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바보효과(Sucker Effect)에 대항한 면역주사 먼저 바보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
바보효과(Sucker Effect)에 대항한 면역주사
먼저 바보가 되기로 작정한 사람들
바보효과(Sucker Effect)란 다수가 참가하는 사회적 딜레마 게임에서 모든 사람이 일탈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이들이 속한 공동체에도 도움이 되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여기에 한 명이라도 일탈자가 생겼을 때 이 무임승차자(free rider)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순차적으로 붕괴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이유는 제일 먼저 무임승차한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보이고 주변 동료들도 다 따라한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 자존심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면 기존 무임승차자들로부터 바보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자기비하가 일어난다. 이런 자기검열 때문에 결국 자신도 무임승차에 동참해 모두가 무임승차자가 되어 사회질서는 무너진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모든 학부모가 사교육을 안 시킨다고 다짐을 하고 굳게 협력하면 우리나라는 사교육이 사라지고 공교육 중심으로 교육이 재편된다. 문제는 한 두 명의 학부모가 몰래 사교육을 해서 자식을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는 경우 발생한다. 이 비밀스런 이야기가 학부모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학부모들은 고심에 빠진다. 심지어는 자신의 아들만 사교육을 안 시켜서 좋은 대학에 진학을 못시키면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낙인찍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낙인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아이에게도 사교육을 시킨다. 결국 이런 식으로 사교육은 부활하고 공교육은 무너진다.
몇 해전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과학고를 나와서 6개의 의대에 다 합격해서 서울의대에 다니는 학생이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의 방송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학고는 의대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과학 영재를 길러내는 학교다. 의대에 진학하면 학비를 토해내야 한다. 여기에 다니다가 의대를 진학하는 학생은 죄수게임에서 사회의 합의를 붕괴시키는 일탈자이다.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고등학교 등록금을 토해내는 비용은 비용도 아니다.
과학고에 들어온 대부분 학생들은 성숙한 시민으로 자신의 약속을 지켜 일반적으로 의대에 진학하지 않고 과학영재의 꿈을 키울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과학고에 모였는데 어떤 이기적 학생이 약속을 져버리고 자신만 의대에 진학한다면 이 이기적 무임 승차자는 과학고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는 떨어진 경쟁률에서 이득을 보고 의사라는 전문직을 가지는 두 가지 혜택을 다 누릴 수 있는 무임승차자(free rider)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런 무임승차 행위와 이에 대한 집단적 반응인 바보효과는 사회를 무너트리는 모든 무질서에 개입한다.
지금 상황에 보다 적합한 예는 쿠팡 탈퇴일 것이다. 쿠팡의 김범석은 노동자의 희생과 빨리 빨리를 외치는 대한민국 정서를 불모로 삼아 쿠팡 제국을 만들었고 여기서 얻은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악덕 플랫폼 기업주다. 이런 무임승차에 목이 멘 기업주가 전 국민에게 침해를 가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유출하고도 책임을 통감할 이유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바지 사장들을 고용해가며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김범석 같은 무임승차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단죄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집단 행동주의가 요구된다. 하지만 집단적 행동주의를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단죄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쿠팡이 제공하는 편리함 때문에 탈팡하지 않고 눈치보는 개인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 이런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은 이미 탈팡한 사람들이나 탈팡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보효과를 전염시킬 개연성이 높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바보효과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한 어른이 있다. 고 김수한 추기경이다. 김수한 추기경의 생전 별명은 <바보 추기경>이었다. 모두 똑똑하기를 갈망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작정한 약속과 행동들 때문이다.
김수한 추기경께서 바보로 이름 붙여진 직접적 계기는 2007년 동성고등학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출품한 당신의 자화상 제목 때문이다. 김 추기경님은 자신의 얼굴을 단순하게 그린 자화상의 제목으로 ‘바보야’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당시 “왜 바보라고 하셨느냐”는 질문에 추기경님은 이렇게 답한다.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알면 얼마나 알겠나. 내가 깨달은 진리는 ‘인간은 누구나 다 바보’라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부족한 존재일 뿐이다.”
평생을 높은 직위(추기경)에 계셨음에도, 자신은 늘 부족하고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바보’와 같다는 고백이 담긴 제목이었다.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지 않고, 오직 소외된 이들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며 ‘손해 보는 삶’을 사는 것이 세상의 눈에는 바보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삶을 택하겠다는 당신과의 약속이 담겼다. 바보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의 삶 역시 그당시 세상과 제사장의 기준으로는 가장 어리석고 ‘바보’ 같은 희생의 길이었기에, 그 길을 따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교수님 중 은퇴 후 파키스탄에 PGI(Pakistan Global Institute) 대학에 부총장으로 계신 최연 교수님이 계신데 이분의 연구주제가 희생적 리더십(Sacrificial Leadership)이다. 희생이란 모두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리더가 먼저 상처 받겠다는 용기(Vulerability)를 행동으로 보일 때 드러나는 리더십이다. 리더가 솔선수범해 감수하는 상처받을 용기는 리더의 책임감과 신뢰에 대한 진실성 기반이다. 김수한 추기경님의 리더십도 사실은 바보 리더십이라고 중의미적 이름을 붙였지만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면 희생적 리더십을 발휘하신 것이다.
바보효과에 대한 제어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무작위적 집단행동으로 시작할 수도 있지만 쿠팡의 김범석과 같은 큰 플랫폼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선 목적과 긍휼로 무장한 리더나 지도자 급의 사람들이 먼저 희생하는 솔선수범이 가장 효과적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들이 먼저 희생의 마차를 앞세워 달릴 때 평범한 사람들도 이 마차에 올라타 탈팡을 대세로 만들 개연성이 크다.
희생을 할 수 있는 리더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아무리 재능과 능력이 뛰어나도 선뜻 희생적 행동을 보이지 못한다. 용기없는 리더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꼬리자르기다. 꼬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꼬리는 자신의 가장 덜 아픈 부분이라고 아픔에 대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리더의 희생에 대한 솔선수범이 손해볼 개연성인 신뢰의 기반이고 이미 발생한 고통을 구성원에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받아들이는 책임감의 기반이다. 모든 진성리더십의 기반은 상처를 받아들일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들이 바보로 불려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가 일반인들이 바보효과에 전염되는 것을 막는 가장 효과적 면역주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