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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등교육 문제를 빙자한 포퓰리즘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

Jan 15, 2026 ·8분 ·jkyoon · 326

한국 고등교육 문제를 빙자한 포퓰리즘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
만취한 술꾼이 집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 술꾼은 자신이 술에 만취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고 계속 집 옆 가로등 밑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궁금해서 물어본다.
“뭘하고 계신가요.”
술꾼의 대답,
“열쇠를 찾고 있지요.”
나그네가 같이 찾아보다 키가 발견되지 않자 다시 묻는다.
“열쇠가 보이지 않는데 확실히 여기서 잃어버리셨나요?”
술꾼 왈,
“아니요 집앞에서 잃어버렸는데요.”
나그네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는지요?”
술꾼이 대답한다.
“그런 이상한 질문을 왜 하는거요.”
“여기가 밝고 찾기 좋잖아요.”
“서울대 10개 만들기 논쟁”은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 잃어버린 열쇠를 시대착오적으로 엉뚱한 답에서 해결하려는 술꾼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논쟁이다. 우리가 지금 처한 교육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비상식적 논쟁이다.
대한민국의 학부와 대학원을 담당하는 고등 교육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논쟁은 일견 솔깃하게 들리지만, 질보다는 수로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화 시대의 포퓰리즘 발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고등 교육의 문제는 단순히 대학의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시대가 던지는 문제의 본질을 읽는 고등교육의 근원적 재정의와 이에 따른 근원적 변화가 요구된다. AI 사용에 맞춘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에 맞게 학부와 대학원의 역할을 재정의 하고 이 새로운 정의에 따른 차별적 재구조화에 대한 통찰력이 요구된다.
학부와 대학원의 동반 붕괴:
우로보로스의 굴레
현재 한국 고등 교육 시스템은 학부와 대학원이 서로를 잠식하는 우로보로스(자신의 꼬리를 먹어가며 생존하고 있는 굶주린 뱀)의 굴레에 갇혀 있다. 알려진 답을 실수하지 않고 풀 수 있는 가장 초보적인 일원학습 능력을 평가하는 수능 중심으로 이입된 학생들에 대한 획일적인 학부 교육은 학생들이 잠재적으로 가졌던 다양성과 창의성을 고사시킨다. 이런 학생들에게 정해진 답을 다시 알려주는 산업화 시대의 학부 교육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을 다시 차단한다. 이런 학부 졸업생들이 대학원으로 이입되면 창의적 연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대학원의 연구 역량 저하로 이어진다. 선배들이 대학원을 졸업해도 차별적 문제 해결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현명한 학생들은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는다. 그나마 정해진 답을 외우는 암기능력이 입증된 학생들은 모두 법 전원에 진학하던지 아니면 수능을 다시 치러 의대로 입학한다. 실제로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쳐왔던 본인도 수 년 전부터는 대학원에서 한국 학생을 가르치지 못했다.
학부 교육의 부실은 대학원 연구력 저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암기 위주의 교육을 받은 학부 졸업생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해 대한민국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깝다.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열망하는 학생들이라면 한결같이 외국 유명 대학원으로 눈을 돌린다. 이러한 악순환은 한국 고등 교육 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한국 대학원에서 새로운 지식과 연구 결과들이 도출되어야 이것이 다시 학부에 환류되어서 학부생들을 시대에 맞게 교육시킬 수 있는데 오래전에 선순화의 고리가 끊어졌다.
대한민국에 세계적 표준과 경쟁할 수 있는 대학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 연구력 순위에서 한국 대학은 50위권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교수들의 낮은 연봉, 부족한 연구기금, 낮은 인센티브는 이런 악순환이 종합해 불거진 것이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실제로 지금 당장 대한민국의 한 대학에서 글로벌 수준에 맞춰서 연봉과 인센티브와 랩을 제공한다고 해도 글로벌 연구력이 있는 교수가 수준 높은 대학원 학생도 없고 같이 연구할 수 있는 동료도 없는데 지원하지는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학부와 대학원이 오래전부터 시대에 맞는 차별적 교육과 연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드라이버를 상실해 드라이버를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에 숨겨져 있다.
MIT, 스탠퍼드, UC 버클리와 같은 연구 중심 대학원 대학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환경과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창의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글로벌 연구에 대한 열망이 있는 수준 높은 학부 졸업생들이 전 세계로부터 모인다. 이들 대학에서 학부 교육은 부차적인 교육이고 자원의 대부분을 대학원 교육과 연구에 차별적으로 투자한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의 대규모 연구 지원을 바탕으로 첨단 연구를 수행하며,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인 석학들을 유치한다. 이런 차별적 대학원을 유지하는 연구와 학문에 대한 드라이버나 이런 드라이버를 실행하는 커리큘럼이나 인센티브 시스템도 좋은 학부의 시스템과 다르다. 이들 대학들이 학부생들에게 높은 등록금을 요구해도 학부생들이 입학하는 이유는 이들 석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나마 지금 현 시대를 이끄는 가장 첨단의 지식과 전문성을 맛보고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 역량을 훈련 받은 박사들이 다시 좋은 학부 대학의 교수로 영입되어 학생들에게 시대에 맞는 최고 수준의 문제해결역량을 훈련시킨다. 대학원 연구와 학부 교육이 서로 잡아먹는 우로보러스의 구조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협업하는 선순환 구조다. 이런 대학원을 가진 국가들에서 대학원은 연구에서의 차별적 수월성을 유지하고 학부는 교육의 수월성을 유지해가며 수월성의 축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국가 고등교육의 드라이버이자 승부처는 이런 글로벌 연구력이 입증된 경쟁력이 있는 대학원이 얼마나 있는지의 문제다.
