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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성(Synchronicity)에 대한 이해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실체
공시성(Synchronicity)에 대한 이해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실체
사실 본인이 오늘 공시성에 대해 포스팅하기로 작정한 것도 오늘 아침 본인 유튜브 알고리즘에 공시성에 대한 내용이 떴는데 너무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잘못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포스팅도 결국 공시성이 얼마나 우리 삶에 보편적으로 편재해 있다는 증거다.
이런 공시성은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관찰할 수 있는 현상이다. 심지어 오페라 윈프리 등 시크릿(Secret)을 주장하는 그룹은 어떤 것에 대해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으면 실제로 그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기도응답도 따지고 보면 공시성의 일종이다.
공시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이비 과학자들이다. 공시성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과학적으로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는 융과 양자물리학자들이다. 이들의 전제는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단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우리 육안으로 확인하지 못할 뿐이지만 이들 사이에 인과적 호혜관계는 존재한다. 이 인과적 호혜관계를 보다 깊은 수준에서 연결해주는 실체가 제 삼의 실체다.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실체을 기반으로 공시성을 좀 쉽게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다. 인공지능 과학자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적 테이터의 패턴을 분석하던 중 신기한 경험적 현상을 발견했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익사 사고율이 증가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인공지능 과학자가 이런 공시성이 실제 데이터로 나타났기 때문에 익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이스크림 판매를 중지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아무리 첨단 인공지능을 이용하더라도 사이비 과학자일 뿐이다.
적어도 과학자는 이런 현상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가 간과했던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사고률이라는 것에 공동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 삼의 요인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발견한 제 삼의 요소는 무더운 여름일 것이다. 실제 통계적으로 여름 온도를 통제하면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익사률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발견을 기반으로 여름에는 더위라는 고통 때문에 아이스크림 판매가 늘어나기도 하고 수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를 보다 싸게 팔는 정책을 수립하거나 익사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계곡 수영을 금하거나 안전요원을 더 배치하거나 수영에 대한 생각을 끊도록 공동체에 여름 쉼터를 만드는 정책을 입안할 것이다.
모든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통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스크림도 수영도 모두 온도 상승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편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고통이 제 삼의 원인이었다.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고통이 생기면 일단 진통제를 처방하던 상처가 있으면 반창고를 붙이는 방편을 쓴다. 고통을 고통과 같은 수준에서 고식적으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편견 때문에 고통이 생기면 거기에 거적을 덮어 놓고 마치 고통이 없는 것처럼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거적을 덮어서 해결하지 못한 고통에는 구더기가 생겨 상처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고통이라는 제 삼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덮어놓은 거적을 들춰내고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요구된다.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더 깊은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에서 이런 동시성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한다. 고통을 직시해가며 더 깊은 제 삼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면 고통은 어느 순간 해결되고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인과적 원인으로 잘못 알고 있던 두 경험적 현상이 나비의 날개가 되고 제 삼의 원인이 나비의 몸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융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마음 속 그늘이나 고통이라는 제 삼의 실체를 찾아서 동시성를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이해하려 시도했다.
데이비드 봄을 따르는 양자물리학자들은 제 삼의 실체를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고통이나 어둠을 찾아서 해체하는 것을 넘어서 이렇게 발견된 나비(에너지 파장)가 어떤 의미 있는 질서를 향해서 날아가고 있는지를 괸찰한다. 봄은 우리가 관찰하는 세상은 펼쳐진 질서(Explicate Order)라고 명명하고 눈으로 감춰져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질서를 접힌 질서(Implicate Order)라고 명명한다. 봄에 따르면 접힌 질서 속 숨겨진 변수(Hidden Variable)가 본인이 주장하는 제 삼의 요소다. 나비들의 날갯짓은 보이지 않는 더 의미 있는 제 삼의 에너지 질서를 위해 동시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몸짓으로 해석한다. 봄에 따르면 제 삼의 숨은 변수는 평소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 관찰을 시도할 때 이들에게만 선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의도적이고 심도 있는 관찰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관찰을 매개로 모습을 드러낸다.
융이든 봄이든 세상에 날아다니는 나비가 선사하는 동시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실체에 대한 탐구를 촉구한다. 융은 제 삼의 실체를 고통에 대한 감수성과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긍휼을 가진 사람들만 동시성을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데이비드 봄을 따르는 양자물리학자들은 이런 나비들이 동시에 파장을 통하 만들어내려고 시도하는 의미있는 질서가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실체라고 가정한다.
진성리더들이 나비(생명을 잉태한 고통/에너지 파장)의 세상을 보다 더 통찰력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보이지 않는 제 삼의 요소로 긍휼과 존재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나비들의 군무를 이해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드려는 노력은 존재목적에 담겨 있고, 고통을 일으켜 세워 주체를 춤추게 만드는 것은 긍휼감이다. 존재목적이 삶의 지휘자라면 긍휼은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자신의 맡은 부분을 연주할 수 있게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긍휼과 목적이라는 제 삼의 실체를 이해한 사람들에게 삶은 치유된 몸, 마음, 정신이 목적을 향해 연주되는 교향곡이다. 치유된 자신의 부분들이 협업해 동시성으로 연주해낸 음악과 나비의 군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에너지와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보이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80-90%는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빙산의 밑둥에서 발현된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자신을 눈뜬 장님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가 체험하는 기적은 제 삼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 실체를 매개 삼아 개입해 실제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때 기적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제 삼의 보이지 않는 실체의 원리를 이해하면 모든 일상이 기적이라고 조언한다.
기도가 응답 받는 이유도 자신의 고통을 넘어 이웃의 고통까지 포함한 기도 제목이어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 마음 속에도 측은지심을 일으켜 이들 마음 속 애벌레를 나비로 환태시킬 때다. 또한 이런 모든 기도는 결국 제 삼의 실존이자 우리의 존재목적을 잉태하신 하나님을 지휘자로 삼은 기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