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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하는 국가를 위한 소망 협업의 플랫폼
번성하는 국가를 위한 소망
협업의 플랫폼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8일 독립국가로 선언된 나라이다.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의 노예(아포리아) 상태에서 탈출한지 근 2000년간 디아스포라(이산)를 경험하고 2000년만에 가나안과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서기 7세기 잃었던 영토 팔레스타인 땅에서 아랍 무슬림를 몰아내고 나라를 다시 건국했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에도 아랍 국가들과 수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스라엘은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최강국이다. 특히 로비단체를 앞세워 미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유대인들의 아바타라고 생각한다. 노벨상 뿐 아니라 초연결 디지털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의료, 제약, 전자 등 분야에서도 이미 선도국이 되었다. 전쟁 중임에도 2023년 1인당 GDP는 44,928.16 달러로 일본을 앞서 있고 순위가 영국과 비슷하다. 실질 성장률도 3.6%로 최고 수준이다. 국가의 부는 석유로 부국이 된 쿠웨이트와 아랍에밀레이트를 뛰어넘었다. 2024년 국제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북유럽 국가와 함께 최상위 순위인 5위에 등재되어 있다. 심지어 노르웨이와 네델란드에도 앞서 있다. 2024년 대한민국은 순위는 52위다.
대한민국처럼 부존 자원도 없는 나라가 자원 대국인 아랍 국가들을 뛰어넘어서 글로벌을 이끄는 경제, 정치, 창의성, 행복의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한 마디로 공동 운명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협업의 힘이다. 국가적 수준에서 협업(collaboration)이 가동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이 가능했다. 협업이란 공동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사회 모든 곳에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능력이다. 협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구성원들이 공동의 운명을 설명하는 두 축인 사명과 목적에 대한 강력한 믿음 때문이다. 공동의 목적이 부재하다면 연결망의 각 포지션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개인 목적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을 협업으로 참여 시키는 것은 많은 정치력이 요구되고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의 개인적 목적에도 도움이 되는 범위 안에서 부분적으로 서로 돕는 협동(cooperation)만 가능하다. 협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족하기 위한 정치행위다.
이스라엘이 세계 각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유대인들을 동원해서 초단기간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명을 공동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믿음이 협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혁명을 이끌 수 있는 힘도 가나안이라는 공동운명체의 실현이라는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들이 경험했던 디아스포라와 아포리아의 경험을 협업으로 동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사명과 목적을 기반으로 한 협업국가이다. 어떤 국가적 프로젝트이든 협동이 아니라 협업이 가동된다. 외견상 보이는 협동은 협업의 결과물일 뿐이다.
초연결사회의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이런 목적과 사명을 기반으로 사회적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초연결 디지털 사회로 진보해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국가가 이런 네트워크 효과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공동의 운명체로 참여자들을 묶을 수 없다면 플랫폼의 거버넌스를 만들 수 없어서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설사 뛰어난 기술로 플랫폼을 만들었다해도 참여자들이 이 플랫폼을 설계한 주체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믿음을 잃는다면 누구도 참여하지 않아서 결국 국가가 설계한 플랫폼은 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을 세계각국 방방곡곡에 뿌리를 내려 정착했다. 사실 성서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국해야 한다는 공동의 운명에 대해서 각성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감자 알들처럼 서로 교류가 없이 고립되어 살고 있었다. 이들 고립된 유대인들의 네트워크를 복원해서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들은 성서의 명령에 따라 가아안 땅에 나라를 세울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공유한 보이지 않는 세 삼의 실체인 운명공동체에 대한 각성 때문이다. 결국 이들 잠재적 사회적 자본이 자본으로 동원되는 계기는 이들이 각성한 공동 운명에 대한 정체성 때문이다. 이 정체성에 대한 각성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건설될 수가 없었고 세 차례의 전쟁에서도 이길 수도 없었다.
