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일상에서 예술하기: 황금비율

Mar 14, 2024 ·4분 ·jkyoon · 2,111
일상에서 예술하기
황금비율
어제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유미애 교감 세르파의<일상에서 예술하기> 워크샵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진에서 공간을 최적으로 나누는 황금비율에 대해서 배웠다.
황금비율은 공간을 분할할 때 가장 안정적 분할이 되도록 나누고 이 안정적으로 분할된 공간에 맞도록 사물을 배치할 때 가장 동적이면서 안정감이 있는 구도를 얻는다는 원리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거리 중간에 X라는 분할 점을 배열할 때 AX : XB = AB : AX가 되도록 X 지점을 찾았을 때 이 X 지점이 균형점이다. 이 균형점은 1.618…. : 1 혹은 1: 0.618…이 되는데 어림 잡아서 3 : 1 혹은 1 : 3의 비율이다. 따라서 가로 세로를 3등분해서 만나는 교차점을 찾아서 사물을 배열하면 가장 동적이고 안정적 구조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바다와 해변을 찍을 때 바다를 주인공으로 강조하고 싶으면 바다가 3으로 분할된 공간 중 2의 공간을 차지하도록 배열하고 해변이 나머지 1의 공간을 갖도록 위 아래를 배치한다고 배웠다. 좌우배치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원리가 기독교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관계라는 둘 사이의 거리도 사회적 공간으로 보고 자신과 타자를 이 사회적 공간에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를 황금률로 제시한다.
“남들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누가복음 6장 31절).”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위기 19장 18절).”
인간관계라는 사회적 공간에서 세 개의 분할 점은 대접 받고 싶어하는 자신이 있는 지점(A), 대접해야 할 상대가 있는 지점(B), 이 두 지점 사이에서 황금분할 선을 찾아서 헤매는 자신이 서 있는 지점(X)이 있다면 X를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의 문제다. X를 대접받고 싶어하는 자신(A)에게 더 가까운 3분할 지점에 세울 수도 있지만 상산수훈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어하는대로 상대를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접해야 하는 상대(B)에 더 가까운 3분할 점에 X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두 삼분할 지점 사이 중간 어디에 타협점으로 X를 세우려고 노력하겠지만 이 지점은 파레토 균형점이 아니다.
결국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황금률은 분할점을 찾아 나선 나(X)는 대접해야하는 상대(B)에 더 유리한 삼분할 지점으로 세우고 상대는 대접받고 싶어하는 나(A)에 더 유리하게 자신의 분할점을 세워야 한다는 원리다. 상대의 입장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를 주인공으로 세워주고 배려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더 유리하고 자신이 좀 더 손해보는 쪽으로 의사결정 하거나 상대를 더 배려해 주인공 역할을 분할해주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의 황금률은 항상 자신이 조금은 더 손해보는 쪽으로, 상대를 더 주인공으로 세우는 쪽으로 의사결정함을 의미한다.
나의 손해봄에 대한 배려를 읽었다면 상대도 다음 기회에 나에 관련된 결정을 할 때 상호성(Principle of Reciprocity) 규범이 유지되도록 나를 배려해가며 의사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반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구성원 모두가 조금은 자신이 손해 보는 쪽으로 의사결정하는 호혜성의 규범이 지켜질 때 사회는 유기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원리가 황금률이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 원리인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라 치열하게 경쟁하고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승자독식하는 인센티브 구조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가정하듯 세상 모든 일은 한 탕의 게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기회가 반복되어 먼저 번의 게임 결과가 다음 게임에 반영된다. 황금률은 이런 연관된 반복게임 속에서 여유가 있는 구성원이 조금 더 양보하고 손해 보는 쪽으로 결정해 준다면 다음 더 중요한 건에서는 좀 상황이 나아진 상대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원리를 가르쳐 준다.
반복적 게임을 연구하는 정치 이론에서도 “파워는 뺏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는 공리를 주장한다. 좀 더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면 자신이 여유가 있을 때 상대에게 더 많이 해줄 수록 상대는 나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결국 이런 구조적 의존성 때문에 내가 필요해서 상대에게 요구할 때 상대는 내 요구를 들어주게 되어 있다.
신자유주의가 매 게임이 마지막 게임이라고 가정하고 게임에 임한다면 사기꾼은 자신의 이득을 환수하고 도망가는 마지막 게임 전까지는 무한대로 주는 파워 의존 전략을 쓴다. 사기꾼은 자기가 내밀하게 설정한 마지막 게임(End Game)을 설계해 놓고 이 이전까지 상대를 위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게임하는 사람들이다. 사기 당하는 사람은 게임이 무한정 반복될 것으로 믿는다. 사기를 당하는 마지막 게임을 치루고야 이들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상식적인 사람들은 사기꾼과는 달리 게임은 자연적으로 게임이 종결되는 죽음의 시점까지 지속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임의로 설정한 마지막 게임 없이 서로에게 더 나은 공동의 미래를 위해 여유 있을 때 더 양보해 관계 속에 저축해 놓고 필요할 때 인출해서 쓰는 선의의 방식을 사용한다.
신자유주의는 공정경쟁이란 이름으로 사기꾼보다 더 심각하고 냉혈한에 가까운 게임룰을 운영해왔다. 1997년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한민국은 근 30년간 신자유주의에 교화된 채로 살아왔다. 경기가 어려워져 누구나 지속가능성에 의심을 품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절에는 황금률에 따라 신자유주의 원리에 교화된 대한민국을 디톡스 해야 우리 사회가 공멸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황금률의 명령대로 손해 보는 게임을 할 생각이 없다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보기 힘들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나에게 여유가 있다면 더 힘든 상대를 위해 조금 더 손해 보는 쪽으로 황금률을 실천해보자. 상대를 더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에 조금 더 매진해 써보자.
← 칼럼 목록으로
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