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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의 부화사건와 마지막 부활사건 성인은 어떻게 어른이 되나?

May 15, 2024 ·6분 ·jkyoon · 1,740

N번의 부화사건와 마지막 부활사건
성인은 어떻게 어른이 되나?
리더는 부하가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에게 교육 좀 시키라고 요구한다. 마치 교육을 통해 누구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교육은 만병통치약이다.
학습을 통해 성인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다. 이런 미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람들을 교육을 통해 교화시켜보려다가 실패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이 도구로 이용했던 교육은 빼고 결론만 부각 시켜가며 “사람은 절대로 안 바뀐다”고 주장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교육을 통해서 사람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사람은 고장 난 기계처럼 취급해가며 교육을 통해서 고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고칠 수 있는 부분은 상당히 제약적이다. 과학적 지식, 기술, 요령 등등 바뀌면 유용성이 즉각 눈에 보이는 것들만 교육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 리더를 만드는 것처럼 근원적 변화는 교육을 한다고 유용성이 금방 드러나는 것이 아니어서 교육을 통해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인간의 근원적 변화는 교육이 아니라 사건을 통해서만 바뀐다.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유전적으로 받은 50%가 이미 고정되어 있다. 또한 유년기와 청소년기 유전적인 것을 개발시키는 부모도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부모에 의한 양육까지 합해 70%는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다. 결국 학습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머지 30%인데 이 30%로 부모와의 동일성으로 형성한 정체성에 손상을 주지 않고 자신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부모와 상관없이 남아 있던 30%도 부모가 유전자 복권으로 물려준 70%라는 동질성과 일치하는 방향의 과학적 지식이나 자신에게 현실적 이득과 성공을 가져다주는 요령이나 실용적 지식으로 채워진다. 이런 상황에서 세상이 바뀌어서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의 동질성이 장애가 된다고 교육을 통해 바꾸려 시도하면 또 다시 교육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미신에 빠진다. 부모 유전자와의 동질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아닌 사람을 바꾸려는 시도는 대부분 바위에 계란치기의 비극으로 끝난다.
사람은 정말 변화가 불가능할까? 아니다. 교육을 통해서 바꾸려고 시도할 때 바뀌지 않을 뿐이지 근원적으로 변화에 성공하는 사람은 많다. 특히 리더는 근원적 변화를 성공시킨 사람이다.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전체가 바뀌는 근원적 변화는 사건을 통해 바뀐다. 일례로 실제로 죽음 앞에 갔었던 사건을 경험했던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조만간 다시 죽을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급격하게 바뀐 사람들에게 주변 사람들이 “죽을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근원적 변화에 성공하는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아도 죽음을 현실로 소환해 죽음을 상상적으로 체험하고 이 죽음사건에 대한 체험을 기반으로 삶의 목적함수(정신모형)를 선제적으로 바꾼 사람이다. 죽음에 대한 상상적이고 선제적 체험이 부모가 물려주고 만들어낸 단단한 동질성의 알을 깨고 나오게 만드는 사건인 셈이다.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은 병아리 부화처럼 죽음에서 벗어나는 부활사건을 통해서다. 근원적 변화란 그냥 방치하면 죽을 운명에 있는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과정과 비슷하다.
병아리에게 부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미 닭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어미 닭은 알을 긍휼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적어도 2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품어 주어야 한다. 어미의 따뜻함이 전달되어 긍휼의 사랑으로 품어주면 병아리는 알 속에서 깨어나고 자라서 어미에게 부화를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가 들려오는 미세한 균열된 지점을 찾아 알을 깨주는 작업이 줄탁동시다.
성인을 변화시키는 과정도 부화의 사건과 비슷하다. 반드시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있다면 교육을 통해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의 사랑을 통해 이 사람의 내면 세계(유전자 복권)를 녹여내는 것이 필수적이다. 내면이 충분히 녹여지고 이 사람이 이 녹여진 것에서 양분을 취해 스스로 움직일 정도 성장하면 자신을 알에서 꺼내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것을 지켜보던 맨토는 이 사람이 보내는 신호의 방향과 균열을 찾아서 알에서 깨어나게 도움을 준다.
