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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복하는 한 학습하는 죄인이다 조진웅이 왜 이슈가 될까?

Jan 15, 2026 ·4분 ·jkyoon · 415

자복하는 한 학습하는 죄인이다
조진웅이 왜 이슈가 될까?
연예인이 뜬금없이 이슈로 떠오를 때는 정치적 이슈를 감추기 위한 경우가 많지만 왜 이점에서 조진웅 이슈가 붉어졌는지 숨은 내막을 모르겠다. 설마 이재명 정부가 정치적 현안을 감추기 위해 이전 정부처럼 연예인 물타기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큰 죄로 세상에 충격을 준 사람들을 추적해보면 항상 시작은 쉽게 용서 받을 수 있는 작은 죄에서 시작한다. 이 작은 죄에 대해 발행한 스스로의 면죄부와 변호가 더 큰 죄를 만들어낸다. 우리 속담도 모든 소도둑은 바늘도둑에서 시작되었음을 경고한다.
죄가 위험한 이유는 큰 죄가 작은 죄를 먹고 자라는 악순환의 고리 때문이다. 월요일에 작은 죄를 지으면 이 행동은 화요일에 더 큰 도덕적 타협의 기반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하루 하루 자신을 속이다 보면 얼마 안 가 스스로를 속이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져 죄와 일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자신의 죄를 감추고 연기하며 사는 삶의 시작이다. 초기의 작은 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큰 죄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준다. 자신도 희생자라고 합리화 시켜 죄를 외재화 하는 자기 연민은 이 악순환 고리의 결정판이다.
큰 죄는 작은 죄를 묵인한 대가로 죄가 내린 형벌이다.
죄의 뿌리는 작은 실수이다. 실수가 숨겨져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 침해를 범했을 때 실수는 죄로 전락한다. 실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과 세상이 생각하는 우리가 서로 어긋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학습의 시그널이다. 세상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이 시그널을 받고도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여 다시 실수를 하고 실수가 고쳐지지 못하고 커지기 시작하면 이 커진 실수가 남들에게 침해로 이어진다. 죄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변화가 상수가 된 세상에 던져진 사람들에게 실수와 죄는 경계가 애매모호한 성장통이다.
신과 달리 인간은 잘못이나 실수나 죄를 벗어나기 힘들다. 사실 잘못, 실수, 죄는 자신의 세상을 보는 정신모형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리는 피드백의 시그널이다. 실수나 죄의 원천이 되는 정신모형을 당장 고치지 않고 변명하고 지키려 노력하면 작은 실수는 죄로 죄는 더 큰 죄로 번져서 결국은 정신모형을 붕괴시키는 수순을 경험한다.
실수와 죄로부터 면제 받을 수 없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방안은 작은 죄와 실수에 대한 피드백으로 시그널을 받았을 때 실수에 대한 스스로의 자복을 통해 실수와 실수 실수와 죄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끊는 것이 학습의 시작이다. 실수에 대해서 자복하고 학습을 통해 다음 단계에서는 똑 같은 실수에서 자유로와져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 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는 학습과 성장의 시발점이 된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잔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빵을 훔친 죄에 탈옥의 죄까지 합해 1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장발잔은 감옥에서 나와서도 주교의 은쟁반을 훔치지만 주교로부터 용서를 받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죄를 씻고 착한 사람으로 살아서 작은 마을의 시장의 지위에 오른다. 하지만 이름은 장발잔이 아니라 마들렌으로 위장한 상태였다. 위장한 신분이 밝혀지려는 찰라 경찰에 찾아가 자복을 한다. 자복을 한다고 신분을 속인 법적 처벌에서 면죄된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 족쇄에서 벗어나 자유를 체험하며 삶을 마무리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조진웅은 공인으로 살고 있는 이상 청년 시절의 강도와 폭행 사실에 대해 법적 처벌이 끝났어도 장발잔처럼 기회가 있을 때 이런 사실을 자복했어야 맞다. 공인에게는 법적인 문제를 넘어 더 상위의 규제인 윤리적 잣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유명하지 않았을 때 자복했다면 아무도 크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명해진 훗날 이때의 자복을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리다. 자신의 배우로써 성공을 위해 의도적으로 감추었다면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윤리적 조건을 스스로 박탈한 것이다. 조진웅이 배우가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이런 윤리적 기준으로 추궁당할 이유가 없다.
만델라는 인간은 실수와 작은 죄라는 자신의 허물을 벗는 과정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인간은 학습하는 죄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음은 자신의 실수와 죄에 대해서 자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카네기 록펠러도 젊었을 때는 자신의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악명 높은 죄인이었다. 어느 순간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다른 사람이 될 것임을 세상에 약속했다. 이 약속을 목숨을 걸고 실현시켜서 지금의 카네기 록펠러가 만들어졌다. 이들의 약속이 진정성을 얻는 순간 이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얻으려 했던 부와 재산과 명예도 덩달아 따라왔다.
답이 없는 변화가 상수인 시대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현명한 사람들은 초기에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여 실수를 유발한 자신 생각의 가정을 고쳐나가는 방식으로 학습한다. 변화의 시대에 학습하는 죄인의 자세를 가진 현자들에게 자복은 새로운 학습의 시발점이지만 숨기는 선택지를 택한 사람들에게는 점진적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의 초연결 시대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것에는 ccTV가 달려 있는 형국이어서 실수를 감추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다. 권력의 힘으로 실수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오만이다. 초연결 시대는 작은 실수도 감출 수 없다는 현실을 각성한다면 개인과 사회에게 학습하는 죄인의 자세는 그냥 따르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규범이다.
자복할 시점을 놓쳐 공인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조진웅이 이런 모든 어려움을 딛고 평범한 자연인으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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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