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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환대를 향한 갈증

Jun 28, 2020 ·4분 ·admin · 3,033

<슬기로운 의사생활>
환대를 향한 갈증
많은 사람들이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언급해서 넷플릭스로 첫 회를 보았다. 첫 회를 보자마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단번에 알았다. 병원(hospital)의 존재이유였던 환대(hospitality)가 이슈였다. 굳이 환대의 철학자 데리다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드라마는 병원에서 고갈된 환대에 대한 문제의식과 환대를 복원해야 한다는 열망이 그대로 제시되어 있었다.
병원(hospital)은 원래 환대(hospitality)을 위해 만들어진 곳임에도 이 환대의 사명을 가장 먼저 잃어버린 곳으로 지목된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환대가 일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를 충분히 간접 체험할 수 있게 구성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병원이 이렇게 운영되지 못한다는 환대의 결핍에 대한 문제의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요즈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의료진들에게 받는 실질적 환대가 서로 작용과 반작용을 일으켜가며 묘한 공명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였다.
첫 회만보고 드라마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이라는 생각에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자제하고 우리 삶에서 환대에 대한 열망이 왜 이렇게 높아졌을까를 고민해봤다.
첫째는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우리는 환대는 고사하고 대부분 물건 취급을 받는다. 병원을 가도 우리는 고장난 기계일 뿐이지 고통받은 인간은 아니다. 고장난 기계도 등급을 먹여서 치료의 순서나 질이 결정된다. 환자체험이라는 고상한 말은 병원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다.
백화점에서 아무리 VVP 등급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환대받지는 못한다. 이들이 환대를 흉내내서 우리에게 한정적으로 체험시켜준 댓가로 돈을 요구한다. 돈을 내지 못한다면 내 환대 등급은 VVP를 유지하지 못한다. 결국 내가 인간으로 존엄성을 인정받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낼 수 있는 돈으로 환대를 조건적으로 샀을 뿐이다. 이런 조건적 환대와 구별되는 절대적 환대는 상대를 나와 같은 고통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의 손을 잡고 같이 나오는 긍휼감이 전제된 환대다. 우리는 지금까지 긍휼감이 고갈된 사회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버텼다. 돈이 있던 없던 권력이 있던 없던 재능이 있던 없던 모든 사람들이 조건적 환대가 아닌 절대적 환대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첫째 이유다.
둘째,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도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서 나도 주체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줌을 통해 한 차원 높은 환대를 경험한다. 상대를 손님으로 대해주는 것을 넘어 주인으로 대해주는 것이 한 수준 높은 환대이다. 상대를 똑같은 손님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환대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환대의 대가이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며 예수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예리코에서 눈 먼 이에게 빛을 되찾아주셨을 때도(마가 10,52), 갈릴래아 인근에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한 뒤에도 (루카 17,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포한다. 병자들도 예수에게 찾아온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것을 회복시켜주는 더 높은 차원의 환대를 경험하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환대의 가장 높은 체험은 나를 환대한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삶에 포함시켜 삶이 확장되는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없다면 환대는 그냥 환대에 대한 특별한 기억으로 머물다 사라질 것이다. 환대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이유는 환대한 남이 자신에게 들어와 자신이 확장되는 체험을 남들에게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감정을 불사르기 때문이다. 환대는 선순환과 피드백을 통해 사회를 확장하고 성숙시키는 윤리적 정서로 전환된다.
스토리의 전개는 모르지만 아마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도 이 세가지 요소가 들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주인공으로 나온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에 비해 환자를 고장난 기계로 취급하기보다는 자신처럼 고통받는 인간으로 볼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의사로의 권위를 앞세워 환자들의 삶에 개입하기보다는 이들이 육체적 고통을 벗어나게 도와줌으로 이들이 주인으로 자신의 삶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이런 환대의 체험들을 환자들에게 끼워넣어 줌으로 이들이 병원을 나서는 순간 다 성숙한 삶으로 귀환하는 확장의 경험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족을 제외한 누구로부터도 진정으로 환대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드라마가 환대의 본산 병원을 통해서 각성시킨 것이다. 환대는 가진자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행할 때만 조건적 환대를 넘어선다.
코로나는 사명에 봉사하는 의료진들이 국민들에게 이런 환대의 체험을 나눠주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의료진들이 모범적으로 환대를 통해 사명을 복원한 것처럼 우리의 병원도 드라마처럼 복원되고 이 복원된 사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환대하는 정서가 사회 곳곳에 전염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손가연, 이창준, 외 16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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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로 갈수록 더욱 많이 느끼시게 될겁니다. 현실을 비록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런 병원이..이런 의사가 더 많아지길 소망하는 맘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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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