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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반란, 어떻게 제압할까? 진성리더십 조직개발 모형

Jan 15, 2026 ·7분 ·jkyoon · 356

개인주의의 반란, 어떻게 제압할까?
진성리더십 조직개발 모형
거지가 같은 장소에서 구걸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지나갈 때 마다 10 불을 적선했다. 시간이 지나니 적선 금액이 5불로 줄어들었다. 또 시간이 지나니 적선 금액이 다시 2불로 줄어들었다. 금액이 자꾸 줄어드는데 화가 난 거지는 2불을 놓고 가는 장본인을 불러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적선했던 사람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혼자 살때는 10불씩 적선할 여유가 되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5불로 줄일 수 밖에 없었고, 다시 아기가 태어나 양육비로 고통을 받아서 2불 밖에는 적선을 할 수 없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이 이야기를 듣던 거지가 결국 “지금까지 나에게 적선할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공리적(이기적) 개인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논리를 잘 표현한 우화다. 사례에서처럼 공리적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공동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황당한 논리다. 공리적(이기적) 개인주의자들은 이미 회사에도 많다. 다음은 큰 회사의 HR 임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이 회사는 연말에 개인들에게 PI산정해서 인센티브로 주는 회사다. 인센티브가 연봉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PI를 지급 받을 날짜가 가까워져서 한 직원이 HR 부서에 항의 방문했다. 회사가 환경미화 사업으로 화단을 새롭게 조성하고 있었는데 직원은 이것에 대해서 항의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다. 이 직원의 논리는 결국 자신에게 인센티브로 돌아올 회사의 재원을 쪼개서 쓸 데 없는 화단을 조성하는데 쓰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뒤르켕은 건강한 사회는 공동체를 전제로 자신을 표현하는 도덕적 개인주의(moral individualism)를 지향하는 개인들이 많아지는 사회인 반면 병든 사회는 공리적(이기적) 개인주의(utilitarian or amoral individualism)를 추구하는 개인들이 더 많아지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도덕적 개인주의는 자신의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공동의 목적, 자신보다 더 아픈 구성원에 대한 아픔에 대한 환대, 공동의 아픔을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동의 실험실에서의 역할을 장착하고 이런 공동의 책무성 위에서 자신만의 존재우위도 구현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회가 공리적 개인주의자가 넘침에도 아직 유지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운명 공동체의 원리를 믿고 실천하는 도덕적 개인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앞의 예처럼 조직에 공리적 개인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면 모든 구성원들은 일하기 전에 먼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면 몰입하지 않는다. 다른 동료를 돕거나 회사가 어려울 때 한 발 더 가며 회사를 위해 일하거나, 회사의 자원을 아껴 쓰거나 하는 행동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교묘하게 회사의 자원을 사적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재택근무 시간에 개인의 용무를 해결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회사 사정 상 재택근무를 줄인다면 사적 용무로 많이 써왔을수록 더 불같이 화를 낸다. 공리적 개인주의로 회사 안에 토굴 파고 사는 사람들에 의해 조직시민행동이 초토화된다.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던 회사의 배를 갈라서 자기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이 연줄이나 라인으로 연합해 핵인싸를 구성해 회사에 싱크홀을 파고 있는 경우도 보고된다. 이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회사는 서서히 침몰한다.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 되자 공리적 개인주의는 초개인주의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초개인주의는 알고리즘에 의해서 개인의 정체가 모두 파악되고 분절되어 개인의 정체성이 디지털 광고주에게 팔려간 개인주의다. 초개인주의는 개인 맞춤형을 미끼로 개인들을 디지털 도파민 중독에 빠지게 했다. 디지털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들은 몇 분이라도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면 불안해 하고 시간 날 때마다 SNS 계정의 좋아요 개수를 확인한다.
최고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초개인주의 논리에 속아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서 노예로 고용되어 자신과 남의 좋아요 갯수를 늘리는 일에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은 개인을 모래알로 분해시켜 클라우드 사막 속에 저장하는데 성공했다. 초개인주의가 개인을 디지털로 세뇌시키고 중독시켜 사회를 거대한 사막으로 만드는 디지털의 음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초개인주의자들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기술적 관료주의(Technocracy)에 노예로 팔린 사람들이다. 초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운명공동체는 사라진다. 역설적으로 운명공동체가 사라지면 초개인주의자들은 더 대체가능한 자원으로 부각된다. 초개인주의자들이 벌이는 게임은 뱀이 배가 고프면 자신의 꼬리를 먹는 우로보루스 게임이다.
