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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이동

Dec 1, 2019 ·5분 ·jkyoon · 3,357

한국은 어떻게 신뢰롭지 못한 사회가 되었을까?
신뢰사회 회복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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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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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신뢰

레이첼 보츠만이 쓴 <Who Can You Trust>의 한국번역판 <신뢰의 이동>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가 초연결디지털 사회적 국면과 맞물려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뢰란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생기는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하거나 분산하는지의 문제이다. 하지만 보츠만이 놓친 것이 신뢰의 뿌리에 관한 인본적 자본의 문제와 신뢰의 지붕과 같은 문화적 자본의 역할이다. 보츠만의 논의를 보완하기 위해 내가 평소 연구에 이용하거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신뢰의 공진화모형을 그려봤다.

신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로 집중하는 것이 중간에 그려져 있는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빌려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브르디외, 콜먼, 퍼트넘, 후꾸야마 등이 주창한 개념이다.

사회적 자본 중 가장 초보적 사회적 자본의 형태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관계가 좋으면 상대의 것을 마음대로 내것처럼 빌려쓸 수 있다. 중국에서는 관시라고 불리는 신뢰의 형태이다. 이런 관계적 자본에 근거한 신뢰는 서로 관계를 맺는 사람과 맺지 못하는 사람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켜 사회전체적으로는 신뢰를 해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한 내집단간의 신뢰가 외집단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사회전체의 신뢰의 기반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제도적 신뢰이다. 화폐나 정부, 법집행기관 등 개인적 관계들을 외재화해서 제도를 만들었고 여기서 기본적으로 공통으로 기대하는 바를 지키지 못하면 불이익이나 벌을 받도록 만든 신뢰가 제도적 신뢰다. 이런 제도적 신뢰를 신뢰라고 부르기보다는 Assurance라고 부른다. 이런 제도적 신뢰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힘이 너무 강해서 이것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신뢰를 최대한 강화시켰다. 제도에 대한 공신력이 없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인들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대 인간의 신뢰가 가장 약한 곳이 일본이다. 제도적 신뢰도 제도를 운용하는 기관과 이것에 적용을 받는 대상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가 국회의원이나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속에 숨겨진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검찰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더 챙기는 사람들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의 끝은 분산신뢰다. 제도적 신뢰가 Top Down 신뢰형태라면 분산신뢰는 Bottom Up 형태의 신뢰다. 보츠먼이 자신의 책에서 분석한 것도 바로 제도적 신뢰사회에서 분산신뢰 사회로 넘어가는 초연결사회 국면에 대한 것이다.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는 것들에는 다 CCTV가 달려 있어서 다른 대상들을 녹음하고 있는 형태다. 이 녹음된 것이 어느 시점에서는 공익을 위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공유되고 공개된다. 블록체인에 의해서 모든 거래가 기록되고 공유되고 공개되는 사회적 국면을 생각해보면 된다. 이런 사회적 자본의 형태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대상을 감시하고 이 감시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거의 사라지는 국면이다. 투명사회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뢰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국면은 아무리 이런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신뢰가 발전되어도 개인들의 인본적 자본의 측면이 기반으로 깔려 있지 않는다면 모든 신뢰행위는 연기에 불과한 허약한 기반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적 자본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다를 경우 인본적 수준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이런 비대칭성을 만드는 이유는 개인의 꿍꿍이나 이득을 더 챙기기 위함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관되게 신뢰로운 행위를 보일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런 신뢰행위는 다 자신의 욕심을 더 챙기려는 연기이다. 남이 보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숨은 속셈을 더 챙기는 행위를 할 개연성을 제거하지 못한다. 결국 인본적 자본은 자신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같은 상태인 진실함을 견지하는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런 진실 혹은 진정성이 있는 삶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연기하지 않는다. 결국 신뢰는 진실이 기반이 된 인본적 삶을 살면 연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진실된 상태를 유지하면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없어도 신뢰가 가능한 사회가 된다. 자신에 대한 진실하지 않은 삶이 모든 정보비대칭성의 원천이다. 한 마디로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또 놓치고 있는 다른 한 가지는 목적/가치를 함축하는 문화적 자본이라는 신뢰기반이다. 목적은 미래에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해준다. 이런 목적과 사명의 울타리가 없는 상태에서 분산신뢰에 의해서 완벽한 신뢰상태가 구축이 된다하더라더 이런 사회는 동물농장이나 경찰국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분산신뢰가 더 큰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동원되지 못하면 분산신뢰자체가 목적이 되어 결국 경찰국가가 만들어진다. 사회가 진화하는 방향과 공진화하는 목적이 상실된 분산신뢰는 가장 위험한 신뢰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신뢰수준에 대한 연구를 개괄해보면 인본적 신뢰의 수준은 일본보다 높으나 미국보다는 낮은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한국사람들도 미국인만큼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지 못한다. 일본은 인본적 신뢰라는 뿌리가 없다. 혈연, 지연, 학연에서 서로 연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월등하게 높다. 내집단이 아닌 집단에 대한 불신도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높다. 대한민국이 혈연, 지연, 학연에 의존하는 정도를 보면 다양성 사회를 위해선 치명적 수준이다. 제도적 신뢰인 Assurance는 일본이 가장 높고 미국이 다음이고 대한민국이 가장 떨어진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부패 때문에 국민들이 제도를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 중 한 국가이다. 심지어 한국은 종교기관과 교육기관 조차도 신뢰하지 못한다. 문화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는 트럼프가 집권하기까지는 미국이 가장 높았으나 트럼프 집권 후 급격히 떨어졌다. 일본은 목적가치를 기반으로 한 신뢰는 방향성이 왜곡되어 목적가치로 보기 힘들다. 한국은 목적가치에 대한 기반은 풍부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동원해서 신뢰의 자원으로 만든 경험은 별로 없다. 박정희 정권때 경제발전을 위해 동원한 국가보국 정신이나 IMF 당시 금모으기 때나 광화문 촛불시위 때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못하는 사회라면 지옥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이 이런 불신지옥을 극복하고 존경받는 시민사회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검찰 및 사법, 국회, 교육, 종교기관에 대한 제도적 신뢰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복원하는 인본자본에 의한 신뢰와 미래를 위한 목적가치로 울타리를 바로 세워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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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