이스라엘의 사례를 통해 본 국가의 번성에는 두 가지 요소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유대인들처럼 세계 각국에 다양한 뿌리를 내려서 네트워크의 다양성에 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지의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유대인들 경우처럼 공동 운명체라는 정체성이 있어서 이들의 다양한 사회적 자본을 협업으로 동원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퍼트남 Putnam, 콜만 Coleman, 브르디외 Bourdieu, 푸꾸야마Fukuyama 등 사회적 자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바로 두 번째 요인이다. 공동 운명임을 일깨워주는 사명과 목적에 대한 공유는 사회적 자본이 협업으로 동원되게 만드는데 결정적 촉매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자원을 함축하고 있는 네트워크 다양성이 필요조건이라면 사명과 목적을 통해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는 믿음은 사회적 자본이 성공적 협업으로 동원되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대한민국은 유대인처럼 2 천년의 역사를 걸쳐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글로벌하게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미약하다. 몇몇 독립군들이 일제의 통치를 탈출해 디아스포라를 경험했지만 디아스포라 상태에서 사회적 자본을 만들기에는 소수에 불과했다.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박사 같은 분들이 있었지만 소수였다. 이스라엘처럼 집단적으로 글로벌 수준의 다양한 네트워크 뿌리를 양성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가 아니었다. 더 큰 다른 문제는 45년간 일본 만주 중국, 소련, 미국으로 흩어져 살던 한국인들이 해방을 위해 힘을 결집시킨 적은 있지만 해방을 달성한 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유된 정체성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오히려 좌익과 우익으로 나눠져 국론분열을 일삼았고 이런 전통이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의 물타기에 편승해 지금의 뉴라이트 토굴세력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국민들을 결집시키는 사명과 목적이 부재하니 국가가 혈연, 학벌, 지연, 성, 세대 등의 정치 카르텔 세력들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이런 다양한 네트워크를 앞장서서 거부하는 카르텔 세력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플랫폼이 되어 사회적 자본을 동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달리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형성된 사회적 자본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진 다양성이라도 받아들여 인재들을 발굴하고 또한 이들을 결집 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한 운명으로 묶어주는 사명과 목적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 초연결 플랫폼 시대에 이런 사회적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구심점이 없는 나라나 기업이 번성을 누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변화가 상수가 된 초연결디지털 시대 우리는 이스라엘이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동원했는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이긴 사람들이란 뜻이 담겨 있다. 공동운명에 대한 신앙심과 헌신이 그만큼 신실하다는 의미이다.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우리나라에서 목적과 사명이 없는 지도자에게 의존해가며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불운중 불운이 될 것이다.
초연결 초뷰카 디지털 시대는 자기조직적 세상이다. 설사 국가가 사명과 목적을 잃었어도 국민들 개인의 수준에서 우리가 공동의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명과 목적 지향적 삶을 복원할 수 있다면 건강한 협업을 위한 플랫폼이 가능해진다. 국민들이 목적과 사명 지향적이어서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다양한 사회적 자본이 협업으로 동원될 수 있다면 설사 국가와 지도자가 사명을 잃었어도 성숙한 시민사회가 가능해진다. 지금 대한민국의 미래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못하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각성에 달려 있다.
개인을 비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머리가 좋은 것도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지금의 이스라엘과 같은 비범함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 운명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협업의 기적이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사명과 목적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 같은 운명의 배를 공유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복원한다면 국가가 플랫폼으로 작동하지 않아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고 번성하는 협업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서로의 이득을 챙기는 협동이 아니라 공동운명을 실현하는 협업이다.
개인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협동은 정치행위에 불과하지만 협업은 공동의 운명을 실현해 근원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근력이다.
적어도 이번 선거가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사명과 목적의 복원을 위해 난장이들의 집단적으로 쏘아 올린 희망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긋지긋한 정치를 종식하고 여기저기에서 당이나 유력자의 아바타가 아닌 진성리더들의 선한 영향력을 체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