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유리감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용기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가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유리감옥에 갇혀살고 있다. 이 유리감옥에 갇힌 삶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서 있을 경우 우리는 이 유리감옥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삶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용기는 아무에게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용기는 삶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갖춘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삶에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알린다.
세상이 유리감옥인 이유는 우리가 실제한다고 받아들인 것들은 믿음을 통해 구성되어진 것들이다. 잘 작동되는 삶의 원리를 발견하면 이것을 암묵적으로 믿기시작하면 이 믿음은 단단한 현실을 만든다. 과거에 작동되던 방식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 유리감옥이 되어 우리를 가둔다. 유리감옥은 우리에게 과거 익숙함에 대한 편안함을 선사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안락함에 젖어서 유리감옥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이 보이지 않는 유리감옥에서의 삶을 아포리아의 삶이라고 명한다면 이 감옥에서 탈출해서 자유를 만끽하는 삶은 방황과 여행으로 채워진 디아스포라의 삶이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자유의 삶이기도 하지만 사막 속에서 길을 헤메고 방황하는 고난의 삶이기도 하다. 방황을 통해 모두가 진짜 자신만의 오아시스나 새로운 가나안을 찾는다면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해 두려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포리의 유리감옥에 갇혀있다는 것을 이해해도 이런 삶에서 탈출이 어려운 것은 디아스포라의 삶이 반드시 오아시스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포리아의 감옥에서 탈출해서 디아스포라의 방황을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집시가 되거나 미궁에 빠져서 길을 찾지 못하는 삶을 살게된다. 이스라엘은 수백년의 디아스포라를 거쳐서야 지금의 이스라엘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디아스포라의 삶이 주는 혼동과 방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포리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리감옥에 갇혀서 영원히 아포리아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마도 과거에 고착된 삶을 사는 것일 것이다. 이 아포리아에서 탈출해서 방황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이 아마도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일 것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현재는 방황이다. 이들에게 이 방황을 통해 오아시스를 찾는 삶이 아마도 미래의 삶의 목적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리감옥을 탈출하지 못해 과거의 삶으로 삶을 종결하는 사람도 있고, 탈출에 성공해서 방황해가며 현재의 디아스포라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미래의 오아시스를 발견해서 방황의 종지부를 찍는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유리감옥에 갇혀있음을 이해하고 여기서 탈출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만이 아포리아의 유리감옥을 벗어나는 용기를 획득할 것이다. 누구나 이런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를 희망하지는 않는다. 감옥의 편안함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려는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미래를 선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유리감옥에서 벗어나 디아스포라의 영웅의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모세의 삶을 선사한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