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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가져다 준 7가지 기적

Oct 3, 2019 ·5분 ·jkyoon · 3,021

목적이 가져다 준 일곱가지 기적
목적에 대한 이해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의 Bill George는 2015년 10월 목적(purpose)을 은유하는 <진북 (True North)>을 출간했다. 조지의 공저자였던 Nick Craig가 2018년 6월 <목적으로부터 이끌기 (Leading from Purpose)>란 책을 출간했다. 본인은 한달 전인 2018년 5월 <Mangement by Purpose(황금수도꼭지)>란 책을 내놓았다. 이어서 우리에게는 딥체인지 이론으로 유명한 미시간대학의 Robert Quinn 교수가 2019년 8월 <목적의 경제학 (Economics of Higher Purpose)> 출간했다.

목적(purpose)이란 자신과 조직이 세상에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나나 우리 회사가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더 건강해지고, 더 따뜻해지고, 더 행복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목적이다.

실제로 목적경영을 통해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을 가진 빌 조지의 영향으로 비슷한 시기에 신자유주의 경제가 퇴조하고 목적경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예고하는 책들이 연달아 출간된 것이다. 다른 점도 많았지만 George, Craig, Yoon, Quinn이 목적경제에 근본적 가정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저술에서 합의하고 있는 목적에 대한 공통된 개념과 목적이 이끄는 삶의 7가지 편익들을 정리해봤다.

첫째, 목적은 의미의 관정이다. 목적은 우리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이 목적이 삶의 맥락과 만나서 이 맥락을 적셔줄 때 우리는 의미을 체험하고 의미가 담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목적의 관정이 메말라 있었다면 삶의 의미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행복이란 실체도 없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추구해온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Eudemonia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목적의 관정에서 퍼올려진 생명수가 삶과 만나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체험에 불과하다. 세상사람들이 파랑새처럼 따라다니는 소확행이란 행복도 목적의 관정이 유지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자체로는 중독만을 일으킬 뿐이다. 세상에 행복자체를 위한 행복은 없다.

#의미가_충만한_삶

둘째, 목적은 내가 죽는 순간에 세상에 남겨놓게 될 나의 족적이고 유산이다. 유산은 목적이 실현된 정도를 죽음의 시점에 정산한 것이다. 조직이던 인간이던 죽는 날까지 목적을 실현시켜
유산(legacy)를 남기겠다는 약속(covenance)이 있는 삶이 충만한 삶이다. 미래를 향해 사회를 공진화시키는 신성한 약속(Covenance)가 기본적으로 떠 받쳐주지 못한다면 경제적 계약(Contract)은 뿌리없이 떠도는 부유물에 불과할 뿐이다. 목적에 대한 약속이 지켜지고 내가 남긴 족적이 어떤 이유에서든 후세의 기억속에 옮겨지는 순간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나를 통한 미래가 만들어진다. 이런 점에서 목적과 이를 실현시키겠다는 신성한 약속(Covenance)은 미래가 만들어지는 원리이다. 목적이라는 끌개가 없었다면 미래는 그저 혼돈과 암흑으로 점철된 엔트로피의 세계로 귀결되었을 것이다.

#미래가_있는_삶

셋째, 목적의 씨앗을 현재의 삶으로 가져와 자신의 삶과 일의 토양에 심어서 열매를 만드는 삶이 충만과 번성의 삶의 요체다다. 목적의 씨앗이 나의 삶와 일의 토양에 뿌려져서 삶과 일체화되도록 썪었을 때 이 목적은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씨앗이 된다. 사람들은 이 씨앗을 신성한 코즈(cause)라고 부른다. 목적의 씨앗이 세상변화의 원인이 되려면 썪는 자기희생과 세상이라는 땅에 자신이 뿌리를 내리는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상과 만나 썪거나 숙성하지 못한 목적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Cause로 작용하지 못한다. Cause로 작동하지 못하는 목적은 목적을 위한 목적일 뿐이다. Cause로 전환되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목적은 죽은 목적이다. 목적의 또 다른 이름인 Cause는 삶에 번성과 숙성을 가져다 준다.

#살아야할_신성한_이유가_있는_삶

넷째, 직장에서는 목적을 실현하면서 일했는데 집에 들어와서는 이 목적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면 당연히 이것은 목적이 아니라 목표일 것이다. 목적은 일과 여가 가족 이웃 모든 것들이 부분 최적화를 넘어서는 전체 최적화를 향한 힘이다. 목적이란 큰 그림을 보고 목표간의 부분 최적화를 넘어서 통합된 전체를 볼 수 있게하는 원천이다. 목적지향적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는 사람들에게 갈등은 큰 문제가 아니다. 목적은 자신과 가족과 직장과 이웃의 목표를 넘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이다. 목적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목표들간 최적화 문제를 극복한다. 목적은 미래를 기반으로 목표들을 통합하는 힘을 제공한다. 목적의 수준에서 최적화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낙관주의자(optimist)가 된다. 낙관(optimism)과 최적화(optimization)은 어원이 같다.

#낙관주의자로_최적화된_삶

다섯째, 목적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정체성을 핵을 구성했다면 연기자의 삶에서 벗어나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구성하는 원천이 된다. 목적은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넘어서 우선적으로 주장될 수 없다. 목적만이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시켜 자신의 대체가능성을 제거해준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만이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이 정체성을 나침반으로 삼아서 암흑과 같은 혼돈의 세상에 실족하지 않고 살아간다.

#존재수준에서_차별화된_삶

여섯째, 어린이와 같은 호기심의 원천이다. 니체는 인간의 삶의 단계를 남들이 시키는 일을 하는 단계인 낙타의 삶과 남들을 호령하며 사는 사자의 삶의 단계를 넘어서 삶자체가 목적인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단계를 최고의 단계로 생각했다. 목적지향적 삶을 산다는 것은 낙타, 사자를 넘어선 천진난만한 어린이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을 말한다. 이 어린이의 무궁무진한 호기심과 삶을 놀이로 구성하는 능력은 다 목적지향적 삶의 혜택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지루하다면 목적지향적 삶을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목적이라는 호기심의 어린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호기심과_천진난만함이_넘치는_삶

일곱째, 목적에 대한 믿음이 비전을 구성한다. 비전은 좋은 믿음을 가졌을 때 믿음의 안경으로 못보던 것을 보는 체험을 말한다. 사람들은 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이 없는 상태에서 비전을 과거에 성취한 것에 더 큰 숫자를 더한 것을 비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비전의 실체는 사막의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었다는 것을 여기에 도달해보면 안다. 진짜 비전은 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을 획득했을 때 못보고 살던 기회와 위기에 대한 통찰력의 기적을 가져다준다. 가장 큰 기적은 목적의 안경을 통해서 잊고 있던 자신을 보게되는 경험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은 못보고 살던 자신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볼 수 있는 시각이 비전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이 없다면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도 보지 못하는 장님의 살았던 것이다.

#통찰력과_비전을_잃지않는_삶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았던 것을 반추해보면 간헐적으로 하는 경이적 경험 밑에는 항상 목적이 숨어서 이끌어 주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아마도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누군가는 기적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리더란 이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넘어서 이 목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세상의 변화라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다. 기적으로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넘어서 이 목적을 내재화해서 목적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일인칭으로 써가며 세상을 주체적으로 이끌 때에만 진성리더가 된다.

#근원적_변화를_이끄는_리더의_삶
#Deep_Change

#목적경영
#황금수도꼭지
#Jeongkoo_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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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