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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비대해진 무능한 인간 인공지능주의보

Jan 15, 2026 ·4분 ·jkyoon · 327

머리만 비대해진 무능한 인간
인공지능주의보
인공지능을 신처럼 신봉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주 해주는 세 가지 비유가 있다. 술꾼의 논리, 망치질을 처음 배운 소년, 전지무능형 비평가에 관한 이야기다.
술꾼의 논리:
만취한 술꾼이 집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 술꾼은 자신이 술에 만취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 버리고 계속 집 옆 가로등 밑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궁금해서 물어본다.
“뭘하고 계신가요.”
술꾼의 대답,
“열쇠를 찾고 있지요.”
나그네가 같이 찾아보다 키가 발견되지 않자 다시 묻는다.
“열쇠가 보이지 않는데 확실히 여기서 잃어버리셨나요?”
술꾼 왈,
“아니요 집앞에서 잃어버렸는데요.”
나그네가 다시 묻는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는지요?”
술꾼이 대답한다.
“그런 이상한 질문을 왜 하는거요.”
“여기가 밝고 찾기 좋잖아요.”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안은 경계조건 (술꾼의 집앞) 안에서만 유효한 답이 된다. 심지어 보편성을 추구하는 믈리학 법칙도 경계조건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만류인력의 중력법칙은 물체의 이동속도가 빛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거나 질량이 크지 않아서 물체의 움직임이 시공간에 영향을 받지 못할 때 작동하지만 상대성 원리는 움직임이 빛의 속도에 근접해 움직이거나 질량이 커서 움직임이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양자역학은 에너지가 갇혀 있는 방을 조건으로 에너지 파동의 움직임에 관한 이론이다. 심지어 확률론에서도 확률모형이 적용되는 조건을 마코브 보자기로 정하고 이 조건 아래서 확률모형을 예측한다.
인공지능은 결과의 수준에서 최고의 답을 답으로 제시한다. 인공지능에 만취해 어떤 답이든 결과적 수준에서 그럴듯한 답을 찾는데 혈안이 되면 자신의 문제를 발견한 조건을 무시하고 가짜 답이라도 그럴듯한 답이라고 믿고 따른다. 우리 모두는 무능력한 술꾼이 된다.
망치질을 처음 배운 소년:
아이들에게 망치에 대해 가르쳐주면 이 망치의 기능대로 못을 박는데만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두드려 깨부수는 무기로 전용한다. 경제학도에게 경제학을 가르쳐주면 비경제적 거래까지 모두 경제적 거래로 환원시켜 설명해 많은 거래의 존재를 왜곡한다. 거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깨부순다. 학생들에게 심리학을 가르쳐주면 모든 현상을 개인에 환원해 설명해가며 발현해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깨부순다. 심리학적으로 이해한 내용보다 제대로 깨부순 것이 더 많다.
인공지능은 논리적으로 답이 있는 세상을 전제로 답을 제시하거나 과거에 유용했던 경험적 답만을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의 대부분은 답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인공지능은 과거의 답으로 미래의 답을 깨는 무기로 전용된다.
전지무능형 비평가:
야구장에 가면 야구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는듯 선수들에 대한 모든 전술과 전략에 관한 논평을 늘어놓고 심지어는 선수들의 실수를 본인이 야구의 신이라도 된듯이 힐책하는 골수팬들이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를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야구 비평가로 전락시킨다. 회사에서도 젊은이들이 일할 때 인공지능이 제안한 것을 전지전능한 답으로 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답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들은 인공지능이 이렇게 답했다고 인공지능의 답을 절대시 한다고 한다. 인공지능을 통해 야구 해설사를 넘어 야신이나 할 수 있는 답을 찾아오지만 정작 실제 야구를 하면 초보 야구선수는 못되는 사람이다. 인공지능에 과도한 의존으로 회사에 제 삼의 비평 전문가는 넘치지만 이들은 모두 자기 앞에 덮친 조그만 문제조차 해결 못하는 전지무능아들이다. 인공지능은 이런 지행격차가를 더욱 극심하게 만들 것으로 예측된다.
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을 지혜의 시작점으로 제시했던 소크라테스가 부활해서 인공지능의 Knows All을 맹신해가며 눈뜬 장님의 세상으로 전락한 무지혜의 세상을 개탄할 것으로 보인다. 값싼 지식을 값으로 메길 수 없는 지혜와 바꾼 것이다.
본인도 인공지능을 자주 사용하지만 구글의 서치엔진을 대체하는 도구로만 사용한다. 요즈음 인공지능은 할룩시네이션도 거의 없어서 최고의 맞춤형 서치엔진이다. 설사 인공지능이 알고 있는 답이 궁금해서 답을 물어보기도 하지만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은 내가 만들 답의 초깃값일 뿐이지 내 답은 아니다.
자신에게 가장 최적화 된 답은 자신이 문제를 야기한 경계조건을 분명히 하고 인공지능의 답을 초기값으로 삼아서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의 작동 알고리즘에 맞는 고유한 모형, 일인칭 내러티브을 자신의 케이스로 맥락화 시키는데 성공했을 때 찾아온다. 자신의 알고리즘에 맞는 자신의 일인칭 케이스를 만들지 못했다면 답을 찾은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에게 인지적으로 더 위존해 더 똑똑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무능해지는 운명으로 전략하는 운명이 인공지능의 역설이다. 인공지능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면 할수록 스스로 무능한 사람임을 인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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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