이런 부활사건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은 어미닭이 되어 친구 싱클레어가 자신의 알에서 깨어나는 것을 돕는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자신의 세계로 알고 있는 알을 정신모형이라고 칭한다. 진성리더십에서 변화는 자신의 정신모형을 더 나은 정신모형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어미닭이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할 때 온전히 깨는 것이 아니라 병아리가 쪼아서 미세한 신호를 보내는 지점을 쪼는 것도 병아리의 자기주도성을 살리기 위함이고, 병아리와 같이 알에 구멍을 낼 때도 작은 구멍만을 내준다. 병아리가 이 구멍을 스스로의 힘으로 확장해 나오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근원적 변화란 남들이 해주는 것이 아닌 자기 주도성의 근력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정리하면 실용적 지식을 넘어서 성인을 학습 시켜서 변화 시키겠다는 것은 미신에 가깝다. 성인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근원적 변화는 물리적 죽음이던 심리적 죽음이던 죽음을 당겨와 미리 체험하는 각성 사건과 죽음의 체험을 스스로 극복하는 고난사건을 통해서다.
근원적 변화라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미 자기 부화를 경험한 어미 닭이 변화 시키고 싶은 대상을 상당 기간 동안 긍휼의 사랑으로 감싸는 노력이 요구된다. 긍휼의 사랑으로 변화의 주체가 유전자 복권으로 받은 동질성을 녹일 수 있게 도와주고 녹인 것들을 양분 삼아 진정한 자신의 원형인 성인아이를 깨우고 치유하고 일으켜 세워야 한다. 치유된 성인아이만이 자신을 알을 깨고 나오는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다. 유전자 복권의 기세에 죽어 지내던 내면의 자아가 태동해 부모가 유전자 복권을 동원해 만들어준 동질성의 알을 깨고 나올 때 새로운 자아가 탄생한다.
이 자아가 자라 정신모형이라는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신호를 보내면 맨토는 신호의 지점을 찾아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가 주도적으로 자신의 알을 깨고 나온다면 근원적 변화의 여정이 시작된다. 리더는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알을 깨고 새롭게 마주한 세상에 맞는 새로운 정신모형을 구축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근원적 변화는 교육이 아니라 이런 각성과 고난이라는 일련의 사건을 정교하게 디자인해서 자기 부화의 여정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태어난 주체는 세상이 변화하면 다시 알에 갇힌다.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정신모형의 알에 갇히고 다시 깨어나는 N번의 부화사건을 경험한다. 온전한 주체로서 나이는 부화사건의 숫자인 N이다. N의 숫자가 높아질수록 나이는 들지만 영혼을 담고 있는 있는 정신은 더 젊은 상태를 유지한다. 지금 세상에서 어른이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은 물리적 나이가 아닌 부화사건의 숫자 즉 N의 나이가 많은 사람을 의미한다.
N번의 부화(근원적 변화)를 경험한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N번의 부화에 대한 내러티브를 정산해 자신이 세상에 남겨야 할 유산을 기억의 뮤지엄에 헌정하고 몸은 세상을 떠난다. 후세의 누군가가 기억의 뮤지엄에서 돌아가신 분의 내러티브를 자신 삶의 날줄로 채택하면 이분 삶은 후세의 삶에서 다시 몸으로 부활한다. 평생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 복권으로 편하게 먹고 살아가며 부모의 동질성이라는 알을 깬 경험이 없는 사람이 N번의 부화를 건너 뛰고 영생에 대한 약속인 부활을 경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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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역사적 부활사건은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가 선민의식에 쩔어 있던 유대인이라는 유전자 복권을 극복하고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남긴 유산은 12 제자를 통해 부활했고 이들의 제자와 제자를 통해 시대를 초월해 부활에 성공해 세상의 큰 근원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믿음 선조들의 연속된 부활 사건 성공이 지금의 기독교라는 거대한 알을 낳았다. 문제는 현세를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다시 이 알을 깨고 다음의 부활사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근력이 있는 지다. 부활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교회라는 알 안에서 예수를 마지막으로 장사 지내는 일이 현실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안락을 주기도 하지만 깨지 못한다면 알은 죽음을 예고 받은 사형수의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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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