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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 다양성은 왜 개선되지 못할까

Oct 27, 2020 ·2분 ·admin · 2,984
대한민국 성다양성은 왜 개선되지 못할까?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본 저서에는 성평등의 역설에 대해서도 다룬다. 성평등의 역설은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남성과 여성간의 성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직업적 격차는 심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성평등이 완벽하게 보장된 나라일수록 여성과 남성 간 직업적 격차는 심화된다는 통계가 제시되고 있다.
우리는 저서에서 젠더 정치학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성평등의 제도화만으로는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설파한다. 젠더 정치학자들의 성평등에 대한 잘못된 정치적 가정이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평생 족쇄가 채워져 길들여진 코끼리나 유리컵 속에서 길러진 벼룩을 풀어주고 이제는 자유니까 너희가 하고 싶을대로 해보라고 하는 형국과 비슷하다. 자유롭게 풀어주어도 코끼리의 원래의 야생성이나 벼룩이 원래 뛰던 높이뛰기를 복원하지는 못한다.
존슨 대통령도 하버드 대학의 졸업 연설에서 비슷한 논지를 설파했다. “몇 년동안 족쇄를 채워 놓았던 사람을 데려다가 갑자기 풀어준 다음 이제부터 당신은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과연 공정한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에서 우리는 성평등의 역설이 바로 정신모형의 작용으로 규정한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자유를 허락하여 몸을 자유롭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도 삶을 규정하는 정신모형에 변화가 없다면 사람들은 자유롭지만 불확실한 삶보다는 이전의 감옥이지만 나름 편한 삶으로 되돌아간다. 몸은 해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삶은 정신모형의 감옥에서 갇혀서 여기가 감옥이라도 더 편하다고 규정하고 산다. 성다양성을 위한 많은 가족친화적 제도들은 여성들의 몸을 해방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삶을 해방시키지는 못해서 결국 성평등의 역설과 같은 현상이 초래되는 것을 놓치고 있다. 성평등을 위해 만든 제도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성평등의 역설의 주장처럼 그냥 여성과 남성간의 평등을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 차별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 가정친화적 제도도 많이 만들어주고 더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제도적 편리성이 주는 제도의 덫에 갇힐 확율이 더 높아진다. 아무리 가정친화적 제도라하더라도 이런 제도적 편리함에 갇히게 되면 전통적 여성의 역할이나 직업을 벗어나지 않고 여기에 머무를 개연성이 높아진다. 가족 친화적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결국 성다양성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속성상 디커플링되는 것이 본질인 제도의 덫에 걸린 것이다.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정신모형과 제도의 덫에서 벗어나 고유한 인간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파트너로 태어나는 조건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기업에서 여성인재를 전략적 파트너로 키우는 방법에서 근원적 변화가 요구된다. 지금과 같은 여성인재 육성 방식으로는 성다양성과 성평등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만 남발하는 형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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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