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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고의 진화와 확장

May 17, 2020 ·4분 ·admin · 2,952

인간사고의 진화와 확장:
동굴에서 탈주하기
나는 본능적으로 세상을 자파/우파, 진보/보수, 변화/질서, 남성/여성, 좋음/나쁨, 옳음/틀림, 정상/비정상, 자기편/남의편 등 이원론적으로 나눠놓고 나 자신을 자신들이 임의로 나눠놓은 이원론의 한쪽에 분류시켜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분노한다. 나 모르게 조용히 나에 대한 자신들의 분류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려는 순진한 시도를 하는 것은 용인하지만 이런 자신의 자의적인 분류에 나를 가두놓고 나에 대해 좋고 나쁨에 대해 가르치려고 시도하면 분노한다. 그것이 평범을 가장해가며 편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의 허락도 없이 나에게 억지로 마스크를 씌워서 내 진짜 얼굴을 가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무슨 빠나 부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I
인간의 사고가 시작된 지점은 동굴이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들은 원래 동굴 속에서 군집생활을 하고 있었다. 동굴 밖에서 가끔 비치는 햇빛이 동굴 벽에 그림자를 만들면 사람들은 이 그림자를 근거로 사고하며 살고 있었다. 그림자 사고이다. 그림자 사고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믿는 가장 원시적인 사고방법이다. 그림자 사고의 치명적인 약점은 눈에 보이는 그림자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보이지 않는 원인을 찾아서 개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토익학원에서 영어는 안 배우고 답안지 잘 고르는 방법만 습득해 점수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림자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다. 좌파든 우파든 정치의 본질을 따지지 않고 자신과 같은 동굴에 속해 있는 사람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재단하고 믿고 있다면 동굴사고에 갇힌 것이다. 이런 사고는 원인을 제대로 찾아서 개선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결과에서 원인을 찾는 자기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한다. 동굴에 갇혀 그림자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보거나 문제를 해결할 때는 학습과 성장이 없다. 이들이 다수로 모여서 자신들의 옳다고 주장하는 집단사고에 돌입하면 대한민국의 신천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II
내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최적화된 안락한 삶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화되고 일상화되면 삶은 나에게 동굴이 된다. 정체된 삶은 안락을 미끼로 나를 동굴에 끌어들어 여기에 가두는 것으로 끝장을 보여준다. 내가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명성을 구가하고 있어도 삶의 일상화에 대한 철칙에는 예외가 없다. 이런 것들이 많아져 스스로 무거워져서 스스로를 춤추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더불어 늘어가는 나이에 저항하지 못하고 일상화 되면 삶은 뻣뻣하게 보수화 된다. 세상은 내가 돈, 권력, 명예로 만들어 놓은 최적화와는 상관없이 변화하여 내 최적화를 최악화로 만든다. 최악화 된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은 더 깊은 동굴을 찾아가 자신의 삶을 숨기는 것이다. 이들은 더 깊은 동굴사고에 몰입한다.
III
일상화의 감옥에 갇혀있는 삶의 상태가 아포리아 상태이다. 이 아포리아는 가장 편한 자세처럼 처음에는 자신에게 최적화된 삶의 형태였다. 아포리아에 절망감을 느낄즈음 어떤 계시에 의해 이 아포리아의 감옥에서 벗어나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아포리아의 감옥에서 벗어나 길을 떠나 사막을 헤메는 노마드가 되보는 것이 디아스포라이다. 디아스포라의 사막을 헤메가며 찾는 것은 오아시스일 것이다.
동굴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면벽해가며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사고하는 습관을 길렀지만 탈주한 노마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광야에다 망루를 지어놓고 다른 동굴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옛 동굴에 돌아와서 세상 밖의 이야기를 해줘서 동굴사람들의 사고의 폭을 넓혀갔다. 글로벌 사고의 탄생이다. 노마드의 삶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신대륙을 발견하고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노마드 삶에 지치면 사람들은 다시 동굴로 찾아들었다. 이들 중 소수는 넓은 세상에서 본 것들을 기반으로 벽면의 그림자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유레카를 경험하게 된다. 벽면에 그림자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과 성찰을 통해서 알아낸 자신의 모습이 같지 않다는 것도 발견했다. 최초 인문적 사고의 탄생이다. 인문적 사고를 통해서 인간은 그림자의 주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햇빛이 없은 날에도 자신은 존재한다는 것도 알았다. 주체로서 인간은 행복과 고통을 자신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로벌 사고자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다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인문 사고자들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엄청난 신대륙을 발견했다.
IV
글로벌 사고와 인문적 사고의 단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동굴에서 다시 탈주한다. 북한에서 탈주에 실패한 사람들 잡혀서 북송당하면 이들은 반드시 다시 탈주를 감행한다. 감옥 밖의 세상에서 맞본 자유에 대한 매력이 감옥의 지독한 형벌을 이겼기 때문이다. 감옥, 탈주, 방황의 삶의 무한 변주곡은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인 목적을 발견하는 순간 멈춰진다. 목적은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 시켜 마침내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방황하고 감옥을 탈출하는 것도 결국 이 목적을 발견하고 이 목적을 실현하는 삶을 통해 진실을 체험하고 진실을 체험하는 순간 오아시스적 자유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이유를 규명해서 스스로 선택한 목적은 자신이 그렇게 찾아 헤메던 자신에게 진실의 샘물이자 오아시스였다. 목적을 발견한 사람들만 노마드의 방황을 멈춘다.
이원론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자신을 편견의 감옥에 가두고 상대에게도 자신의 편이 되게 정치적으로 압력을 가함을 통해 상대도 자기만큼만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요하는 유리천장을 만들어주는 행위다. 이원론적 사고는 반드시 정치적 편견으로 진화한다. 이원론적 사고는 상대에게서 진실과 자유함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다. 상대를 자신의 만든 감옥에 투옥시키는 비인륜적 행위다.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정치편향을 강요하는 비인륜적 행위만 자제해도 현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손가연, Hyunsim Yu, 외 9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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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