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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비론자의 정치학을 극복하는 비밀 리더의 각도, 45도

Sep 21, 2025 ·6분 ·jkyoon · 455
양비론자의 정치학을 극복하는 비밀
리더의 각도, 45도
25.6.5
요즈음 이념편향 전쟁이 심화되니 좌도 문제고 우도 문제라는 양비론을 제기했다가 곤경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훈아도 얼마전 콘서트에서 우도 문제지만 좌도 잘했느냐고 양비론을 펼치다가 많은 팬을 잃었다. 분당 우리교회의 이찬수 목사도 계엄정국이 벌어지는 상황에 기독교인들은 편들지 말고 기도하자는 설교가 양비론으로 해석되어 해명글까지 내놓았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대표 시절 당이 지향하는 입장을 중도보수라고 선언하자 진보와 보수 양쪽으로부터 양비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양비론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사안에 대한 논쟁이 격화될수록 집단은 찬성과 반대로 분열되는 힘을 가진다. 양극단을 대표하는 이원론은 현실 중 자신 진영에 유리한 것을 극단화 사켜 마치 현실처럼 주장하는 논리 싸움의 무기다. 이원론자들의 주장도 현실의 일부분을 반영하지만 이것을 현실이라고 믿는 순간 현실에 대한 할루시네이션(환각현상)이 생긴다. 이원론 주장의 한쪽 진영을 믿는다는 것은 현실에 대한 극단적 왜곡에 가세하는 것이다.
집단동학이 극단적 양극화로 흐르는데 여기에 대항해 중도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보수 진보 양쪽의 공격을 받는 위험한 행보다. 우리 속담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싸움이 격화되면 말리는 시누이가 가장 미운 사람으로 전락한다. 어느 쪽에도 헌신하지 않는 기계적 중립은 회색분자이거나 기회주의자로 폄하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와는 달리 변화하는 세상에서 기계적 중립은 중용에서 언급하는 중도의 덕도 아니다.
최근에 발매된 <급진거북이: 진성리더의 변화전략 (잉걸북스, 신승철)>에서는 급진거북이가 어떻게 이런 양비론을 극복해가며 근원적 변화에 도달하는 지를 설명한다. 급진거북이는 양비론이 아니라 직조복제(Weavering Isomorphism)를 통한 동적역량(Dynamic Capability)전략을 사용한다.
직조복제란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다.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날줄이 먼저 존재하고 여기에 직각으로 씨줄이 작동해서 문양을 만들어간다. 기존에 존재하는 현실은 날줄이고 새롭게 문향을 만들어가는 것은 씨줄이다. 날줄이 없다면 씨줄만으로는 문양을 만들지 못한다. 날줄은 현실에 기반한 필요조건이라면 씨줄은 충분조건이다. 우리 말에 날이 서 있다는 것은 날줄만 있고 직조해야 할 씨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직조복제는 씨줄과 날줄을 직각으로 직조해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직조복제를 위해서는 이원론을 해체해 직각으로 세운다. 두 변수가 직각이라는 것은 이원론에서 마이너스의 상관관계를 0의 상관으로 되돌리는 사고 실험이다. 대립되는 두 생각을 직각으로 세웠을 때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최적의 각도는 45도이다. 이 45도의 각도 끝에는 항상 나침반의 북극인 북극성이 발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 보는 각도가 45인 셈이다.
이원론은 대립되는 입장을 같은 차원의 양극단에 배치시킬 때 발생한다. 이런 세계관은 제로섬의 세계관이다. 내가 이기면 상대가 지고 상대가 더 많이 가져가면 내 것을 잃는다. 직조복제란 이렇게 대립된 양 극단을 날줄에 해당하는 X축과 씨줄에 해당하는 Y축의 두 개의 독립된 차원으로 나눠서 직각으로 교체시켜 새로운 문양을 만드는 방식을 의미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의적 변화는 모순으로 보이는 현상을 직각으로 교차시켜 직조복제를 이용해 태피스트리를 만들고 이 태피스트리를 이용해 변화를 완성하는 동적역량 전략이 작동한 것이다.
