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토리노의 말 사건 니체의 일기
토리노의 말 사건
니체의 일기
이 모습을 본 니체는 갑자기 달려가 그 말을 껴안고 울부짖으며 마부의 채찍질을 막으려고 시도했다. 니체는 말을 끌어안은 채 몇 분 동안 울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이 사건 직후 니체는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가족들에게 인계되어 죽을 때까지 약 10년간 정신질환을 앓았다.
이 일화는 사실상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지적인 삶이 끝난 순간으로 평가되지만 니체가 고민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말은 평생 수레바퀴를 끌어야 하는 운명이다. 늙고 노쇠했음에도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비참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주인의 명령을 거부한다. 주인은 채찍으로 말이 운명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막는다. 말은 채찍으로 수없이 두드려 맞는 고통에 직면했음에도 지금 상태를 벗어나야겠다는 자유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니체가 개입한다. 수없이 초인으로 거듭나는 운명을 설파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이런 초인으로 누리는 자유가 댓가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말에게 가해오는 채찍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헝가리 영화감독 벨라 타르(Béla Tarr)는 이 일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토리노의 말(The Turin Horse)”을 제작했다. 고통의 지속을 상징하기 위해 롱테이크로 영화를 찍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롱테이크 영화다. 하지만 토리노 말 사건이 니체에게 실제로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니체가 좋아했던 토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도 소년이 개입한 비슷한 말 장면이 나온다. 아마 죄와 벌에 나오는 소년의 말 사건을 기억하고 한 이야기가 자신이 경험한 사건으로 와전되었을 수도 있다.
말 사건이 니체에게 중요한 각성사건이 된 이유는 니체가 기독교의 가식이라고 폄하했던 긍휼의 진실을 목격한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품고 견뎌내는 자기긍휼이나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품고 이겨내는 긍휼의 기반이 없다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초인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말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근력의 문제다. 근력은 오직 자신과 남의 아픔에 대한 환대를 통해 고통스런 삶을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확보된다. 근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초인은 말만 뻔지름한 유사초인이다.
사실 토리노 사건이후에 정신병이 발발해서 니체가 더 이상 철학을 정교하게 발전시키지 못했지만 니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운명을 사랑하라(Amor Pati)”란 명제를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는 근력을 가진 사람들만 진정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명제로 수정되어야 함을 잘 안다.
급진거북이가 실행하는 뒤집기 전략의 핵심은 고통이 다가올 때는 맞서 싸우기를 자제하고 45도 기울기로 다치지 않고 잘 넘어지는 전략을 조언한다. 근력은 고통과 맞서 싸워서 기진맥진해질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맞고 쓰러진 후 잘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획득하기 때문이다. 삶의 근력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고 다시 쓰러지면 또 일어나는 반복적 일어섬을 통해서 형성된다. 마주 보고 달려오는 역경과 나 사이에 45도 각도의 하늘을 보면 자신이 쓰려졌음에도 일어서야 하는 삶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
삶의 고통이 다가오면 맞서 싸우기 보다 잘 넘어지고 45도 각도로 비켜 넘어질 때 하늘에 보이는 일어서야만 하는 이유인 존재목적을 찾아 잘 일어서는 것에 방점을 둔 사람들만 자신의 운명을 담고 있는 목적을 자신의 몸에 배태해 근력으로 만든다.
1960년대에 쓴 김수영 시인의<풀>이라는 시에도 잘 넘어지는 풀의 미학이 담겨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근력은 바람에 넘어지고 흔들렸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운명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잘 넘어지고 일어날 때 제대로 일어날 수 있는 근력을 확보한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