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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전을 상실한 증거

Aug 15, 2019 ·4분 ·jkyoon · 2,563

내가 이미 비전을 상실했다는 증거
눈뜬 장님의 비애

자기가 자기 자신조차 보지 못한다면 당연히 비전을 상실한 것이다. 또한 위기는 보지 못하고 기회만을 본다면 역시 비전을 상실한 것이다. 약점과 고통을 보지 못하고 강점만 보는 것도 비전을 상실한 증거다. 비전은 온전한 눈으로 세상을 높은 곳에서 더 깊숙한 곳에서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내가 아는 주변의 경영자를 중에도 아직도 5년 후 회사의 매출이 1조 클럽에 들어가는 것이 회사의 비전이라고 자연스럽게 설명하시는 분들이 많다. 또한 어떤 분은 회사가 업계에서 매출 상으로 1위나 2위로 등극하는 것을 핵심비전이라고 설명한다. 경영전략에 경도된 경영자들의 흔히 범하는 오류이다.

비전의 원래의 의미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답인 목적이 믿음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파생되었다. 처음 설정한 목적은 될지 안될지가 불확실한 가정이다. 하지만 이 가정에 대한 상상적 체험이나 실질적 체험의 축적은 가정의 상태를 믿음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목적이 가정의 상태에서 믿음의 상태로 전환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에 대한 명료한 비전을 획득한다. 가정은 가정에서 주장한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상태여서 제시하는 그림이 명료하지 않다. 하지만 목적이 믿음으로 바뀌면 이 목적의 실현가능성과 관련해 불확실한 요소들이 제거되어 세상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비전이란 목적에 대한 믿음과 철학을 획득하는 순간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게되는 경험이다. 비전이란 믿음과 철학의 눈으로 발견한 목적 세상이다. 전략에서 설정하는 5년내 1조 클럽 달성이나 매출 일등 기업으로 태어나는 상상은 비전이 아니라 큰 목표일 뿐이다. 설사 5년 후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해도 그것 때문에 결국 목적으로 향하는 길을 잃었다면 처음부터 비전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런 사막의 신기루 비전은 경기가 살아 있던 신자유주의 경제시대에는 나름대로 성과로 연결될 개연성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L자 불경기에서 이런 비전을 앞세운다는 것은 회사전체가 갑질로 막을 내릴 개연성을 높혀준다. 글로벌 초인류기업에서는 이런 비전을 더 이상 비전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비전을 가지지 못한 기업들은 항상 신기루 같은 큰 목표를 비전이라고 주장해왔다.

제대로 된 비전은 목적에 대한 믿음과 철학 때문에 못보던 것을 보게되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비전의 눈을 획득했을 때 가장 많이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다. 장님들도 정상인사람보다 더 훌륭한 비전을 가진 분들이 많다. 눈을 뜨고 있어도 자신이 누군지 보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비전을 상실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이유인 목적에 대한 비전을 획득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 과거에 대해서도 더 잘 보게되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현재에 대해서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획득한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에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목적에 대한 믿음과 철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대게는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현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에서 대답이 끝난다. 지금 선 자리에서 어떤 궁극적 목적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과거, 현재, 미래가 포함된 정체성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존재이유에 대한 답인 목적에 대한 믿음과 철학 즉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담겨 있지 않고 이것을 큰 숫자로 채워넣는다고 미래의 정체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정체성은 목적에 대한 믿음의 눈인 비전이 자신의 과거, 현재를 정확하게 성찰할 수 있을 때에만 생성된다.

요즈음 글로벌 기업에서 CEO를 영입하는 핵심적 기준은 자기이해 능력이다. 경영자가 자신에 대한 비전을 잃었는지가 핵심적 기준으로 등장한 것이다. 자기이해 능력은 자신의 존재이유 즉 목적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 즉 비전이 있는 사람들이 향유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진기업들에서 임원급의 리더십 교육들은 모두 자기이해능력이 주축을 이룬다. 요즈음 세상은 목표를 향해서 일직선으로 누가 빨리 달려가는지가 관건이 아니라 목표점을 넘어 마지막 목적지까지 길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비전이 있는 사람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분절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나침반으로 작동하는 자기이해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길을 잃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비전은 목표지점까지 경쟁자보다 빨리 갈 수 있는 능력이 아니나 길을 잃지 않는 능력이다. 전략지향의 CEO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큰 목표를 비전으로 믿고 구성원들을 광풍처럼 몰아친다. 또한 이들은 어쩌다 한 두 번 정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만 결국은 발을 헛디뎌서 실기하고 무너진다.

제대로 된 목적에 대한 철학과 믿음으로 못보던 세상을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비전을 획득했다면 세상의 변화와 함께 오는 기회도 볼 수 있지만 위기도 볼 수 있다. 기회만 보고 위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대로된 비전을 획득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신의 장점만 보고 약점과 아픔과 고통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이분들도 제대로 된 비전을 가진 분들은 아니다.

목적에 대한 믿음과 철학을 근거로 제대로된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철학과 믿음도 없이 장대한 목표를 비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경영자로서의 뛰어난 능력이다. 목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장대한 목표는 비전이 아니라 비전을 현혹시키는 신기루일 뿐이다. 지금과 같이 변화가 상수가 된 초연결디지털 혁명시대에 이런 경영자들이 조직을 장악하면 조직은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수순을 밟는다. 눈뜬 장님에게 회사를 맡긴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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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