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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미래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상실할까?

Jun 28, 2020 ·6분 ·admin · 2,873

목표는 미래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상실할까?
많은 경영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 중 하나가 목표(goal)를 지향하고 있으면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믿음과는 달리 목표는 방향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오히려 목표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 필연적으로 방향을 잃을 운명에 처한다. 실제 목표를 달성했을 경우 이 달성한 시점으로 시간은 이미 과거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면 현재 쓸 수 있는 재원을 얻을 수 있는지는 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목표를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덕까지 열심히 돌을 굴려 올리지만 돌이 언덕 꼭데기에 도달하는 순간 과거로 돌아오기 때문에 돌이 굴러 떨어져 다시 굴리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이들의 불행은 언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지 못한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평생 이런 시지프스 돌굴리기 삶을 지속하는 사람이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방향은 전후좌우 앞뒤를 봐가며 자신이 제대로 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목표에 경도된 삶은 앞만보고 전후좌우 뒤의 그림을 놓친다. 언덕으로 돌을 굴리는 목표를 가진 사람은 앞만본다. 좌우를 살필 경향이 없다. 뒤에서나 옆에서 누군가가 공격해들어오면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결국 방향을 잃는다. 방향은 돌 굴리기가 끝났을 때 언덕 저편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찾아낼 때 발견된다.
들뢰즈는 자신의 박사논문을 엮은 책 <차이와 반복>에서 매일 목표를 향해 일상을 반복하지만 방향을 잃은 시지프스의 돌굴리기를 헐벗은 반복이라고 명명했다. 우리가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이 헐벗은 반복의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지만 이 반복을 통해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반복을 <옷입은 반복>이라고 칭한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의미있는 변화를 제대로 선물한 사람들은 다 옷잎은 반복을 삶의 원리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시지프스의 돌굴리기 삶을 탈주하는 반복인 <옷입은 반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들뢰즈가 반복을 통해 차이를 생성해내는 반복의 기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들뢰즈가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에 심취해서 옷입은 반복의 개념의 착안했다는것을 이해하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옷입은 반복의 핵심기제는 자명해진다. 철학자 중 목표가 아니라 목적에 대해 가장 깊이 있게 연구했던 두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니체이다. 특히 니체는 목표(goal)가 아니라 삶의 나침반에 해당되는 목적(purpose)만이 우리에게 영원회귀라는 반복을 통해 차이를 실현하는 길에 도달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 goal 과 목적 purpose를 혼동한다. 목표는 단기적으로 달성해야 할 것들을 수치화 한 것이다. 목적은 자신의 존재이유(북극성)에 대한 답이다. 목적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북극성으로 삼고 따라가야 할 방향을 지칭한다. 한 번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은 없다. 달성한 목표를 기반으로 다음 목표를 달성한다. 이렇게 목표를 달성하고 또 달성하였을 때 목표의 끝에 있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목표는 목적에 이르는 사다리일 뿐이다. 하지만 사다리와 달리 같은 목표를 반복한다고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목적은 차리리 구슬로 목걸이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 목표들이 일관되게 목적의 끈에 구슬로 꿰어질 때 목표는 방향을 잃지 않고 목걸이로 탄생한다.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구슬속에 목걸이의 이미지가 삽입되어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성과를 혼동하는 경영자들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시지프스가 단기적 성과를 위해 돌을 굴릴 때 이 돌굴리기 행위에 이유 즉 목적이 이입되어 있을 때 이 단기적 성과들은 목적과 연동되어 장기적 성과를 만들어낸다. 목적을 잃은 단기적 성과들은 아무리 많이 모아도 그냥 모래알 같은 단기적 성과여서 이런 단기적 성과를 가지고 장기적 성과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격이다. 단기적 성과만을 추구하는 이윤추구는 단기적 성과를 달성해야만 하는 이유인 목적을 찾아서 단기적 성과를 실현시키는 이유추구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이유가 단기적 성과에 끼어넣어지는 이유추구에 실패한다면 한 두번의 단기적 성과를 내고 사라지는 기업으로 전락한다.
