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뉴 노멀로 복귀할 수 있을까? 가면증후군
New Normal로 복귀할 수 있을까?
가면증후군의 삶
트루만 쇼(True Man Show)가 내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트루만 쇼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 시시각각으로 잃어버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변화가 기본이고 상수가 된다면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마련하는 노력이 삶의 본질이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짐케리가 연기한 트루맨 버뱅크는 자신이 주인공인 것을 모르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직업은 보험회사 직원이지만 물론 가짜다. 상대하는 고객들도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전부 연기자이다. 인사성이 뛰어나 사람들을 만나면 내일은 “못 볼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즐거운 저녁, 즐거운 밤 보내세요.” 트루만의 하루 하루의 모든 삶이 몰래 카메라로 촬영되어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다.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하는 삶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에 트루맨은 트루맨(True Man)이 되고 싶어도 연기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 개인은 연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연기하는 삶을 산다면 나도 연기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나의 주체적 삶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가공되어진 삶을 살아왔다.
고프만(Goffman)이라는 사회학자는 이 영화가 나오기 오래 전에 이런 삶을 예언했다. 모든 사람들의 삶은 결국 사회가 자신에게 제시한 연기대본에 따른 연기의 일부분이라고 규정하고 이 연기자로서의 삶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엄마 아빠 자녀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은 대부분 정해져 있다. 우리는 단지 이런 역할에 따라 모범적인 부모와 모범생 자녀로 충실하게 연기하며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고프만의 입장에서보면 모범생 신드롬은 사회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음모이기도 하다.
문제는 잘 짜여진 연기의 무대나 장면이 변화할 경우다. 짐 케리도 자신의 삶이 연기가 아닐까라는 것을 무대가 변화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조금 씩 깨닫았다. 가끔 조명이 떨어지기도 하며 주변의 연기자들이 변화한 역할에 미숙한 연기를 보여 삶 전체가 연기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제기했다.
변화의 시대에 살다보면 언제든지 낮선 순간들이 시시각각으로 찾아온다.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 되자 내가 지금까지 삶아 왔던 삶은 진짜였을까하는 회의가 찾아온다. 지금처럼 코로나가 창궐해서 사회적 거리가 강조되자 내가 살아왔던 지금까지의 내 삶이 진실이었을까를 되묻는다. 모든 것이 낯설다. 마치 연극에서 배우인 내가 치명적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 어떻게든 난관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기계적으로 애드드립하고 자리를 황급하게 벗어난다. 자신 연기의 여유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가면을 만들어 돌려 써 멀티 페르소나를 연기해보기도 한다. 이런 가면에 익숙해지다보니 가면 쓴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소위 말하는 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고 있지만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나에 대한 지각이 비현실적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다. 몰래 꽃구경도 나서고 봄 바람도 느껴보지만 이때 만나는 사람들도 너무 기계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비현실적 현실은 극복할 수 없다.
우리 연구진(Lawler, Thye, Yoon)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회의를 몰개성화(Depersonalization)라고 규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연대(Social Commitments)를 주창해왔다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 Russell Sage Foundation 2010). 몰 개성화는 사회가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몰 개성화가 시작되면 자신이 단단하다고 믿었던 정체성의 실체가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말하고 행동하는 것도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행동하고 말을 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나에 대해서 반응하는 상대도 조작된 기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체성은 환상이며 누군가가 우리의 말과 행동을 수동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이든다. 어떤 때는 친숙한 단어조차도 낯설게 느껴기기도 한다. 사회가 지금처럼 위기의 상태로 치닫거나 디지털 혁명처럼 변화의 속도가 우리가 쉽게 따라잡을 수 없을 때 이런 몰 개성화는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고 여기에 맞춰 내 자신을 충분히 진화시키지 못했을 대 이런 정체성의 상실감과 혼란은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온다. 실제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비현실적 현실 속에서 자신에 대한 실제감을 잃고 헤매고 있다.
코넬대학의 Lawler교수, USC의 Thye교수와 나는 초연결디지털 사회의 진화와 함께 사회적 해체 현상이 미래의 기본적 추세가 될 것임을 <Social Commitments in a Depersonalized World>에서 제시한 바가 있다. 책은 2010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으니 이미 10년전 일이다.
우리가 이런 몰개성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했던 원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회적으로 경계을 지금의 현실에 맞게 다시 확장해 정의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새롭게 정의된 사회적 경계를 울타리고 삼아 해체된 개인들의 연대를 복원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현실을 New Normal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는 울타리 없는 세상을 살 수는 없다. 모든 울타리가 제거된다면 우리는 그냥 동물처럼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에 몰입해야한다. 모든 울타리의 해체는 자연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이 변화하면 여기에 맞는 울타리를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이미 세계는 거기두기를 실천하고 있고 이 거리두기가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작업과 병행되지 못하면 국가의 문을 걸어 잠그고 공동체의 문을 걸어잠궈 장벽을 세우는 일로 종결될 것이다. 이럴 수록 문제해결을 위한 협업은 요원해지고 세상은 다시 동물의 양육강식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회귀한다.
둘째는 이렇게 해체된 사람들을 새롭게 제시된 울타리 안에 사회적 헌신을 위해 이들을 모으는 힘이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긍정적 만남을 통해 체험하는 정서에서 답을 찾았다. 사람들이 만남을 통해 느끼는 긍정적 정서가 기본적으로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긍정적 정서를 넘어서서 윤리적 정서라고 주장했다. 윤리적 정서를 새로운 울타리 안에서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사태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기저질환이 있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과 건강한 젊은이들 사이의 균절이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에 대한 긍휼감을 통해 둘 간의 연대의 끈을 만들지 못하면 결국 사태는 종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흐를 것이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새로운 울타리를 마련하고 연대를 동해 사람들을 다시 이어주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이런 리더들이 바로 지금과 같은 시대의 진성리더들이다. 이 진성리더들만이 결국 지금과 같은 현실을 더 현명하게 극복하고 정체성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현실감을 복원할 수 있는 New Normal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