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이 정치하지 않는 나라
법조인들이 알아서 정치하지 않는 나라
신 사회적 패권을 위한 제언
검찰개혁이 대한민국의 부패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근본적 이유는 이들의 삶의 경력경로가 정치를 위해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현직에서 정권에 봉사한 사람들이 현직을 떠나면 여당이든 야당에 영입되어 결국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 이런 경로를 통해 성공한 전직검찰들이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등장해서 다시 법을 만들어가며 사회적 패권을 휘둘러 온 모습이 잘나가는 정치검사의 표본이었다. 역대정권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국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들 면모를 보면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에서도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이 경로가 이들 잘 나가는 정치인들의 경력경로로 설정된 이상 야심만만한 젊은이를 검찰에 끌어들이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들이 검찰에 입문해 권력의 맛을 보면 누구나 이런 경로를 자신의 경력경로로 설정하고 이 길을 가기위해 정치검찰에 충실한 길을 걷는다. 검찰기간은 결국 정치가로 간택받기 위한 시보생활이었던 셈이다.
법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관의 수장이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정치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법관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이들이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사명과 소명에 충실했었다면 이런 정치적 행위에 자신들이 동원되는 것에 결사적으로 저항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들이 행보에 수동적으로라도 동원된 법관들도 정치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 아닌가?
법조인, 교수, 성직자는 검은 법복을 입을 수 있는 세 개의 대표적 직업군이다. 사회가 이들에게 법복을 허락한 이유는 이들이 사회의 사명과 소명의 근간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근본적 혼란과 부패는 이들 소명세력이 자신의 소명을 잃고 정치검찰이되던지, 폴리페서가 되던지, 정치목사가 되어 정치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파생되었다.
사회적 소명을 생명으로 하는 직업인 검찰이나 법관이 자신의 소명을 잃고 법을 다루는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는 사례들이 정치검찰을 만들었다고 본다. 평생을 소명과 사명을 위해 일한 검찰이나 법관이나 아니면 국민들 대다수가 나서서 추천한 법조인들을 제외한 정치법관이나 정치검찰이 정치가로 등장하는 것을 국민들이 막을 수 있을 때 사법적폐란 말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법관이나 검사들이 퇴임 후에도 정치에 한 눈 팔지 않고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과 사명을 실현하는 변호사로서 생을 마치는 것을 가장 영예롭게 받아들이게 된다면 더 좋은 시민사회의 첫걸음으로 보인다.
다음 총선에서는 이미 국회에 들어와 패권세력으로 성장해 모든 개혁에 반기를 들고 사사건건 뒷다리를 잡고 있는 이들 법조인들을 폐권세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국민에게 맡겨진 첫 번째 사명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는 약자와 소수를 위한 긍휼감이 있고 미래에 대한 제대로된 비전을 가진 진성 정치가들을 새로운 사회적 패권세력으로 발굴하는 것이 역사적 임무로 보인다.
니체의 주장대로 국가나 리더가 사명을 잃은 순간 상식적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온갖 광란의 광대놀음에 몰입한다. 정치검찰은 대한민국 광대놀음의 주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