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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의 무모함

Jul 10, 2026 ·5분 ·jkyoon · 1

교육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의 무모함

21세기에 어른거리는 계몽주의 망령

윤석열이 국민을 개혁과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지식을 주입하고 공포로 통제할 수 있다는 독단적 계몽주의 망령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최근 스타벅스에서 5.18에 대한 혐오가 문제가 되자 본사가 내놓은 해결책이 전 직원을 일제히 ‘교육’을 시키는 방식이었다. 문제가 터지면 교육이라는 처방전으로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윤석열식 발상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서 전형적인 계몽주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계몽주의 처방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실패의 연쇄 작용 속에서 최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폭력 사태가 다시 터져 나왔다. 사태가 불거지자 사회는 또다시 학생들에게 역사와 인권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계몽주의 발상을 들고 나왔다. 교육계든 산업계이든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무지 탓으로 돌리며 교육이라는 면죄부 뒤로 숨는 행태는, 국민을 훈육의 대상으로 보았던 윤석열식 계몽주의의 복사판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엘리트 중에는 전근대적 발상을 벗어나지 못한 윤석열 추종자가 생각보다 많다.

역사를 공부시키고 당위적인 도덕을 교육한다고 인간과 조직이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근대적 허구이다. 만약 교육이 만병통치약이었다면 우리는 왜 잘못된 역사를 그토록 반복해왔나? 혹자는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가 역사에 대한 기억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단순히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거나 고통스러운 기억, 혹은 자신의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주입된 지식을 화학적으로 청소해버리는 ‘능동적 망각(Active Forgetting)’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정보가 들어와도 뇌는 이런 정보에 대한 자신만의 유의미한 맥락의 고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지워버린다.

현대 사회처럼 사건의 전말과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영구히 디지털 공간에 박제되는 디지털 기억의 시대에도 인간이 역사적 미숙함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의 공공기억 속에 박제된 디지털 낙인은 타인의 시선과 처벌에 대한 외재적 공포 자극을 유발하여 전두엽의 전기적 신호를 잠시 붙잡아둘 뿐, 인간 내면의 행동 회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지 못한다. 공포에 기반한 자극은 뇌가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사건이 잠잠해지면 뇌는 학습된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걸리지 않는 법’이라는 우회적 생존 전략을 더 교묘하게 발달시킨다. 디지털 기억의 시대에도 일베나 펨코 집단이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다.

이러한 비극의 무한 반복은 행동의 변화와 기억 사이의 괴리에 대한 뇌과학적 이해가 전무한 탓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을 받아 시험에서 만점을 맞고 매뉴얼을 통달한다고 해서 행동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오직 뇌 속 시냅스 신경망의 물리적 지도가 바뀔 때에만 변화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아도 단기 작업기억에 머무는 전기 신호는 시냅스에 단백질을 합성하고 구조적 가소성을 유발하는 각인(Imprinting)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 소멸한다. 특히 성인의 뇌는 아동기에 비해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급격히 저하된다. 이미 견고하게 굳어진 성인의 시냅스 지도를 일회성 집체 교육이나 매뉴얼 낭독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근거 없는 신화다. 최근 뇌과학계의 화두인 ‘대표성 표류(Representational Drift)’ 이론이 증명하듯, 성인의 뇌 회로는 매일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이 치열한 회로 재편 과정에서 단단하게 장기기억으로 공고화되지 못한 어설픈 주입식 교육은 매일 밤 일어나는 시냅스 리샤플링 과정에서 완전히 밀려나 실종된다.

뇌 신경망 지도는 언제, 어떻게 바뀌는가?

성인의 뇌는 스스로가 일인칭 주인공이자 자아 서사의 작가가 되어 운전대를 잡는 ‘자율성’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기존 신경망 회로에 균열을 준다. 강제로 쥐여진 매뉴얼이 아니라, 자기 주도적 선택을 내릴 때 뇌의 선조체와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시냅스 가소성의 윤활유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또한 이렇게 바뀐 설계도가 시냅스에 포팅(Porting)되어 몸의 지도로 안착하는 과정은 오직 ‘급진 거북이’ 방식으로 유능성과 자신감의 근력을 확보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거창한 목표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진 것만 가지고 실행할 수 있는 자기만의 작은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아주 미세한 단위의 행동을 매일 반복하여 차이에 대한 성취 경험을 축적할 때 뇌지도가 바뀐다. 작은 차이에 대한 반복을 통한 마이크로 성공 경험이 지렛대가 되어 유능성 회로를 자극하고, 뉴런의 축삭돌기를 감싸는 마이엘린 피막을 두껍게 만드는 수초화(Myelination)를 유도할 때 행동으로의 전이 속도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누적된 미세 루틴들이 자신이 평소 운용하던 정신모형의 기본가정과 충돌하지 않도록, 내면의 깊은 핵심 가정들을 스스로 손보고 정렬하는 ‘이중 고리 학습’을 완결할 수 있을 때 뇌는 비로소 진정한 뇌가소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변화를 성취한다.

스타벅스는 전 직원을 모아놓고 차별 금지 매뉴얼을 외우게 하는 세뇌식 교육을 자기 반성의 차원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 멈춘다면 오너를 살리기 위해 구성원을 계몽령의 희생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직원이 매장의 주인공이자 매뉴얼의 작가로서의 지위를 부여해야 핫다. ‘오늘 내가 마주할 고객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1분짜리 마이크로 루틴’을 스스로 쓰고 일인칭 주인공으로 연출 하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확장해야 한다.

배재고등학교의 언어 폭력 사태 역시 당위적인 도덕 교육이나 역사적 훈계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거울 뉴런 시스템을 직관적으로 가동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이나 고강도 롤플레잉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위기로 인지하게 만드는 일인칭 감정의 동기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선배가 후배의 실수를 보았을 때 폭력 대신 하이파이브를 하며 격려의 말을 건네는 구체적이고 미세한 행동 지침을 매일 훈련시켜,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일인칭 절차 기억으로 시냅스에 박제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이 개인의 정신모형 속 핵심 가정, 즉 “동료의 성장이 나의 유능성이다”라는 본질적 가치와 결합할 때 비극의 사슬은 끊어진다.

사회의 역할은 이들이 스스로 내면의 시냅스 지도를 바꿀 수 있도록 지지하고 촉진하는 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집단을 디지털 공간에 박제하여 영구적인 수치심을 주는 징벌적 처벌과 감시는 편도체를 자극해 뇌의 가소성을 억제할 뿐이다. 사회는 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난의 칼날을 들이대기보다, “무엇이 내면의 가정과 어긋났는지”를 안전하게 복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의 인프라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의 주체적 일인칭 정체성을 건강하게 인출할 수 있도록 공동체의 피드백 루틴을 제도적으로 지지해야 한다.

교육을 통해 인간을 바꿀 수 있다는 계몽주의 미신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산다. 인간을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위에서 아래로 지식을 주입하려는 21세기의 계몽주의 유령을 거두어내고 스스로 내면의 북극성을 찾아 시냅스 지도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만이 이 반복되는 비극을 멈출 유일한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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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