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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다

Aug 15, 2019 ·3분 ·jkyoon · 2,858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창대한 끝의 원리
근원적 변화와 급진적 거북이

욥기에서 자주 인용되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라는 언구는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말씀이 아니라 욥의 세 친구 중 한명인 발닷이 한 말이다. 발닷은 믿음은 없으나 하나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리에 대한 이론에는 비교적 해박한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중에 발닷에게 신앙은 이렇게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 친구 욥처럼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근육이 있어야 창대함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훈계한다.

같은 창대함을 놓고 하나님의 해석과 발닷의 해석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혼돈이론에서도 비슷한 예측을 한다. 세상에 큰 충격을 주는 거대한 현상의 발현을 살펴보면 논리적이고 인과적 선형적 추론으로 예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으로 발현된다고 설명한다. 북경의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논리적이고 선형적 설명에서는 그냥 공기 중의 파장으로 끝나지만 어떤 경우는 태풍을 일으키고 이 태풍이 태평양을 건너 맨하턴의 빌딩을 무너트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초연결시대는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혼돈이론에서는 나비의 날갯짓 속에 함축되어 있는 초기값에 초점을 맞춘다. 이 초기값이 초연결시대에 숨겨진 패턴들과 공명될 수 있는 어떤 형태(fractal)을 갖추었다면 이 날개짓은 숨겨진 패턴속에 공명을 창출하고 이 공명이 더 큰 공명을 만들어 결국 태풍을 만든다.

<황금수도꼭지: 목적경영이 이끈 기적>에서는 이 초기값을 변화의 종착지인 미래에 거하는 목적이라 규정한다. 나비가 미래에 거하는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날개짓 속에 끼워넣을 수 있다면 이 날개짓은 공기중의 파장으로 끝나지 않고 태풍을 일으킬 수 있을 개연성을 초일류기업의 사례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명한다.

목적경영을 통해 미래의 근원적 변화를 만든 사람들은 급진적 거북이라는 원칙을 준수한다. 급진적 거북이들은 미래의 목적에 대한 믿음에서는 급진성을 보이지만 이 목적과 현재의 현실사이의 갭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큰 갭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들이 제안하는 것이 바로 거북이 방식이다. 거북이가 하는 방식으로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당장할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할 것을 조언한다. 거북이는 이 계곡이 아무리 길다하더라도 계곡의 이쪽과 저쪽 끝을 연결하는 다리는 교각의 숫자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건설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각 하나 세우고 다리를 완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결국 다리를 건설하지 못한다고 본다. 또한 거북이가 토끼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목적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한 발거름 한 발거름에 다 녹녹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리의 교각인셈이다. 토끼와는 달리 거북이는 이 목적에 대한 각성 때문에 한 눈을 팔거나 잠을 잘 수도 없다. 이런 싸움에서 거북이가 진다면 논리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 모든 성공이 한 판 승으로 끝난다면 아직도 이기는 토끼가 많겠지만 세상의 성공은 반복적인 게임을 통해 마지막 승자가 승자가 되는 방식으로 돌아간다.

세상의 근원적 변화는 미래에 거하는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삶과 비즈니스 속에 씨앗으로 깨워넣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 목적이 바로 혼돈이론에서 이야기 하는 초기값을 구성한다. 목적은 미래에서 가져온 초기값이므로 미래의 시간을 염두에 두고 근원적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여행자들에게 공명을 창출한다. 목적경영에서는 목적의 씨앗을 썪혀서 뿌리가 내리도록 돕고 이 뿌리를 기반으로 과일나무를 길러내는데 성공한다면 이 과일을 통해 미래에 대해서 설파하는 방식이 초우량기업이나 지금까지 세상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미래를 만든 방식이다. 지금 당장 목적의 씨앗을 과일나무로 길러내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미래를 설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발닷에게 깨우쳐주시고 싶으셨던 원리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고 막막한 상황과 토양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선한 믿음을 잃지 않고 이 믿음의 겨자 씨앗을 발아시켜 좋은 겨자나무로 키우고 실제 겨자을 얻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가를 가르쳐주시고 싶었을 것이다.

근원적 변화란 미래의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 자신의 일과 비즈니스의 토양에서 발아시켜 지금 당장 과일나무를 만들어내는 혁신의 과정이다. 이 과일을 통해 미래를 맛보게 할 수 있는 사람들만 미래를 선도했다. 과일나무를 길러내는 혁신의 과정은 생각보다 지난한 과정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의 근육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과정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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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