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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창의적이 될 수 있을까?

Aug 16, 2019 ·5분 ·jkyoon · 3,214

나도 창의적이 될 수 있을까?
맥락적 사고의 힘

상상을 해보자. 내가 내 삶에서 최고의 창의성을 누렸을 때는 언제였을까? 내 안에서 플러스 극과 마이너스 극 두 극이 분명히 존재하고 이 두극이 항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교류했을 때였을 것이다. 창의성은 이처럼 두 극간 긴장관계가 끊어지지 않았을 때 생성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Fitzgerald는 “인간으로 최고 수준의 지능을 구가할 때는 반대되는 두 극단의 생각을 마음속에 담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원론을 극대화 시키는 양극화는 사회전체의 창의성을 죽이는 암세포이다. 양극화는 사람들 마음 속에 이어져있는 이 양극을 끊어 놓는다. 양극화는 양극으로 존재하는 자기계층이 주장하는 한 가지 입장을 선택하지 못하면 집단에서 왕따를 당하는 구조이어서 자신의 계층이 주장하는 한 쪽을 현실이라고 믿고 다른 쪽을 배척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양극화라는 존재가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구속하여 다른 한 쪽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창의성의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폐쇠하는 작업이 양극화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논리의 세계와 실제의 세계를 혼동하는 과정에서 실제에서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 맞는다는 이원론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원론은 논리의 세계의 도구인 반면 실제 일이 벌어지는 실용성의 세계에서는 논리적으로 이율배반적으로 나눠놓은 것을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치가 창출된다. 동양에서의 음과 양을 결합해 새로운 조화와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서양에서는 변증법적으로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는 과정이다. 요즈음 창의적 기업의 문제해결 과정으로 등장한 디자인 사고도 바로 이 이원론의 양 극단에 다리를 건설하는 작업이다. 이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이어서 머리가 뛰어난 사람처럼보이지만 이원론자들은 헛똑똑이들이다. 세상을 새롭게 만든 창의적이고 머리가 총명한 사람들은 이 이원론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이원론의 함정을 어떻게 벗어나서 창의성을 구가할 수 있을까? 나도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당연하다. 생각보다 원리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이원론에서 주장하는 두축을 그림에서 처럼 한 차원의 양극단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직각으로 놓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하나를 씨줄로 놓고 다른 하나를 경줄로 놓고 이 두가지가 다 높은 차원에서의 대안을 찾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상대의 텍스트와 나의 텍스트를 결합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나가는 맥락적 사고의 원리이다. 맥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지능수준에서 가장 높은 창의적 지능을 구가하는 사람들이다. 맥락적 사고 능력은 이원론의 두축을 직각으로 씨줄과 날줄로 생각하는 직각적 사고로의 전환을 통해서 달성된다.

변화 대 질서, 보수와 혁신, 좌파와 우파, 비용 대 품질, 자율성 대 통제, E이론 대 O이론, 장기적 성과 대 단기적 성과는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둘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직각으로 결합해서 맥락을 만들 수 있다면 창의적 지혜의 블루오션을 창출한다. 둘 사이의 관계를 이원론적 제로섬의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맥락적 사고로 전환해 플러스 섬의 관계로 조망하려는 쪽으로 시각을 전환하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블루오션의 영역은 수도 없이 발견된다.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듯이 이와 같이 이율배반적인 것을 결합하는 천재성 (genius of both)은 타협이나 평균과는 다른 개념이다. 타협이나 평균은 두 극단을 한 차원의 양극으로 놓고 중간을 찾는 양극화 문제의 야합이다. 정치가들이 양극화를 추구하다 자원이 고갈되면 이것을 답으로 생각하는 방식이지 맥락적 지능을 구사하는 최고의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구사하는 전략은 아니다.

단일차원을 넘어서 이율배반적인 것을 씨줄과 날줄로 결합하는 맥락적 사고는 두 개의 독립된 차원을 가정하고 두 차원이 다 높을 수도 다 낮을 수도 하나만 높고 하나는 낮을 수 있는 상황을 전데로 함에서 시작된다. 이와 같은 통합원리는 음과 양을 합해서 회색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은 음으로 인정해주고 양은 양으로 인정해 줌에 의해서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이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여 이 차이를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맥락적 지혜가 찾아오는 것이다. 학자들이 개념을 만들기 위해 양극화 시킨 것들이나 정치가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양극화 시킨 것은 찾아보면 창의성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들이 잘못 시작해놓은 양극단을 직각적 차원으로 바꿔 맥락화 하는 작업에 성공할 수 있다면 누구나 창의적이고 맥락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창의적인 문제거리는 세상에 널려 있는 셈이다. 맥락적 사고로 사고의 전화만 된다면 누구나 창의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맥락적 사고의 부재는 사회문제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총구이다. 이원론적 입장을 극단화 시킨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사회수준에서 창의적 에너지가 어떻게 고갈되는지를 밝히는 사회과학적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이 연구들이 시사하는 공통점은 사회가 양극화되어 있을수록 창의적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하여 종교적 근본주의 성향이 판을 치고, 한 종파내에서도 교조주의가 판을 친다. 또한 양극화로 인한 창의성 고갈은 세대간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동성애를 혐오하고, 여성과 남성의 근본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만들고, 회사에는 낙하산 인사가 많아지고, 노동의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생산성과 상관없이 최고경영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전 국민들의 건강수준도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의 원천이 사회가 맥락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밥그릇을 중심으로 양극화된 정치싸움 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사회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는 문제를 논리적 이원론의 싸움으로 귀결시켜 맥락적 문제 해결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이원론에 기반한 양극화가 다른 가능성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포기하게 해서 창의성의 발전소를 부수는 주범이다. 양극화는 단순희 계층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창의성 발전소를 무너트린다. 정부가 해야할 일은 소득주도 일자리 등 경제학자들이 개념을 만들기 위해 이원론으로 나눠논 것을 밀고 나가 양극화의 문제를 더 극단화 시키기 보다는 지금이라도 맥락적 사고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푸는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지금 정부가 좌충우돌하는 이유도 모든 문제를 문제의 결과의 수준에서 이원론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 때문이다. 학교도 양극화를 부축이는 암기식 커리큘럼이 폐기되고 진정한 창의성 교육이 커리큘럼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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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