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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 가는 대한민국
무너져 가는 대한민국
아노미의 상흔
믿고 의지했던 규범이 사라져 삶이 의미 없어진 상태를 불란서의 사회학자 듈껭(Durkheim)은 아노미(Anomie)라고 불렀다. 아노미란 말그대로 사회를 지탱해주던 규범( Norm)이 사라진(A) 상태를 뜻한다. 아노미 상태에 도달하면 규범이 붕괴되어 무질서가 급증한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했는데 이에 대한 새로운 의미 있는 New Norm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사회는 자살, 폭력, 사기, 횡령, 부패, 마약 등의 병리 현상이 급증한다. 이런 사회적 병리현상이 생긴 시초는 규범의 붕괴로 생긴 무질서가 원인이다. 무질서 속에서 각자도생을 위해 좌충우돌 하는 과정에서 결국 각종 사회적 병리에 오염된다. 결국 무질서가 쌓이고 쌓이면 사회는 어느 순간 도미노처럼 붕괴된다.
대한민국에는 CC 카메라 등 감시 장치의 증가로 눈에 잡히는 도둑 소매치기 등 잡범은 많이 사라졌으나 눈에 잡히지 않는 화이트 칼라 범죄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여러 통계에서 대한민국의 부패와 거래의 불투명성 지수는 수년 때 세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화이트 칼라 범죄가 급증해 전관 출신 변호사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다. 사회에 변호사가 많아지는 것은 아노미가 더 심각해져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더 심각한 수준으로 도지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검사 출신 변호사 열풍은 사회적 병리가 곪아 터지는 수준에 도달한 증거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심각한 중증 환자 상태다. 제대로 된 개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아노미가 사회의 각 영역을 노미노처럼 무너트릴 것이다.
이런 아노미와 사회적 병리 현상의 증가에 대한 처방으로 대한민국에는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이런 붕괴의 수준을 경험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 줄 역할모형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 중에 역할모형이 되는 삶을 살아온 소수의 어른을 어른으로 삼아서 지금의 아노미와 병리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는 자신의 삶의 고유한 목적을 세우고 이 목적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유된 목적을 변화로 실현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어른이다. 어른이란 나이와 무관하게 아노미와 무질서로 식물인간으로 변한 사회에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해 실제로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낸 모든 사람이다. 초뷰카 시대는 소수의 어른에게 어른 역할로 부담을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주체적 어른이 될 것을 요구한다. 초뷰카 시대에는 누구나 고유한 존재목적을 세우고 이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근력을 가지고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어른이다.
병든 대한민국은 어디부터 손 보아야 할까?
본인이 제안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은 기업의 각성과 회심이다. 기업 현장은 아노미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이다. 아노미 전쟁에 이길 실마리로 결국 기업 생태계에 답이 있다.
경기가 붐을 일으켰던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은 모든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획일화 시켜 이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쟁에서 1등 하거나 2등 하는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 성공한 기업으로 내세웠다. 실제 경기가 좋아서 기업이 이런 논리에 따라 경영을 해보니 경제적 가치가 실현되었고 더 잘 살게 되었다. 기업은 실현된 경제적 가치를 구성원과 사회에 나눠주는 것을 빌미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의 하위 가치로 종속시켰다. 돈이 모든 가치의 잣대가 된 세상은 기업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던 기업이 중심이 되어 돈 이상의 규범도 없고 돈 이하의 규범도 없는 돈 만이 규범인 세상을 만들었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거품이 꺼지고 경기가 L자 경기로 돌아서자 기업도 더 이상은 경제적 가치를 산출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눈에서 사라진 경제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삶은 신기루에 휩싸이게 된다. 아노미가 시작된 것이다.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규범에서 강조해왔던 경쟁과 인센티브를 더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을 사용했고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력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았다. 회사에서 설정한 경제적 이윤 목표를 달성하는 과제를 풀지 못한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초기 정신질환 증세를 경험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대부분은 의사를 봐야 할 정도의 정신 질환의 경계치에 와 있다.
회사에서 단기적 목표 달성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해 얻은 정신증은 결국 가정으로 이입되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염된다. 또한 부모가 가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아이를 통해 학교로 그대로 전이된다. 우리에게 큰 사회적 이슈를 몰고 온 선생님들의 자살과 공교육의 붕괴는 결국 회사의 문제가, 가정에 이입되었고, 아이들을 통해 다시 학교로 번진 것이다.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도 이미 신자유주의 경제적 가치에 오염되어 있어서 이런 전염에 무방비로 무너지고 있다. 공교육 학교에서 아이들은 지식도 배우지만 인문 사회적으로 올바른 정치적 행위 시민의식을 배우고, 진리에 접근하는 올바른 자연 과학적 접근법을 배운다. 신자유주의에 오염된 학교는 시민의식과 과학적 태도에 대한 훈련이 아니라 오직 지식에 대한 암기능력만을 평가해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장소로 변했다. 시장경쟁과 경제적 가치의 프락시인 성적으로 학생을 한 줄로 세워 대학으로 내보내는 공장인 대한민국의 학교는 오래 전부터 경제적 가치를 제외한 다양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기능을 상실했다.