목적에 이르는 길에서 좌절한 사람들은 목적을 포기하고 종종 결국 자신이 지금까지 달성한 목표를 목적으로 주장한다. 한번 떳다가 바람처럼 사라진 회사 엔론, 노키아, 코닥, 대우 등이 갔었던 운명에 처한다. 목적의 길을 잃은 이런 회사들은 달성할 목표에 더 큰 숫자를 덧붙여 이것을 비전이고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신기루 비전이어서 이 비전이 제시한 오아시스의 물을 마시면 더 심한 갈증을 벗어나지 못한다. 목적을 잃은 젊은이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목표에 해당하는 스펙 수집에 온 힘을 다하다 길을 잃었다는 불안이 급습하면 더 높은 스팩을 찾는다. 신기루 오아시스의 물을 마신 것이다. 자신을 스팩과 큰 숫자의 비전을 따라가는 사람들과 기업은 다 목적을 잃은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들이다.
목표와 목표가 목적의 실로 연결되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질 때 목표가 방향을 잃지 않은 것이다. 방향이 제대로 설정된 목표의 강은 다 목적의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목적은 모든 다양한 목표의 끌개이자 미래의 불랙홀인 셈이다. 목적이 인도하지 않는 목표에 자기를 투기한다는 것은 질서에 어긋나는 혼동을 창조하는데 공헌하는 것이다. 혼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반작용으로 실패가 담보되있다.
목표만 지향하는 삶은 한 번은 운좋게 성공할 수 있어도 이 운 좋은 성공이 지속될 개연성은 높지 않다. 목적이 이끄는 삶과 다른 삶으로 승승장구 하는 사람들이나 기업은 초년에는 운이 좋아 일이 제대로 풀리는 것 같아도 종국에는 운에 의해서 보복을 당하여 추락하는 삶을 살게된다. 초반에는 좋았다가 인생의 말년운이 나쁜 사람들 대부분도 목적으로 이어지는 삶의 끈을 놓친 사람들이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매일 매일 목표를 추구하지만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는 헐벗은 반복을 벗어나 반복을 통해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옷입은 반복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미분화라고 규정한다. 목적의 형상은 따지고 보면 과일나무의 열매와 같은 것이어서 적분이다. 들뢰즈는 이 열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분된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이 열매를 미분화 해서 씨앗을 찾아내고 이 씨앗을 삶의 토양에 심어서 지속적으로 안주름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미분화되어 되어 씨앗으로 만들어진 상태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코즈(Cause: 신성한 이유 혹은 원인)를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적분의 상태인 목적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이것을 실현할 수 없고 목적을 미분화해서 코즈를 만들고 이것을 삶과 일이라는 토양속에 발아시킬 때 목적이 실현된다고 본다. 이런 코즈를 목적으로 실현시키는 과정이 들뢰즈에게 옷입은 반복이다.
미래의 저편에 있는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자신만의 삶의 실험실에서 미분화 시켜 씨를 만들어내고 이 씨를 뿌려 과일나무로 길러내 이 과일을 사람들에게 팔 수 있는 사람들만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람들이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미래의 개념으로 핸드 폰을 만들었고, 이건희 회장도 이런 개념으로 삼성전자의 신경영을 이끌었고, 아마존의 베포스도 이런 개념으로 글라우드를 미래의 창고로 선언하고 디지털 소매혁명이라는 미래를 만들어냈다. 사명을 깨달고 세상을 바꾼 모든 사람들은 다 이런 목적을 미분화해 자신의 업의 토양에 종자로 심어 열매를 만들어냈다. 미래는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미래는 이들처럼 미래에 먼저 가서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이것을 코즈라는 씨앗으로 만들 수 있는 미분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자신의 업의 토양에 심고 과일나무를 길러내 자신의 제품이나 자신의 서비스라는 과일에 성공적으로 배태시킬 수 있는 사람들만이 미래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손가연, 이창준, 외 7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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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