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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사이렌의 대마왕인가?

Dec 18, 2020 ·4분 ·admin · 2,185
방송이 사이렌의 대마왕인가?
혜민스님 논란
혜민스님의 논란을 보면서 방송이 유혹의 신 세이렌의 대마왕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위험한 상황을 알려주는 사이렌의 어원은 세이렌 (그리스어: Σειρήνες Seirēn, 영어: The Sirens)이다. 원래 세이렌은 유혹의 신이다. 주로 바위가 많은 협곡에 거주하며 배가 지나갈 때 고혹적 노래로 항해자들을 유혹한다.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백발백중 물로 뛰어든다. 노래의 가사는 대부분 지금 가는 곳보다 더 좋은 곳이 있으니 천국의 삶이나 행복한 삶을 즐기려면 정해진 목적지를 포기하고 나를 따라오라는 식이다.
세이렌은 아무나 무작위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주로 탐욕을 가졌음에도 이를 숨기고 대박을 쳤거나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만을 골라서 공격한다. 이명박, 안희정 등 정치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이윤택, 고은 같은 예술하는 사람들도 결국 사이렌의 공격에 무너졌다. 검사와 전관변호사는 거의 예외없이 세이렌이 공격을 받아 대부분이 무너진다. 돈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경제영역은 세이렌들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이다. 기업가 중에서는 세이렌 공격에 무너졌거나 지금 곤혹을 치루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한 때 승승장구했던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반드시 세이렌의 공격을 받는다
성공에 도취하게 되면 세이렌의 노래소리가 경고음을 날리는 사이렌 소리로 들리지 않고 고혹적인 세이렌 소리로 들린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세이렌의 노래소리는 삶을 경고하는 사이렌 소리로 들어야 하지만 이들은 사이렌 소리를 세이렌의 노래로 듣는다. 성공의 최고 정점에 이를수록 사이렌 경고음이 더 고혹적인 노래 소리인 세이렌으로 들린다. 성공으로 무한하게 부플어 오른 자아를 가진 사람들이 세이렌의 공격대상이다. 탐욕이 부풀려져 만든 자아의 냄새를 따라 세이렌이 몰려든다. 세이렌의 공격을 받으면 대부분은 추락한다.
혜민 스님의 경우를 지켜보며 상업방송이 이런 세이렌의 대마왕쯤 된다는 생각을 했다. 혜민 스님이 문제된 것도 TVN 이라는 방송이다. 방송은 유명세를 미끼로 대상을 유혹한다. 이고가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진 사람들이 이런 세이렌의 매혹적인 미끼를 안 물리가 없다. 미끼를 문다면 자신의 이고를 고양시키기 위해 자신을 각색하려는 세이렌의 음모에 걸려든 것이다. 방송에서 자신과 다른 자신이 조금씩 각색되기 시작하면 이 각색된 자신은 자신을 떠나서 객관적 사회적 사실로 규정된다. 이런 사회적 사실에 근거해서 시청자들은 세이렌이 미끼에 걸려든 사람을 우상화 시킨다. 본인의 의지와는 독립적으로 우상화의 정점에 이르는 순간 부풀려진 자신과 실재하는 자신이 긴장관계를 견뎌내지 못하고 끊어져 폭발한다. 세이렌이 바라던 비극의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세이렌의 공격에 무너진 사람들도 초심은 어떤 유혹이 있어도 목적지까지의 항해를 완수하고야 말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초심을 간직한 영혼이 탐욕의 수면제를 먹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사이렌 소리가 거세게 울려도 탐욕의 수면제에 취해 잠에서 깨지 못하고 사이렌 소리를 자장가로 듣는다. 세이렌은 가끔은 자신의 내면에 숨어들어서 부플려진 내면의 탈을 쓰고 자신을 공격하기도 한다. 부플려진 탐욕으로 진실한 내면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면 세이렌은 특히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까지 흉네내가며 기승을 부린다. 세이렌은 삶에서 한 번 나타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삶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영혼이 잠자고 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나 공격한다.
세이렌의 공격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목적의 성소와 이 성소를 두르고 있는 긍휼의 울타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존재의 수준에서 차별화시켜주는 목적에 대한 철학과 믿음으로 자신만의 성소를 세운 사람들은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래소리보다 목적의 성소에서 들려주는 영혼의 종소리로 고혹적인 세이렌을 굴복시킨다. 이들은 자신에게 목적의 종소리를 들려주는 소명의 삶, 이 목적을 실현시켜 믿음으로 만드는 사명의 삶에 천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목적을 자신의 몸을 통해 반드시 실현시켜야 하는 이유는 자신 이고를 넘어서 사람들의 아픔을 해결해서 더 건강하고 더 깨끗하고 더 행복해진 세상을 만든다는 긍휼의 울타리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가치, 자원, 역량, 지식, 품성 모든 것을 목적의 성전을 지키는 긍휼의 성벽을 쌓는데 동원한 사람들이다. 아무리 강한 세이렌도 이 긍휼의 성벽을 넘지 못한다.
이들은 세이렌이 운전수가 되어 질주하는 자동차에 잘못 올라타도 긍휼감이라는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부풀려지는 이고를 넘어 자신과 타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아픈 이들의 손을 잡고 나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세이렌의 엔진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세이렌이 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혜민스님이 많은 청중에게 했다는 마음챙김이나 명상도 결국 본질은 자신을 벗어나 부풀려져 달아나는 이고를 향해 브레이크을 작동시키는 훈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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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