이다. 목적을 잃는 순간 사람들은 탐욕의 노예가 된다. 목적을 잃는 순간 자아가 탐욕으로 부풀려지고 있음에도 자신만 알아차리지 못한다. 눈이 있어도 이렇게 부풀려진 자신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다.

목적과 사명을 상실해서 결국 비전을 상실한 회사들이 자주 찾는 경영 전략이 몆년 후 매출 얼마를 달성하겠다는 것을 비전으로 주장하는 일이다. 직원들 누구도 이 비전을 믿지 않는다. 신기루에 홀린 것이다. 비전은 자신의 탐욕적인 목표를 확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표의 목적지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이나 회사가 지금의 목적과 목표간 갭을 줄일 수 있는 지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때만 생성된다. 이미 목적과 사명을 상실한 회사에서 숫자로 제시된 비전은 회사의 탐욕의 크기일 뿐 다른 고상한 의미는 없다.

이미 비전을 상실한 회사에는 자칭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서 비전을 이야기하지만 이들의 비전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교묘히 포장한 것들이다. 이들에 의해 회사가 장악되면 회사는 이들의 정치력에 놀아나기 시작해 비전이 회복 불가능한 회사로 전락한다.

요즈음에 글로벌에서 CEO를 선발할 때 가장 중시하는 능력으로 자기이해(self awareness)를 설정하고 선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CEO가 자기이해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나도 비전이 없는 장님이기 때문이다. 자기이해 능력이 없다는 것은 비전은 고사하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도 분간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고백이다. 이런 장님에게 회사를 맡길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에는 CEO가 비전을 상실해 회사나 종업원들이 사막에서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회사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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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