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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이 들려준 신의 목소리 초인과 광인의 차이
내면이 들려준 신의 목소리
초인과 광인의 차이
니체의 정의를 빌리지 않더라도 초인은 고유한 품성을 개발해 동물적 상태에서 끊임없이 초월해 점점 인간다워지는 인간을 의미한다. 초인은 신의 흉내를 내지 않고 THE 인간임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초인은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겪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신성인 존재목적을 세워 고통을 극복하는 근력을 만들어 결국 스스로의 삶에 주인으로 등극하는 최고의 인간을 상징한다.
세상에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알려진 광인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복권을 타고난 재능인들에서 많이 출몰한다. 이들은 재능, 머리, 외모 등등을 편애해가며 이것을 날개 삼아 신의 지위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눈과 귀가 멀어 결국은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사람들이다.
정도의 문제가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과 고통을 인정해가며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매일 매일 급진거북이의 우보천리하는 자세로 조금씩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초인의 모형을 택한다. 하지만 쿠팡의 김범석이나 내란의 윤석열, 김건희 같은 사람처럼 자신에게 눈이 멀어 스스로 광인이 되거나 이런 광인들을 흠모해가며 사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우리 주변의 사회적 환경을 구성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많은지 적은지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오염도를 결정한다. 광인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큰 쓰레기장이 늘어나는 꼴이다. 이들이 가져오는 부정적 외재성으로 세상은 악취가 진동하고 숨조차 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 초인모형을 삶의 모형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모인 사회에는 큰 숲이 생긴다. 산소가 넘치고 사회는 더 활력이 있게 공진화한다.
사회가 공진화 한다는 것은 변방에서 온 다수의 다윗이 중앙을 지배하는 탐욕의 골리앗들을 몰아내고 평평하고 기울어지지 않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설정하고 평평한 사람도 이 표준 위에서 주인으로 살 수 있는 협업의 운동장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초인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본질인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초인으로서 신성을 발견해 이 고통을 해결하는 근력을 가진 주체로 우뚝 선다면 우리 모두는 초인이다.
평범한 다윗이 초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내러티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스토리는 자신의 성스러운 삶을 대변하는 삶의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고통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이 주인공은 문제를 풀어감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을 구해내는 근력을 스스로 만들어낸 영웅이다. 구해내는 것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이지만 자신을 제대로 구해내는 영웅만이 남들도 구해낼 수 있는 영웅이 된다. 목적은 삶의 정산이 끝나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고, 해결하지 못한 고통은 과거의 미제 사건 때문에 생긴다. 고통은 고정된 과거가 변화하는 현재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생성된다. 주인공이 해야 할 미션은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고통의 본질을 이해하고 미래로부터 목적의 밀알을 현재로 가져와 현재를 통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근력을 만드는 일이다.
주인공의 임무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통해 연결해 자신 마음 속에 무너진 목적의 성전을 복원하고 목적의 성전을 통해 자신에게 부가된 고통을 극복하는 근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다윗의 존재는 다른 다윗이 사는 공동체를 통해 확인되고 추인되고 공인된다. 공동체의 구성원의 임무는 뿌리가 연결된 리좀 숲을 복원하는 일이다. 리좀 숲에서는 수없이 많은 가짜 연결들의 시끄러움이 극복되고 사람 사이의 진짜 연결이 복원된다. 리좀 숲의 본질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 목적을 공유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다. 이런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토대로 다른 연결들이 채워질 때 진정한 의미의 리좀 숲은 살아난다. 뿌리가 끊어진 황폐해진 리좀 숲을 복원하기 위해 서로가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고통에서 먼저 자유로와진 사람들이 타인을 고통을 환대하는 주인으로 나선다. 변방의 다윗들은 이런 리좀 공동체의 연결을 숭모하고 타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위례의 제사를 같이 지내는 기쁨을 안다. 공동체의 모든 위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리좀 연결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다.
무너졌던 존재목적의 성전이 각자의 마음 속에서 살아나 시각장애가 극복되고 묵음처리되어 숨겨져 왔던 고통의 소리가 들려서 청각장애가 극복되면 우리는 누구나 초인의 길에 들어선다.
초인의 삶이 삶의 표준이 된 세상에서는 쿠팡의 김범석 같은 악덕 기업주는 설자리가 없을 것이다. 윤석열 같은 눈먼 골리앗도 사라질 것이고, 김건희 처럼 주술에 심취한 사이렌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