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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치핀인가? 브로커인가? 고립된 섬인가? 초연결시대를 제대로 살기
Sep 21, 2025
·6분
·jk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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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린치핀인가? 브로커인가? 고립된 섬인가?
초연결시대를 제대로 살기
25.7.1
네트워크 사회는 한 마디로 연결은 있지만 연결망 사이에 연결되지 않은 구조적 구멍(structural hole)이 많은 사회다. 반대로 초연결 사회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이론적으로는 연결이 완성된 사회다.
초연결사회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구조적 구멍이 메꿔지고 심지어는 연결된 것에는 센서 기능이 달려 데이타가 축적이되고 이 축적된 데이타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공유를 전제로 하고 있는 사회다. 즉 연결된 모든 것에는 cc tv기능이 달려있어서 항시 촬영되고 촬영된 것이 공유되는 것이 전제된 사회가 초연결사회의 핵심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ccTV 데이터를 공유해가며 시시비비를 가린다. 초연결사회는 극단적 투명성(Brutal Transparency)가 담보되는 사회여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여가며 연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다. 자신과 타인에게 투명한 상태인 진정성이 초연결시대의 화폐다. 사람들이 네트워크 사회는 정보의 비대칭이 특징이라면 초연결사회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지는 쪽으로 끊임없이 진화한다.
네트워크 사회는 연결과 연결 사이의 연결되지 않은 구조적 구멍을 이어주는 브로커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어 있다. 예를들어 한 나라가 물건을 만들고 다른 나라가 물건을 산다고 할 때 물건을 만드는 나라와 물건을 사는 나라를 연결해주는 오파상이 있다면 이들이 구조적 연결구멍을 이어주는 부로커들이다. 브로커들은 양 국가가 상대국가에 대해서 서로 모르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협상 파워를 축적한다. 이들 브로커들은 상대의 정보를 상대에게 최대한 직접 공개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들은 모든 정보가 자신을 통해서만 상대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구조적 구멍이 연결되는 것을 막는다. 구조적 구멍 때문에 생긴 정보의 비대칭성이 자신들 파워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한 전문적 브로커들의 득세는 우리 사회 곳곳에 편재해 있다. 명태균이나 건진법사 등 정치브로커, 국회의원, 김건희, 케비넷 검찰, 윤석열, 윤핵관, 행정관료들도 국가와 국민들 사이의 구조적 공백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던 브로커다.
변호사 공인중개사 회계사 은행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전문지식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생계를 꾸리는 브로커들이다. 회사의 관리자들도 따지고 보면 사장과 종업원 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연결해주는 브로커이다. 대표이사와 종업원 사이에 있는 구조적 구멍이 서로 간 직접적 연결로 사라지면 중간관리자는 브로커는 힘을 잃는다. 지금 시대 중간관리자가 무대에서 사라진 이유다.
브로커를 이용한 거래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학연 지연 혈연 등 연줄을 동원해 카르텔을 만든다. 카르텔은 구조적 구멍을 이용해서 집단적으로 브로커 세력이 연대한 것이다. 나라나 한 조직에 카르텔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들이 운용하는 운동장에 여기저기 구멍이나 감춰진 토굴들이 많이 존재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임을 뜻한다. 카르텔 세력은 초연결사회에 공인된 적들이다.
초연결사회는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공유되고 있는 사회이므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져 브로커들이 사라지는 사회이다. 모든 거래는 브로커를 통한 간접거래가 아니라 당사자간의 직접거래로 전환된다. 당사자간 직접거래의 장부가 기록되고 공유된다. 블록체인이 일반화되는 사회가 초연결사회다. 초연결사회에서는 브로커 비용이 사라지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진다. 간접거래를 통한 거래비용이 사라져 초연결사회가 실재로 도래하면 제일 먼저 사라질 대상은 브로커 국회의원, 은행, 관리자, 전문가들이다. 브로커와 카르텔이 사라지고 가동가능한 네트워크에 완전한 연결이 실현되면 조직은 가장 수평적인 운동장이 된다. 공의로운 운동장이란 모든 노드가 다 연결되고 정보가 공유되어 정보의 민주화가 실현된 사회다.
네트워크 사회에서 연결은 브로커로 나서는 일이다. 반면 초연결 사회의 연결은 모든 것을 연결한 린치핀(Linchpin)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첫 그림에도 보여지듯이 7명이 서로는 직접적으로 연결이 없고 7인은 모두 중심에 있는 인물 1을 통해 연결된다면 1은 브로커로 최대의 수혜를 누린다. 브로커 전략은 구성원 서로 사이에는 구조적 구멍을 만들어 연결을 끊고 브로커를 통한 연결만을 허용하는 전략이다.
가운데 그림은 린치핀 전략이다. 인접한 구성원 사이에 구조적 구멍이 전부 메꾸어졌을 뿐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린치핀 역할을 하는 사람에 의해 다시 간접적으로 연결된 바퀴형 구조다. 초연결시대 린치핀 역할을 하는 리더는 집단이 달성해야 할 공동의 목적과 집단이 가진 아픔을 공감하는 탁월한 긍휼감으로 수레바퀴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다. 구성원들은 린치핀을 구심점으로 목적 과제를 협업해 자신들에게 내재한 고통을 해결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신뢰잔고를 축적해 구성원들 사이에도 자발적 연결이 가동되게 만든다. 린치핀 역할을 하는 리더는 자신의 개입이 끝난 후에도 린치핀이 가동하도록 목적의 시간을 볼 수 있는 시계탑을 세운다.
브로커 전략의 의도는 분명하다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구조적 구멍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린치핀 전략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협업하는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구조다. 린치핀 전략이란 협업의 성과를 통해 서로에 대한 신뢰의 잔고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린치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연결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해준 결과로 많은 구성원들로부터 십시일반의 기여금을 받고 이 기여금은 네트워크가 커질수록 승수효과를 거둔다.
초연결사회에서 누가 린치핀 역할을 수행할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공의로운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과 존재목적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지켜가며 내면의 스토리와 외면의 스토리가 같아지는 되어감을 체험한 인간이 린치핀으로 등장할 것이다. 존재목적을 통해 남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체험적 가치의 크기가 같다면 이 사람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평판이 모든 거래의 화폐처럼 통용될 것이다. 진정성은 어떤 목적 스토리를 실제 삶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자신의 내면과 외면이 목적적 스토리로 통합되어 있어서 자신의 내면과 외면 사이에 거래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진정성의 본질적 모습이다. 내면과 외면 사이의 정보 비대칭이 없는 상태가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있는 두 사람이 목적을 위해 협업한다면 둘 사이에 거래비용은 없다.
존재목적과 긍휼감 대한 신실함으로 증거한 진정성은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투명해지는 초연결사회와 가장 잘 공진화할 수 있는 리더의 본질적 모습이다. 내용은 없으면서 흥정을 잘해 가격을 높이는 브로커들이나 마케팅으로 포장하는 것에 승부하는 사람들이 퇴조하고 똑같은 목적가치에 대해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사회가 될 것이다.
모든 연결이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린치핀 연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고 개인적 이득을 넘어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가치의 경계가 중요하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연결할 수는 없다. 자신이 설정한 가치의 경계 안에서 모든 연결을 실현할 뿐이다.
이런 초연결사회에서는 윤석열, 김건희, 검찰 브로커, 각종 관과 관련된 마피아들이 제일 먼저 사라지겠지만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연결을 끊고 고립된 섬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초연결 시대의 지각변동이 심화되면 이들도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브로커가 아닌 린치핀 연결촉진전략으로 초연결 시대를 담대하게 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