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가르치는 방향을 보라
손가락이 가르치는 방향을 보라는 주장
코드인사의 부메랑
리더가 자신의 추종자에게 <자신의 손가락을 보지말고 자신의 손이 가르키는 방향을 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추종자들보다는 이 리더에게 있을 소지가 더 크다.
진성리더의 정의에 해당하는 리더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도움을 받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꽉지낀 것처럼 맞물린 온전성의 삶을 살고 있을 경우에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둘이 벌어지지 않도록 측은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진성리더이고 진정성이 배태된 삶을 사는 신실한 사람들이다.
유사리더는 자신에게는 하는 이야기는 탐욕과 욕심과 자신의 이익을 더 실현시키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구성원에게 들킬 경우 구성원들이 도와줄리가 없으므로 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진성리더들보다 더 진정성 있는 모습을 연기한다. 연기의 이유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함이다.
이런 유사리더들의 자신의 속마음이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가락을 사용하므로 이들의 손가락 방향은 일관되지 않는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손이 가르치는 방향을 신뢰하지 못한다. 이런 리더들은 자신이 가르키는 손의 방향의 끝에 있는 목적을 자신도 잘 모르고 평소 행동으로도 보여주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말로는 목적에 대해 현란하게 이야기한다.추종자들은 명목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리더의 손가락이 가르치는 방향을 신뢰하기보다는 리더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서 손만을 살피게 된다. 리더가 내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을 보라고 주장한다면 사실은 내 손가락의 방향을 보지말고 내 속마음을 제대로 읽으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이런 리더의 성향은 코드인사를 만드는 주범이다. 문제가 심각해지면 박근혜정부에서 기승을 부렸던 리더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감별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리더와 오랫동안 같이 생활을 같이 한 사람들 아니고는 리더의 속마음을 제대 읽을 수 있는 감별사가 되기 힘들다. 손가락을 보라고 주장하는 리더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감별사임을 주장하는 그룹사이의 경쟁시작된다. 정치적 파벌이 생긴 원천이다. 리더는 이 파벌들간 자신의 마음을 읽기 위한 경쟁을 즐긴다. 이 파벌 싸움의 종착역은 리더에 대한 우상화이다. 리더가 가르치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사람을 두고 그냥 우상화시키는 것이다. 리더가 우상화되면 더 이상의 정치적 진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정치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레이저빔을 쏠 수 있는 카리스마까지 겸비한다면 이 리더 중심으로 우상화 될 개연성은 더욱 높아진다. 목적자체에 대한 믿음보다는 리더의 속마음이 중시되는 정치는 코드정치를 만들어낸다.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몇몇 사람들을 중심으로 파당화된다.
진성리더가 펴는 정치는 이런 우상화에서 벗어난 목적지향적 정치다. 리더가 가르치는 방향인 목적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 목적이 뜻하는 의미가 분명해서 이견이 창출될 수 없다. 동원되는 모든 인적 물전 자원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사분란하게 정렬된다. 리더는 추종자보다 더 이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더 희생적으로 서번트 역할을 수행한다. 목적이 너무 분명해서 손가락을 들어 추종자에게 목적을 가르칠 일이 없다. 목적에 대해 제대로 된 서번트 역할을 하는 리더가 우상화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은 분명 코드정치가 분명해보이는데 코드정치를 극복하겠다고 나섰던 현정권은 코드인사가 많이 줄었을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낙하산 파동이라든지 장관이나 헌법재판관 인사검증에서 보이는 지속되는 실기를 보면서 지금 정권에서도 코드정치가 기지게를 펴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코드인사는 목적을 중심으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리더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 사람의 마음과 같은 생각을 가진 감별사들에게만 자리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의 마음을 제대로 감별할 수 있을 정도로 리더와 인간적 연줄이 닿아 있지 않다면 아무리 목적에 대한 믿음이 있고 이 목적을 구현할 능력이 있어도 코드인사에서는 등용되지 못한다. 리더와 인간적으로 친한 동지만 등용되는 것이다.
진성리더가 염원하는 목적지향적 정치는 이런 코드인사의 관행에서 자유롭다. 목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어서 이 목적에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 목적을 구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리더와 인연이나 친분이 없어도 광범위하게 등용된다. 이 인사가 핍박받는 소수집단의 배경을 가지고 있을수록 발탁될 개연성은 오히려 높다. 동지로 취급되는 기준이 리더와의 혈연 지연 학연 친분이 아니라 목적에 대한 믿음의 정도와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의 정도에 의해서 분류되기 때문에 정실인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능력과 믿음만 공유한다면 누구나 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들이 부여된다. 목적에 대한 신념이 분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코드인사와 낙하산 인사의 병폐가 벌어지는 이유는 목적에 대한 신념이 불분명하거나 개인적 탐욕이나 동지애가 이 목적을 앞서기 때문이다. 코드인사는 미래의 목적을 구현하는 것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동지들의 노고에 보상에 맞춰져 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목적에 대한 믿음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목적에 대한 나침반이 없는 리더가 매일 지형이 변화하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을 개연성은 전무하다. 인재등용의 참사를 피하기 위해서 현정부는 인재를 등용하는데 코드를 벗어나 보다 포괄적 철학과 식견을 가진 사람들을 과감하게 등용할 필요가 있다. 방향만 같다면 야당의 인사들도 과감하게 등용해야 할 시점이다,
몇몇 동지를 먹여살리기 위해 국가를 헐값에 파는 일을 하지 않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