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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시대를 위한 ‘카이로스 역량’ 현대판 고려장, 극복할 수 있을까?

Jan 15, 2026 ·5분 ·jkyoon · 364

초고령 시대를 위한 ‘카이로스 역량’
현대판 고려장, 극복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 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초고령사회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행의 은퇴 기준과 고용 시스템은 여전히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의 잣대에 머물러 있다. 숙련된 경험, 전문성, 지혜를 가진 수많은 노년층은 단지 ‘나이’라는 크로노스적 기준 때문에 자신의 역량을 펼치지 못하고 사회에서 억지로 밀려나, 이른바 ‘현대판 고려장’의 운명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시간의 두 얼굴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로, 시계나 달력으로 측정되는 양적이고 연속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나 ‘정년’이 바로 크로노스적 기준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포착해야 하는 질적이고 결정적인 순간, 즉 ‘기회’와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카이로스 시간은 베르그송에 의해서 채워짐(Duree)라는 개념으로 연구되기도 했다.
물리적 나이는 시간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적용되지만 카이로스 나이는 체험한 시간을 중심으로 계산된다. 100세까지 천수를 누려도 아무 일도 안하고 몸만 유지하고 살았다면 카이로스 나이는 0세다. 100% 몸만 겉늙은 상태다.
기업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생산성의 문제가 안 풀리는 이유도 카이로스 양적 시간과 크로노스 질적 시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성이란 크로노스라는 양적 시간이라는 그냥 흘러가는 빈 배에 얼마나 몸, 마음, 정신을 몰입해서 자신이 사건의 주체로 삼아 질적으로 체험한 시간인 카이로스 시간을 만들어냈는지의 문제다. 사건의 주체로 생산에 참여한 사람이 생산한 내용과 돈 주기 때문에 억지로 와서 시키는 일만 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같을 수는 없다.
생산성이란 크로노스라는 양적 시간을 극복하고 카이로스라는 질적 시간이 가동될 때 달성된다. 생산성이 카이로스 시간을 매개로 결정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연봉이나 복지를 올려도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크로노스 시간에 휘둘려 워라벨이나 신경쓰고 정작 일하는 사람은 관심이 없는 기술혁신을 억지로 강요해봤자 기술혁신이 구성원에게 내재화 되어 카이로스 시간을 만들어낼 리 없다. 대한민국의 노동생산성이 여전히 OECD 국가 중 하위를 면치 못하는 이유도 국가나 기업 모두 산업화 시대의 크로노스 시간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청년 일자리 운운해가며 크로노스 정년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정치가들의 무지에서 나온 폭력이다. 현대 사회가 노년 세대에게 적용하는 ‘정년’이라는 크로노스적 잣대는, 그들이 가진 잠재적인 ‘카이로스 역량’을 무시하며 이들을 사회적 고려장 상태로 밀어 넣고 있다.
기술 민주화와 카이로스 시대의 대두
현대판 고려장을 멈출 단초는 기술 발전에서 파생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달은 육체적 인지적 노동의 한계를 넘어, 전문적 기술의 민주화 시대를 열고 있다. 좋은 머리, 좋은 외모로 유전자 복권으로 전문가의 자격증을 따 건물주처럼 평생을 먹고 살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성별, 특정 연령, 신체 능력만이 생산성의 척도가 아니다. 오히려 수십 년간 쌓아온 통찰력, 지혜, 전문성에 대한 알고리즘,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는 ‘카이로스 역량’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생산성 있게 사용하는데 더 필수적이다. 단지 답을 시급하게 알아서 발등에 불을 끄는데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인공지능을 지혜롭게 쓸 수 있는 카이로스 역량은 노인들에게 손, 발, 날개가 되어 주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들을 구해낼 수 있는 길은, 정년을 앞 둔 노인들의 크로노스 나이가 아닌 카이로스 역량을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카이로스 역량이란 단지 일자리를 얻는 것을 넘어, 노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는 ‘적절한 기회 포착 능력’을 뜻한다. 카이로스의 역량을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노인들은 제 2의 전성기를 다시 찾는 셈이다.
카이로스 역량을 통한 삶의 회복
카이로스 역량을 발휘하여 의미 있게 일하는 노인들이 많아질수록, 개인의 건강과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가 기아급수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퇴직 후 찾아오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정체성 상실’과 ‘무력감’이다. 자신이 사회에서 쓸모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우울감과 고립감은 급격히 증가한다. 카이로스 역량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일(멘토링, 유연 근무, 재능 기부)에 참여하는 것은 자아 효능감(Self-efficacy)과 목적 의식을 회복시켜 정신 건강을 크게 개선한다. 능동적인 사회 참여는 노년의 마음 건강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이다.
의미 있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여가 활동과는 다르다. 이는 목표 설정과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인지 기능을 활성화하고, 꾸준한 활동을 위해 신체 활동을 유지하게 만든다. ‘일’은 곧 삶의 활력소가 되어, 노년층의 신체 건강을 신장시키고 만성 질환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카이로스 역량의 발휘는 결국 능동적인 삶의 자세로 이어져 건강 수명 연장에 기여할 뿐 아니라 누구나 현대판 사회적 고려장 신세를 벗어나 Well Dying의 길을 예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카이로스 역량에 투자하자!
우리는 노인 세대에게 ‘나이(크로노스)’를 이유로 사회적 은퇴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 전문성, 경험이 사회의 디지털 전환 및 복잡한 문제 해결에 활용될 수 있도록 카이로스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시대적 맥락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카이로스 역량을 위해 투자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열린 정신모형(Mental Model)이 요구된다. 카이로스라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회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고 받아들일 마음의 상태인 열린 정신모형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찾아온다. 은퇴를 앞둔 노인분들이 세상이 고려장을 위해 강요한 정신모형의 감옥 속에 갇혀서 있다면 AI 할아버지가 와서 이들을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해방시켜도 다시 정신모형의 감옥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정신모형이 열려 있지 못한 분에게 사회적 고려장은 탈출할 수 없는 운명이다.
현대판 고려장을 멈추기 위해서는 기업은 유연한 직무 설계와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고령 인력이 기술 민주화 시대의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도록 도와야 한다. 사회의 다양한 정책들은 나이가 아닌 역량과 기여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노년층 스스로도 자신의 카이로스 역량을 인식하고 새로운 시대적 기술을 배우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인구감소와 맞물려 진행되는 초고령 시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모든 세대의 카이로스 역량을 총동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지혜로운 사회 설계에 달려 있다. 노인 세대의 삶을 회복시키고 미래 세대를 살려내 사회 전체의 역동성을 높이는 이 투자는, 우리 모두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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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