이런 학교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진실에 대한 성실한 탐구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진실로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파는 포장과 연기를 통한 성공을 꿈꾼다. 결과 만능주의 풍조에 따라 유튜브와 SNS 활로워 숫자를 늘려가며 모두가 자신을 진실로 포장하지만 모두 허구일 뿐이다. 진실을 추구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우상으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포장하는 행동이 사회적 아노미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들은 탐욕에 눈 먼 정치가들의 먹잇감이다. 정치가들과 결탁해서 가짜뉴스를 산출하고 결국 사회를 더욱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숙주가 된다.
종교도 획일화된 경제적 가치에 오염되어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교회나 절은 모두 신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곳이 아니라 신의 죽음을 장사 지내는 장소로 전락했다.
이런 아노미의 오염으로 인한 대한민국 붕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주체적으로 개입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본인은 가장 현실적인 개입의 시작은 역시 사회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기업이 주체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자들이 신자유주의 가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용기 있게 인정하고 지금의 아노미를 만들어낸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다양한 가치를 살려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본다.
초뷰카 시대의 시대적 지평을 열고 있는 선진 국가의 글로벌 기업들은 다른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통해 고객의 고통을 해결해주어야만 하는 이유인 존재목적을 다시 세우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목적을 상품과 서비스에 체화시켜 상품과 서비스라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를 판다. 회사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추구하는 가치를 팔 수 있을 때 기업은 브랜드가 있다고 규정한다. 지금과 같은 초뷰카 시대 회사다운 회사는 회사의 존재목적이라는 가치를 드라이버로 세워 이런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가 따라오게 하는 회사다. 결국 초뷰카 시대 제대로 된 기업들은 다양한 가치 공장이다. 이런 존재이유를 가진 회사들이 모여서 초뷰카 시대의 새로운 규범으로 기업의 생태계를 만들어낼 때 제대로 된 의미있는 가치가 통용되는 사회 질서가 복원된다.
기업과 사회 각 국면에서 요즈음에 코칭이 붐을 불고 있는 이유도 이들이 아노미에 노출되어 환자로 전락한 사람들을 문책하기보다는 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들을 고통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칭이 어느 정도 아픔을 환대해 완화하는 순기능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의미 있는 다양한 가치 생태계를 복원해서 사회의 건강을 회복 시켜주지는 못한다.
2019년 8월 19일 미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 기업의 총수들이 모여 신자유주의를 포기하는 선언에 서명을 했다. 이때 총수들이 신자유주의 이념인 경제적 가치를 산출해 주주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업의 대안으로 설정한 것이 공의기업(Company of Shared Purpose)이다. 공의기업이란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 고유한 목적을 세우고 이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가 따라오게 경영하는 기업이다. 경제적 가치를 드라이버이자 강화제로도 사용해 종업원에게 시시포스 쳇바퀴 도는 삶을 제공한 기업들이 이런 순환론적 신자유주의 거버넌스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대신 기업의 고유한 목적가치를 드라이버로 앞세우고 이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산출된 경제적 가치를 사후적으로 정산해 강화제로 사용하는 공의기업의 새로운 거버넌스가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기업들에 의해 다양한 가치 생태계가 복원될 때 아노미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삶을 통해서 가치와 의미를 체험한다. 가치와 의미를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병이 찾아 올 리가 없다. 기업의 회심으로 대한민국에 이런 다양한 가치 생태계가 복원되면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향유하는 나라가 된다.
우리나라의 기업가들도 이런 시대적 조류가 의미하는 바를 각성하고 자신 회사가 돈도 벌지만 의미 있는 가치 질서를 만들어내는 공장으로서의 책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병들어 쓰러져가는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은 기업의 회심을 통해서다.
한 나라에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 생긴 문제와 병을 처리하기 위해 대부분 젊은이들이 변호사와 의사라는 직업을 열망하는 사회는 희망이 사라진 사회다.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생존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항상 계산기를 두드린다. 사회의 모든 국면에서 공정성을 운운해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 사회의 미래가 사라졌다는 증거다. 계산기를 두드린다는 것은 더 이상은 상대를 인간으로 신뢰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된 이유도 경제적 가치의 획일화로 아노미가 초래되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데 당장의 생계라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