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리더보다 더 나쁜 리더: 유사리더
나쁜 리더보다 더 나쁜 리더
유사리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지만 유사리더(pseudo leader)는 나쁜리더(bad leader)와는 다른 개념이다. 유사리더는 “유사” 휘발류처럼 겉보기에는 리더처럼 보이는데 속은 리더가 아닌 리더를 말한다. 유사리더는 진짜 리더보다 더 리더답게 보이기 위해 리더십의 모든 화려한 스킬을 동원해 연기하는 사람이다. 유사리더는 리더로서 남이 지켜보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는 탐욕과 욕심 등 남들에게 이야기 하기 어려운 꿍꿍이가 있는 이야기로 자신을 부추기지만 남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선한 리더인척 연기한다. 선한척 연기하는 이유는 자신의 탐욕스런 꿍꿍이 속마음이 들키면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기가 발칵되면 자신의 탐욕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유사리더는 생존을 위해 연기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연기가 들키기라도하면 리더로서의 생명은 끝장난다.
안희정, 이윤택, 김기덕, 고은, 이명박, 트럼프는 연기의 달인들이었다. 한 마디로 희대의 유사리더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내밀하게 하던 말과 추종자들에게 연기할 때 하던 말이 달랐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연기력이 출중해서 연기가 탄로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들도 궁극적으로 연기가 탄로나서 결국 사회에 폭탄을 터트리고 주저 앉았다. 유사리더는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인 시한폭탄이다. 연기가 발칵되는 순간 폭파된다. 유사리더의 연기가 먹혀들어 늦게 터질수록 시한폭탄의 파괴력은 더 커진다. 희대의 살인마 이춘재가 교도소가 아닌 일반사회에 있었다고 가정해보라. 교도소에서도 모범수로 연기해가며 살았던 것처럼 연기력을 발휘해 더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일상에서는 선량한 모범시민으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리더십 영역에서 유사리더들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조국에 대한 이슈도 그를 리더로 믿고 따랐는데 지금보니 연기했던 유사리더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다. 이분이 이야기하는 정의는 결국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허탈감이 국민들을 집어삼킨 것이다. 정의, 성실, 신뢰처럼 리더십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를 연기하는 리더의 연기에 속아 진성리더로 믿고 따랐다면 그 배신감과 분노는 폭발적이다. 많은 국민들은 진보인사들은 골수보수와는 윤리적 기준이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더 교묘하게 연기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자괴감에 빠진 것이다. 리더에게서 얻을 수 있는 희망을 잃을 것이다.
유사리더는 나쁜리더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쁜 리더하면 김정은이나 히틀러 등과 같이 누가봐도 나쁜 리더들이다. 유사리더는 겉보기에는 진짜 리더보다 더 진짜처럼 연기하는 리더들이다. 이들의 화려한 연기가 먹혀들어갈 수록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이들의 탐욕도 커진다. 어느 순간 탐욕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결국 연기로도 막을 수 없고 시한폭탄은 터진다. 유사리더는 언젠가는 터기기 마련인 시한폭탄이다. 나쁜 리더는 겉보기에도 나쁜 짓하는 것이 다 보이기 때문에 피할 수 있으면 사람들이 다 피할 수 있다. 나름대로 조심만 하면 안전하게 이들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유사리더는 신처럼 연기할 수 없기 때문에 탐욕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 터진다. 초연결시대는 모든 존재하는 것이 연결되고 연결된 것에는 모두 CCTV가 장착되고 세상 모든 장면들이 녹음되고 필요할 때 이 녹음된 내용이 공개되는 사회이다. 모범수로 연기하고 살았던 화성살인범 이춘재조차도 결국은 오래전 촬영된 자신의 DNA가 공개됨에 따라 연기가 발칵된 것이다. 연기력이 통해 아직은 발칵되지 않고 있어도 이 필연적인 발칵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초연결사회란 연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사회를 의미한다.
유사리더의 시한폭탄이 터지면 정치가 파산하고, 연극이 무너지고, 영화가 사라지고, 문화가 쇠퇴하고, 학교가 붕괴하고, 회사가 쓰러지고, 종교가 파국에 처해진다. 시한폭탄을 진짜리더라고 따르고 신봉하던 사람들에게 가하는 정신적 피해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할 사람들은 나쁜 리더가 아니라 유사리더들이다. 유사리더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조직에서는 사명과 목적은 이 유사리더의 내적 욕망과 이익을 챙기는 것을 최적화 시키는 쪽으로 기형화 된다. 많은 순진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원을 투입한 조직구조와 조직문화가 유사리더 개인들의 이익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왜곡되고 기형화된다. 이런 점에서 유사리더는 나쁜리더보다 클래스가 다른 나쁜리더이다.
회사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조직에서 유사리더가 등극하기 시작하면 조직은 이 사람들의 이익을 최적화 시키는 정치 조직으로 갈기 갈기 찢어지고 조직의 수월성은 사양길을 걷는다. 이들은 연기력을 앞세워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조직을 서서히 갈가 먹는다. 조직의 암세포이다. 이들에 의해서 장악된 조직이 일류조직으로 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21세기 초연결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는 목적을 각성하고 이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과 구성원들을 임파워먼트 시켜 구성원들과 같이 목적을 실현해서 더 나은 변화를 일궈내는 진성리더가 리더십의 표준이다.
문제는 자신이 유사리더인지도 모르고 시류나 조직의 분위기 때문에 유사리더십을 진짜 리더인 것으로 믿고 따랐던 사람들도 많다는 점이다. 이들도 자신의 이런 국면을 인정하고 알고보니 자신이 유사리더였음을 스스로 자복하고 커밍아웃한다면 진성리더(Authentic Leader)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경험은 진성리더들이 공유하고 있는 각성체험이다. 남들에게 털려나오기전에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길을 걷는다면 누구나 진성리더의 길위에 서 있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자신을 우상화 시켜 성인군자 상태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학습을 통해 조금씩 더 성숙해져가는 리더로 되어감(Becoming)이 핵심이다.
진성리더는 학습하는 죄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