이런 교육과 연구가 연결된 고등교육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능 중심 서열화의 상징인 서울대가 표준이 아니라 글로벌에서 경쟁력이 있는 수준의 학부 대학을 최소한 10개 육성되어야 된다고 주장해야 맞다.
이런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학부대학은 각 대학이 360도 다른 방향으로 뛸 수 있는, 즉 다양한 전문성과 창의성을 배양하는 차별성과 차별성에 대한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 학부는 다양성의 차별화에 방점을 두고 특정 분야에 특화되거나, 융합 교육을 통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다면적인 역량을 길러낼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이들의 등록금을 전적으로 책임져 우수 학생들이 차별적 다양성을 전제로 한 학업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탐색하고 훈련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차별화된 다양성을 추구하는 커리큘럼은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벤치마킹해 학생들의 기초 역량을 탄탄하게 다지는 학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형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AGI 수준에 도달하면 학부 교육에서는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뛰어 넘을 수 있는 독창적, 비판적, 구성적 사고능력을 가진 인재가 최고의 인재로 등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의 경쟁력의 종착지인 연구에 포커스를 두는 대학원은 다른 문제다. 글로벌 연구력 증진을 위한 서울대가 아닌 MIT, 스탠포드, 버클리 수준과 경쟁할 수 있는 대학원 중심 대학 3개 정도가 다시 설립되고 육성될 때 서울대는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수준을 경험할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혁신적인 10개 학부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대학원에 입학해 협업을 통해 복합적인 글로벌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글로벌 수준의 대학원 대학으로 육성되어야 한다. 이들 대학원은 MIT, 스탠퍼드, UC 버클리에 맞먹는 국제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해외 유수 대학원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교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투자는 학생 등록금이 아닌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전적으로 국가와 직접적인 수혜자인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대학원을 부차적으로 취급하고 학부 등록금 수준에 맞춰진 연구 인센티브는 한국 대학원 연구력를 붕괴시킨 주범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는 단순히 예산의 문제는 아니다. 한 사람 장관을 임명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과 대학원이 사회에 창출하는 차별적 가치의 드라이버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학의 연구, 교육, 봉사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대학의 시대적 소명에 대해 통찰력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주도해야 한다. 대학과 대학원이 국가에 기여하는 차별적인 가치를 명확히 하고 예산을 지원한다면 이를 달성하는 것은 설립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임파워먼트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교육 포퓰리즘이 아닌 백년대계의 통찰력 있는 교육 리더십이 관건이다.
대한민국이 지금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 시대에 요구되는 ‘정해진 답을 잘 외우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대량으로 육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가 상수인 초VUCA 시대에는 이러한 낡은 산업화 시대의 교육 커리큘럼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한국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초뷰카 시대에 맞춰 학부와 대학원이 질적으로 차별화된 역할의 재정립과 이에 상응하는 국가의 과감하고 담대한 ‘백년대계’ 투자가 시급하다.
대한민국도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교육의 양으로 승부하는 자극적인 정치 포퓰리즘을 탈피하고 다가오는 세상의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집고 이런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재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를 살았던 술꾼의 논리에서 벗어난 명징하고 청명한 정신으로 문제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설사 서울대를 100개를 만들어도 지금 시대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고질적 고등교육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학부와 대학원을 차별적으로 재구조화해 글로벌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학부대학 9개, 글로벌 수준의 대학원 대학 3-4개를 지표로 삼고 고등교육의 지평을 높여야 한다. 이런 고등교육에 관한 제대로된 가치 드라이버가 설정되어 집행되면 대한민국을 좀 먹는 고질적 학벌 논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이런 학벌 명성에 건물을 세우고 평생 임대료를 받아가며 졸업장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대학들이 변신하기 시작할 것이다. 스카이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순간 대한민국도 대학생 숫자라는 양으로 승부하는 나라가 아니라 난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교육의 질로 승부하는 고등교육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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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글로벌의 학부와 대학원 차별화 모델
해외 유수 대학들은 학부와 대학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영역의 특성에 맞는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독일의 응용과학대학(Fachhochschule)과 연구 중심 대학: 독일은 직업 교육에 특화된 응용과학대학(FH)과 순수 학문 및 연구에 집중하는 종합대학을 이원화하여 운영한다. FH는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며 졸업 후 바로 산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한다. 반면, 종합대학은 심도 깊은 학술 연구와 이론 교육을 통해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연구 인력을 배출한다. 이러한 이원화 시스템은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전체 교육 시스템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인다.
미국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와 연구 중심 대학: 미국에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와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고등 교육 기관이 공존한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소규모 학부 중심 교육기관으로, 광범위한 교양 교육과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능력 등 기본적인 학문 역량 함양에 집중한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학문 분야를 탐색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학문적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이런 리버럴 아츠 칼리지 졸업생들은 자신 고등교육의 종착역을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실제 학생들은 졸업 후 명문 연구 중심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심화 연구를 이어간다.
30여 년 간 고등교육에 종사한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리버럴 아츠 칼리지와 비슷한 프로토타입을 운영하는 학교는 서강대, 이화여대, 한동대 정도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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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