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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타자의 관점 불가사리 이야기

Jan 15, 2026 ·4분 ·jkyoon · 395

절대적 타자의 관점
불가사리 이야기
회사의 인재를 육성하는 임무를 맡으신 분들이 공개 석상에서는 하지 않지만 나와 둘만 있을 때 자신의 좌절감을 표현하는 말이 “사람은 바뀌지 않습니다”라는 고백이다.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임무를 맡은 전문가가 사람을 바꾸는 일을 암암리에 포기한 것이다.
사람은 정말 바뀌지 않는 것일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한 노인이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들을 바다로 던져 돌려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이 “이 많은 불가사리를 다 살려낼 수는 없지 안나요? 무모한 일을 하고 계신겁니다”라고 핀잔을 주자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다 구해내지 못해도 내가 구해준 불가사리들에게는 특별한 사랑의 체험이지요. 많은 불가사리가 자신이 살려졌다는 것을 잊고 다시 해변으로 떠밀려와서 죽겠지만 이 중 한 불가사리가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스스로 대오각성해서 친구 불가사리들이 바다로 몰려오지 못하게 하는 영웅이 될지 누가 아나요?
우리 삶에서 해변의 불가사리는 변화에 실패해서 떠밀려 온 사람들을 상징한다.
불가사리 할아버지의 관점은 레비나스가 주장하는 타자의 관점이다. 타자의 관점에서는 내가 몇 마리를 살려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다로 돌려보내진 불가사리 중 실제로 한 마리라도 살아 났는지가 중요하다. 교육 담당자의 고백은 이런 불가사리들에 대한 자기 동일성 관점이다. 자신을 답이라고 정해 놓고 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로 분류한다. 자기 동일성 관점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비유된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이 잠자는 침대를 가지고 있는데 평소에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잡아다 침대에 눕혀 놓고 손이 길면 손을 자르고 발이 짧으며 발을 늘려서 침대에 맞추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하다. 떠밀려온 불가사리들을 자기 동일시의 관점에서 살려 바다에 내보내도 다시 떠밀려오니 무모한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산하 진성리더십 아카데미에 열망을 가지고 오시는 도반분들은 한 마리 불가사리라도 바다로 보내는 노인의 일을 진짜 사명이라고 믿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세상이 주목하는 직책과 돈과 명예와 권력을 넘어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인 타인의 아픔에 대한 긍휼감을 가지고 이 사명을 묵묵히 수행한다.
아카데미 도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 노인처럼 변화에 실패해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차별적 사랑을 나눠주는 일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세상 사람 모두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포기한 불가사리를 찾아가서 이들도 긍휼이라는 진짜 사랑을 통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을 업으로 생각한다.
진성도반들은 구해낸 많은 숫자의 불가사리가 다시 해변으로 밀려와 죽음을 당하는 이유를 사랑의 본질인 긍휼의 부재에서 찾는다. 이들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혀 놓고 동일성으로 수술해주는 것을 사랑으로 주장한다. 이들은 동일성의 침대를 버리고 긍휼의 힘을 몸소 실천해가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의 유리벽을 깨는 실제 영웅들을 도반으로 찾아나선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사리를 포기해도 긍휼의 기적을 믿고 바다로 떠밀려온 낙오자 불가사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진성도반들은 아픈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근력은 자신의 아픔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사랑하는 자기긍휼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안다. 성장의 아픔으로 고통받았던 자신을 춤추게 했던 것은 자신에 대한 진실된 사랑인 긍휼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자신을 긍휼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남을 사랑하고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진성도반들은 모든 사람들이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에 갇혀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동일성의 관점이 아니라 타자의 관점을 회복해 긍휼의 사람을 보낸다. 바꿀 수 있었던 사람들을 바꾸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긍휼의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교육 프로그램과 효율적 역량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의 아픔에 대한 사랑의 부재와 멋지고 잘난 것에 대한 편애가 바다로 떠밀려오는 불가사리의 실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역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도 따지고 보면 과도한 주장이다. 사람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바꿔지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깨달은 사람만 스스로를 바꾼다. 사람은 스스로 깨어나 스스로 바뀌는 존재이다. 깨어나지 못했다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긍휼의 마음을 복원해서 불가사리로 규정된 사람이 깨어날 수 있도록 즐탁동시할 뿐이다.
사랑의 묘약이 떨어져 영혼이 잠자고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교육 프로그램과 인센티브를 도입해도 결국 변화를 성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일은 오직 긍휼의 즐탁동시로만 가능하다. 상대를 긍휼로 사랑할 때 상대는 나에 대해 측은지심을 느끼고 마음을 연다. 마음을 연 사람들이 연합해 세상을 긍휼로 바꿀 것을 꿈꾼다. 자신이든 남이든 사랑의 편애가 아닌 긍휼이 기반이 되어야 프로그램과 교육도 작동된다.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비싼 프로그램, 유명 강사, 코치, 맨토가 나서도 바뀌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다시 처방을 바꾸지만 결국 원하는 변화는 죽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다.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다면 불행하게도 진정한 사랑의 힘 앞에 마주 선 경험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을 변화시키려 시도한 코치나 멘토도 스스로도 자신의 아픔을 진정으로 사랑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긍휼감을 통해 스스로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했음에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개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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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