글로벌 회사의 CEO들은 공리적 개인주의에 오염된 젊은이들에 의해 회사가 함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롭게 이입된 MZ세대의 온보딩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심리적 계약 내용을 주문한다.
“회사를 위해 일하거나 충성할 생각을 접어라. 대신 지금부터는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 여러분이 얼마나 개인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지를 증명해보라.”
얼핏 듣기에는 공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하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해서”라는 미묘한 단서가 붙어 있다. 개인의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서 회사의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것은 회사가 요구하는 기술적 수준도 업데이트해야 할 뿐 아니라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에 대한 규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내재화하는 도덕적 개인주의를 의미한다. 회사의 가치, 기술, 목적을 충분히 내재화하고 이것을 초월해서 회사에 개인으로 혹은 다른 직원들과 협업으로 다른 개인에 의해 대체불가능한 봉우리를 세우는 것을 즉 윤리적 개인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성공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들 CEO의 메시지를 파보면 이들에게 허용되는 자율, 자유, 재택 근무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협업할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율에 대한 근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허용되는 자유이자 보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즈음 대부분 회사에서는 종업원 체험을 강조한다. 세상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대부분이 길을 잃고 헤매는 초뷰카시대에 종업원 체험이란 길을 잃고 헤매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데려다 치유하고 다시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체험을 의미한다. 고객체험도 마찬가지다. 본질은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아픔을 치유하고 이들이 자신 삶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초뷰카 시대 고객체험의 본질이다. 초뷰카 시대 모든 제대로 된 체험은 길 잃고 헤매다 생긴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환대하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를 넘어서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고, 실제 주인으로 서는 체험이다. 이런 종업원 체험이 가능한 회사는 윤리적 개인주의로 무장한 사람들로 채워진 회사다.
임진왜란 (1592)에서 조선을 구했던 이순신 장군이 제기한 도덕적 개인주의는 글로벌 회사의 CEO들의 제안보다 더 엄중하고 장엄하다. 이순신 장군은 명랑해전에서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죽지 마라. 너희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는다. 너희가 죽지 않으면 너희 가족이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너희가 조선(운명공동체)이다.”
본인은 인공지능이 선도하는 초뷰카 시대의 진성 조직개발 모형으로 빙산모형을 주장하고 있다. 건강한 사회나 조직이나 회사가 운용되는 원리는 빙산의 원리 속에 숨어 있다. 모든 조직은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형이 있고, 이 비즈니스 모형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게 만들어주는 공동체가 있다. 비즈니스 모형은 빙산의 떠 있는 부분이고, 공동체는 보이지는 않지만 빙산의 밑둥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빙산이 떠 있기(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밑둥이 비지니스의 중력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부력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문제는 우리는 이익과 효율성을 경영전략으로 포장해 빙산의 윗둥을 키우고 빙산의 밑둥을 제거해왔다. 빙산이 침몰하게 만드는 이율배반을 전략경영이라고 칭송해왔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경영전략은 이기적 개인주의자들을 더 보상해가며 키워왔다.
이런 경영전략가의 생각과는 다릴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사라져가는 공동체를 어떻게 복원하는지와 이런 공동체의 진실한 구성원인 도덕적 개인주의자를 얼마나 육성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경영전략도 빙산의 아랫동에 해당하는 목적, 가치, 사명을 홈페이지에 제시하고 있으나 구성원들은 이런 목적, 가치, 사명이 사업을 하기 위한 포장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목적, 가치를 살려 문화적 부력을 마련해야 함에도 비지니스의 중력과 부딪치면 모두 녹여버린다. 회사라는 빙산은 비즈니스가 커질수록 침몰하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사회든 윤리적 개인주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조직이든 사회든 이것을 지탱해주는 공동체라는 빙산의 밑둥이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윤리적 개인주의자들은 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으로 수준에서 이해충돌의 가능성이 있어서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침해를 준다면 행동을 자제한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고 여기에 윤리적 개인주의 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파당, 카르텔, 전관예우 등등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치이득이 불특정 남들에게는 침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행위가 공동체를 복원하는 작업을 막는 시한폭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공리적 개인주의자들은 조직 밑에 혈연, 지연, 학연 등의 구멍을 뚫어 놓고 파당과 카르텔 세력을 결성해서 조직의 기반을 무너트린다.
신자유주의의 원리로 무장한 경영자들이 빙산의 아랫둥에 해당하는 공동체의 도덕적 개인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조직을 공리적 개인주의자로 채웠다. 우리 진성리더십 학회의 조직개발이 이 빙산의 아랫둥을 복원하는 일에 전력을 다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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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