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대한민국을 납치했다
학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납치했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선댄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비롯해 유수영화제를 감동시킨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를 드디어 관람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해온 리사는 시인을 꿈꾼다. 평생교육원에서 시 수업도 듣고 있다. 시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재능은 따라주지 못한다. 어느 날 리사는 자신의 유치원 생 지미가 읊는 시를 듣고 지미의 천재성을 발견한다.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가호처럼”
‘황소가 뒤뜰에 홀로 서 있다/ 캄캄한 어둠 속에/ 문을 열고 한 걸음 다가갔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스쳐가고/ 소는 푸른 눈을 들어 나를 봤다/ 살기 위해 몰아쉬듯 계속 숨을 뱉었다/ 그런 소는 필요없다 난 어린 소년이니/ 그렇다고 말해 줘/ 어서 그렇다고 말해 주렴.’
황소에 관한 시는 지미의 미래에 대한 암시이다. 사회는 지미의 시인의 재능보다는 기득권이 인정하는 근사한 직업이라고 규정한 소를 보내 지미의 재능을 빼앗으려 넘보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안해도 성적을 잘 받아오는 자식들은 리사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리사는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 자신의 열망을 살리기 위해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처럼 낮잠을 즐기려는 천재시인 지미를 깨워서 영감을 주려고 노력한다.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고 지미에게 영감을 주어서 지미의 영감이 넘치는 시를 향유하기 위해 지미를 납치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지미가 경찰에 자신이 <납치> 당했다고 신고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자신의 천재성이 생계에게 납치된 줄도 모르고 성인이 된 어른들이 유년기 천재성을 그리워하는 단순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학교가 어떻게 아이들의 창의성을 죽이고 있는지에 대한 고발영화로 읽혔다.
피카소도 예언하고 있듯이 <학교가 그들의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박탈하기 전까지 모든 소년 소녀들은 다 타고난 예술가였다>. 학교가 수학과 언어를 공부를 통한 성취의 제일 높은 곳에 올려 놓고 모든 학생을 대학교수, 판사, 의사로 키우는 동안 우리의 예술가로서의 재능도 죽었다. 나도 유년기에는 시인을 꿈꾼적이 있었지만 결국 학교가 내 재능을 살려두지 않았다. 틀리지 않고 수학과 언어 시험을 풀 수 있는 능력만을 강조하고 다른 것을 폄하하는 교육시스템은 산업사회 시대의 패러다임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를 인지 언어지능이 뛰어난 대학교수가 되도록 가르칠 필요가 없지만 산업사회의 교육은 모두를 대학교수가 되는 꿈을 가지도록 독려해가며 교육에 매진했다.
<즉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딩 선생님이 너희가 향유하는 오늘은 시인들이 그렇게 열망했던 내일이라는 말에 감동해서 학생들에게 오랫동안 까르피디엠을 외친적도 있었다. 키딩선생의 학생들은 모두가 뛰어난 시인이었다. 단지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와 사회적 기대가 이들의 시인의 재능을 납치해서 이들 가슴 깊은 곳에 가두었을 뿐이다. 키딩 선생은 납치된 시인의 재능을 해방시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도 키딩선생님은 사라지고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재능을 납치해서 감옥에 보내는 스카이캐슬의 집행관들이 선생이라는 완장을 달고 학교를 장악했다.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면 적어도 15년내지는 20년 안에 우리가 인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전문직종이라고 알려진 변호사 판사 의사 교수 회계사 등의 직종은 다 AI에 의해서 외주화 될 예정이다. 이들이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직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일 것이다.
미래는 수학과 언어 시험에서 틀리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지능의 다양성이 존중될 때 제대로 창출될 것이다. 미래의 전문직종은 가드너의 다중지능 중 언어와 수학지능을 넘어서 춤추고 운동하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능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전문직종이 재편될 것이다. 둘째, 미래의 지능은 수학과 언어에서 틀리지 않는 것보다 실수를 통해 학습하고 혁신하고 창조할 수 있는 지능의 역동성 중심으로 발전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서 탈취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실존지능, 성찰지능, 관계지능, 맥락지능을 발전시키는 쪽에서 미래의 전문가들이 탄생할 것이다.
우리 미래를 납치한 것은 스카이캐슬로 대변되는 교육시스템이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보다 다양한 지능과, 지능의 역동성과 인간의 실존을 구현하는 지능을 개발하는 쪽으로 혁신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죽은 시인들이 부활해 젊은이들의 영감을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미래를 창출하는 선두에 서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생존했던 방식인 남들 하는 것 따라하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하다 결국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키딩선생님과 죽은 시인들을 살려내는데 온 나라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