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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함수의 변화
목적함수를 변화시키다
성 다양성의 이슈
20세기 초까지도 영국은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 의회는 남성만으로 채워졌고 모든 법률은 남성을 위한 법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여성 운동의 선각자였던 에멜린 팽크허스트 Emmeline Pankhurst 여사가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달라”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판크허스트는 1908년에서 1914년까지 13번이나 투옥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14년 제 1차 대전이 발생했고 전쟁이 지속되면서 영국의 모든 젊은 남성들이 죽어나갔다. 전쟁에 패배한다면 영국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를 직시하고 팽크허스트는 목적함수를 여성의 참정권 쟁취에서 영국의 생존으로 바꾸었다. 목적함수를 바꾼 후 팽크허스트 여사는 참정권 쟁취 투쟁을 잠시 접어두고 전쟁에 나가서 희생하는 남성들을 돕기 위해 여성들도 군수공장에 가서 군수물자를 만들자라는 캠패인을 주도했다. 전쟁이 연합군 승리로 끝나자 영국정부는 여성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1918년 3월 여성들의 참정권을 의회에서 비준했다. 13차례나 투옥되면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여성의 참정권을 목적함수를 바꿈을 통해 해결한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여성의 성 다양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을 한 사람 선정하려면 나는 단연코 유관순을 꼽는다.
유관순이 “누나”인지 “여사”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신 삶의 일인칭 맥락에 맞춰 누나로도 여사로도 할머님으로도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호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관순이 여성과 남성에게 제기한 더 큰 목적함수이다. 유관순이 여성의 해방을 외치다가 투옥되었다면 유관순으로 인한 여성의 인간화는 아직도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벽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유관순을 성을 함축하는 누나를 넘어서 열사로 부르게 만든 것은 국가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유관순의 희생과 기여다. 이 사회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유관순의 기여가 견고한 벽으로 존재했을 여성과 남성 간의 범주적 차이를 지웠다. 유관순이 실현시킨 목적함수는 여성해방이란 말 한 마디를 쓰지 않고 많고 실질적으로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열열한 여성해방가보다 많은 여성들에게 평등과 자유를 선사했다.
우리 <성 다양성 및 협업연구실>은 최근 기업에서 조차도 성 다양성의 문제가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목적함수에서 찾아서 이 목적함수의 변화를 통해서 성 다양성을 실현시키는 방안을 설계했다. 최근에 출간된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는 성 다양성에 대한 목적함수의 변화가 전제 되지 못하면 아무리 제도적으로 많은 장치를 도입해도 여성 인재가 시급한 기업에서 조차도 성 다양성의 실현은 밑빠진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기에서 성다양성은 진화생물학이 주장하는 대문자 남성이나 젠더 정치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문자 여성을 벗어날 수 있을 때 진정한 성다양성이 실현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이나 젠더 정치학에서 주창하는 목적함수는 대문자 남성이나 대문자 여성이 자신의 범주에 해당되는 전형적 프로토타입에 기반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의 범주의 정치적 이익실현이 이들이 가진 전형적 목적함수다. 우리는 성다양성이 진실로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은 젠더 정치학의 대문자 여성과 진화생물학의 대문자 남성이 자신의 편협된 목적함수를 버리고 사회에서 인간으로의 공존과 번성의 목적함수에 기반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낼 때 가능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더 의미 있는 큰 범주를 실현시켜 여성과 남성의 편협한 사회적 범주를 해체할 수 있을 때 성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기업에서 여성이 전략적 파트너로 성장하는 것은 남성에 대한 파트너십을 의미하기보다는 기업의 정한 사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에 대한 기업의 파트너십을 의미한다. 기업의 사명에 파트너십을 허용하고 일정기간이 지난 후 사명과 목적에 기여한 여성과 남성의 숫자를 세어봤더니 동등해졌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결국 유리천장이 제거된 것이다. 결국 기업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파트너십의 기여를 통해 남성과 여성간의 성 다양성 파트너십도 결실을 본 것이다.
이런 회사와 성간 파트너십을 성숙시키고 실현시키기 위해 기업에서 다양한 제약조건을 제거하고 더 높고 더 평평한 곳에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협업의 운동장을 만들어 성 다양성의 목적함수를 전환시키는 것이 우리 연구실의 사명이다.
사회적 지위란 어떤 사람이 사회의 생존과 번성에 기여한 공과를 구성원들이 평가해서 이 평가에 대한 합의를 근거로 부여하는 것이지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등과 형평은 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기여의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겠다는 것이이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기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지위는 실제로 기여한 공과에 대한 평가이다. 똑 같은 기회를 부여해도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에게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똑 같이 부여했어도 무슨 이유인지 자발적 이유든 어떤 이유로 여성의 기여자가 한 명도 생기지 못했다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바뀌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서 성 다양성에 관한 목적함수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남녀 평등이나 청년들 간 벌어지고 있는 성에 관한 지루한 정치적 싸움은 생산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남녀 평등은 성 다양성의 초기값으로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여기에 성다양성의 문제가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남녀 평등이 이뤄졌다고 남성과 여성이 인간존재로 서로의 성숙을 염원하는 성숙한 상태가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성다양성이 염원하고 있는 목적함수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을 넘어 서로가 사회의 번성을 위해 기여하는 인간존재로서의 엄숙함이다. 이 엄숙함이 기업에서 실제로 실현되어 기업이 번성을 누릴 때 성 다양성의 이슈는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