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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욕구의 구별 매슬로우
욕망과 욕구의 구별
욕망하는 기계
사람들은 종종 욕구(needs)라는 것과 욕망(desire or want)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욕구라는 것은 뭔가 결핍이 생긴 상태를 의미하고 욕망이라는 것은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갈구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픈 것은 욕구의 상태를 지칭한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햄버거나 피자를 욕망한다. 이들 선택지 중 한 가지를 택해서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 나의 배고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피자의 효용(utility)과 햄버거의 효용을 비교해서 피자를 선택했다면 이 피자는 나의 배고픔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최적의 욕망이다. 피자를 섭취하면 나의 욕망(want)은 실현되고 욕구(needs)는 해소된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회사는 결국 결과에 가까운 욕망에 초점을 맞춰 설계하지만 제대로 된 회사는 욕망의 원인에 해당하는 욕구로 초점을 이동해서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한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나 상품이 욕구와 욕망을 최적으로 연결해서 최적의 효용을 제공하는지가 설계의 핵심이 된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needs)를 다섯단계로 분류했다: 먹고, 입고, 성욕을 느끼는 생존의 욕구, 이런 것들을 안정적으로 제공받는 안정의 욕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관계의 욕구,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존경의 욕구, 자신이 차별적 존재임을 실현해보고 싶은 자기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매슬로우는 다섯가지를 그냥 위계로 분류했지만 사실 이 다섯가지 욕구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이다. 이 다섯가지 욕구중 생존과 안정의 욕구는 결핍의 욕구이고 존경과 자아실현의 욕구는 생성의 욕구다. 관계의 욕구는 결핍의 욕구이기도 하고 생성의 욕구이기도 하다.
결핍의 욕구는 결핍이 생기면 이에 반응하는 욕구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 결핍이 생기고 대부분은 이 결핍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배가 고프지 않기 위해서 미리 먹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은 배가 고프다는 결핍이 선행하면 음식을 섭취한다. 안정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다. 안정된 상태가 깨지면 사람들은 이것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이것을 복구하기 위해 움직인다. 보험이라는 상품은 이런 인간의 안정에 대한 결핍의 욕구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생성의 욕구로 바꾸어서 상품화한 것이다.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연적으로 결핍의 상태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결핍의 상태를 만들어내야 욕구가 생기는 생성의 욕구이다. 이들은 자기가 이것들을 선택해야 된다는 점에서 욕구보다는 차라리 욕망에 가깝다. 자신이 존경받는 상태에 대해서나 자아실현에 대해 목표를 세우고 현재 상태와 갭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욕구로 작동한다. 존경받는 상태나 자아를 실현하는 상태가 가만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현재 상태를 초월해 나의 경계를 확장해보려는 의도가 생성의 욕구를 만든다. 배고플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있어도 존경이 깨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생성의 욕구는 나를 초월한 새로운 목표세움과 이를 위한 다양한 대안의 선택이 있어야 욕구로 작동한다. 생성의 욕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더 나은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관계성의 욕구는 생성의 욕구이기도 결핍의 욕구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친구를 못만나면 보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고 기계적인 결핍의 상태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기 위해서 네트워크를 확대해가기도 한다. 이는 생성의 욕구에 반응하는 행동이다.
내가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쓰는 것은 존경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생성의 욕구여서 자신이 목표지점을 명확히 설정하여 현재상태와의 갭을 창출하고 이 갭을 줄이는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성의 욕구는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채울 수 없다. 감을 열망하면 감나무를 올라가는 수고를 감내해야 채울 수 있는 욕구이다.
존경받는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는 모두 자신의 존재의 차별성을 증명함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욕구이다. 나로 인해 세상이 더 좋아지는 것을 목격하고 싶어하는 삶의 존재이유 즉 목적에 대한 욕구이다. 생존의 욕구와 안정의 욕구를 자제해가며 아낀 재산을 후세에게 유산으로 남길수도 있지만 존경받으며 자아를 실제로 실현하는 삶에 모범을 보인 기억을 더 큰 유산으로 남길 수도 있다.
심지어 들뢰즈는 인간을 욕망하는 기계라고 규정해 욕구와 욕망 사이의 연결을 시도했다. 생존의 욕구나 안정의 욕구처럼 존경의 욕구나 자아실현의 욕구를 기계적 일상처럼 반복하는 삶을 통해 더 나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욕망을 실현시킬 수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일상에서 이런 차이가 만들어지는 것을 몸소 느끼는 상태를 근원적 체험(deep experience)이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근원적 체험을 행복의 원천(eudemonia)이라고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