그림에도 있듯이 양비론은 아무리 변화를 성공해도 B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동적역량은 직조복제의 원리를 이용해 B의 솔루션을 더 큰 윈윈의 가치를 가진 C, D, E의 솔류션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끊임없이 좋은 쪽으로 공진화한다는 점을 가정할 때 중용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0의 좌표에서 시작해서 주어진 시점에 맞게 대각선을 타고 움직이는 균형점인 A, B, C, D, E로 솔루션을 옮기는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양비론자들은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직감하지만 안타깝게도 45도 각도에 존재하는 존재목적의 북극성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인생에서 45도의 각도는 역풍 속에서 요트가 45도 각도를 바꿔가며 앞으로 진행하는 원리로 본인의 저서 급진거북이 미시전략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사람들이 가진 보수와 진보의 정신모형도 마찬가지다. 목적을 더 각성한 사람의 정신모형이 씨줄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정신모형이 날줄이 되어 새로운 세상의 태피스트리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이 비전에 근거해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급진거북이가 사용하는 동적역량전략이다. 대선이 끝난 지금은 역풍을 맞아 난파한 극우 보수를 해체하고 민주당이 새 시대의 새 보수인 날줄로 나서고 태어나지 않은 미래에게 남겨줄 지구의 유산에 대해 고민하는 새로운 진보가 씨줄로 세워져야 동적 역량에 따른 정치개혁이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이 된다. 민주당은 새로운 씨줄에 욕심내기보다는 모든 포커스를 죽은 민생을 살려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세상을 더 창의적으로 변화시키는 장본인은 자신의 정신모형과 타인의 정신모형 사이에 직조복제 원리를 따르는 급진거북이들이다. 급진거북이는 자신의 정신모형을 먼저 꺼내기 전에 상대가 어떤 정신모형을 가지고 있는지를 공감적으로 경청한다.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정신모형이 날줄이 될 수 있는지 씨줄이 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둘을 직조해서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태피스트리를 공동의 정신모형으로 만들어낸다. 씨줄인지 날줄인지의 문제는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공진화 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정신모형이 더 존재목적에 근접해 있는지의 문제다. 상대의 정신모형이 더 존재목적을 공진화시키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씨줄을 주장하기보다는 기꺼이 날줄이 되어준다.
새로운 태피스트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모형에 근거한 가치판단을 중지하고 상대의 정신모형을 위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under_standing이 요구된다. 최근 개신교가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전도과정에서 자신의 정신모형의 우위성에 대한 편견으로 상대의 정신모형을 제압하는 십자군 전쟁 때문이다. 기독교가 일반인에게 기피해야 할 종교로 전락한 이유는 스스로가 시대적 맥락에 울림이 없는 거미의 독선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고 태극기 부대와 연합해 동성애자와 공산당 세력이라는 허수아비를 세우고 이들을 악마화 해가며 이들의 편에선 사람들의 정신모형을 공격하고 제압하는 십자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 십자가 성전이다. 예수가 가르치는 십자가 성전은 자신을 희생해서 남들을 살리는 진성리더의 급진거북이 전략이다. 초기의 기독교는 십자가 성전을 통해 사랑의 힘으로 로마의 군대를 무너트렸다. 십자군 전략은 예수의 십자가 성전과 이슬람 뿐 아니라 자신 편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몰아 공격하고 희생시켜 자신만 살겠다는 제로섬 전략이다. 십자군 전쟁 전략은 공격받은 사람들도 상처를 입지만 공격하는 사람들은 더 큰 상처를 입게 되어 결국 참여자 모두가 망하는 전략이다. 십자가 성전에 근거한 제대로된 믿음은 더 높은 곳에 세울 수 있는 화평의 태피스트리를 만들지만 십자군 전사의 근거 없는 우월성은 편견, 갈등, 차별, 씻을 수 없는 혐오를 만든다.
급진거북이의 동적역량은 직조복제를 통해 세상을 조금씩 확실하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이런 창의성이 있는 급진거북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밤에도 북극성을 가슴에 품고 자신이 등대가 되어 세상의 지평을 밝히는 태양이 떠오르는 날을 꿈꾼다. 다른 한편으로는 씨줄과 날줄의 직조복제 과정에서 상대의 정신모형 속에 숨겨진 가시를 물리력으로 수술해 뽑아내기보다는 따뜻한 긍휼의 사랑으로 녹여내는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세상을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목적이라는 북극성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쓴 사람이기도 하지만 상대와 자신의 고통에 대한 아픔의 눈물로 자신의 마음의 눈과 상대의 마음의 눈을 씻어낸 사람들이다.
근원적 변화는 자신의 정신모형의 감옥에 다른 사람을 제압해서 투옥시키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의 정신모형을 남들에게 가르치는 행동도 아니다. 창의적, 근원적, 생산적 변화는 정신모형의 직조를 도와주는 셰르파 행동이다. 급진거북이는 고유한 새로운 태피스트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의 운동장을 더 높은 곳으로 옮겨 더 넓은 세상의 지평을 보여주는 셰르파다. 동적역량이라는 직조와 초월을 통해 사부작 사부작 변화를 완성하는 #급진거북이 전략(#잉걸북스 2024)이다.
양쪽에서 역풍이 몰아칠 때는 맞서 싸우는 것을 멈추고 45도에 있는 공의로운 목적을 향해 요트를 즐겨라. 45도의 현자의 시각이 양비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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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