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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못느끼는 자들의 만행
고통을 못느끼는 자들의 만행:
세 가지 사건
오늘은 5.18이다. 주요 신문들에 이슈로 등장한 세 가지 사건은 518 40주년, 주민갑질로 자살한 경비원, 이태원발 코로나 팬데믹이다. 이 사건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공통된 비밀이 숨겨져 있다.
518은 지난 40년간 역사의 고비마다 부활해 대한민국 민주화의 횃불이 되었다. 광주에서의 이같은 큰 희생이 없었다라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의 민주화는 상상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길을 잃고 제 3세계 국가와 같은 운명을 걷고 있었을런지 모른다. 518은 반복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리들에게 아픔의 기억을 부활시켜 우리에게 차이나는 클래스를 선사했다. 518은 우리에게 역사는 과거의 아픔과 고통이 부활되는 순간에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교훈을 가르쳐왔다.
두 번째 사건은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주민이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최희석씨를 갑질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갑질은 잊을만하면 다시 헐벗은 옷을 입고 반복되고 있다. 갑질은 어떤 사람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물건이나 도구취급하는 성향에서 발현된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무릅꿇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은 제압하는 동물적 본능에 익숙해져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물건취급하는 성향이다.
518의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일으킨 천인공노할 만행이지만 갑질은 생각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악의 일상화나 악의 평범성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세번째 사건은 이태원 발 코로나 지역감염이다. 코로나는 고혈압, 당뇨, 비만 등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이나 어떤 상황에도 대응을 못하는 어린이들만을 골라서 치명적 손상을 일으킨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사람이라면 치사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이태원을 방문한 젊은이들이 이 치사하기 짝이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자발적 숙주가 되어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을 공격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첫 번째 사건의 주범인 전두환으로 대표되는 신군부 세력과 이곳저곳에서 갑질을 전염시키는 사람들이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자발적 숙주가 되기로 작정한 젊은이들은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와 닮은 꼴이다. 완전무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완벽하게 고통을 선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신이 터져 죽는 순간에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냉혈한이 되었다. 자신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인지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기인지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이다. 자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해도 자신의 가족에게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를 생각만 할 수 있어도 갑질이나 518 대학살, 이태원 젊은이들과 같은 행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상대의 고통에 대해서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는 거울세포가 손상된 이상자들이다. 원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의 흉내를 내가며 연기하도록 이들에게 권력이나 권세를 용인한 사회가 문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권력, 돈, 지위를 얻었다는 이유로 리더로 환대해주는 사회가 문제의 주범이다.
요즈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들과 같이 읽고 있는 한나 아랜트나 스캇 팩의 조언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이런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인식하고 치유하는 능력인 사회적 긍휼감이라는 백신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나 아랜트에 따르면 사회적 긍휼감은 사회의 소수로 치부된 사람들을 위해 힘있는 다수라고 칭해진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가면을 벗고 이들의 아픔의 가면을 대신 써주는 정신이다. 아랜트의 주장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삶에서 자신이 얼마나 고통을 이겨가며 성장하고 있는지 자기긍휼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518이든 갑질이던 자발적 숙주이든 발단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긍휼감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발단되었다.
스캇 팩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깊이만큼 인격적으로 성숙한다. 긍휼감은 아픔을 사랑하는 사랑의 가장 지고지순한 형태이다. 어렸을 때부터 인지적 교육만큼 사회적 긍휼감의 백신으로 자신과 남들의 고통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전두환과 같은 괴물이나 일상의 옷을 입고 활동하는 갑질의 주모자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남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하고 같이 사랑으로 풀어가는 성향이 사회적 긍휼감이다. 사회적 긍휼감이 고통을 제대로 된 사랑의 감정으로 승화시켜 인격을 성숙시킨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의 고통을 느끼고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 진정으로 사회적 인격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