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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앞에선 모두의 누님으로 거듭나기 진성의 거울을 닦다.
거울 앞에선 모두의 누님으로 거듭나기
진성의 거울을 닦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학자 찰스 쿨리(Charles Horton Cooley)가 제안한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 개념은 자아가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형성됨을 시사한다. 여기서 ‘외면의 거울’이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타인들의 기대와 사회적 요구가 투영된 자아를 뜻한다. 즉, 개인은 타인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에 맞추어 자신을 조각해 나가는 사회적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외적 거울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기반이다. 중요한 타인에게 지나치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외면의 거울에만 의존할 때 자아가 심하게 왜곡되어가며 사라지는 비극이 시작된다.
이런 타인에게 인정받고 보여지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외적 거울도 중요하지만 자신 내면의 숨겨진 그림자를 보여주는 내면의 거울과 이 내면의 거울이 깨끗하게 닦여진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외면의 거울보다 더 중요하다. 내면의 거울은 주로 철학이 만드는 것을 도와준다.
만약 내면의 거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자신의 결핍이나 고통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면, 뇌는 이 견디기 힘든 감정을 외부로 던져버리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이것이 바로 투사(Projection)다.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열등감이나 분노를 인정하는 대신, 타인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내면의 거울을 닦는 성찰의 부재는 타인을 향한 부당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외면 거울에 의한 과도한 인정이나 내면의 거울에 의한 투사가 발생하는 이유는 뇌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뇌는 기본적으로 상상적 체험과 실제 체험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뇌과학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은 이러한 과도한 인정 욕구에 때문에 왜곡된 자아를 가지거나 자기 고통에 대한 투사 현상 때문에 생긴 자기방호에 대해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할 때 주체를 무시하고 마치 내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반응한다. 거울 뉴런 세포는 뇌가 가진 본질적 속성대로 나와 타인을 엄격히 구별하지 못하는 성향을 지닌다.
이처럼 뇌가 주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속성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거울 뉴런의 이러한 특성은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거울 뉴런이 타인의 긍정적인 파동을 여과 없이 흡수하기 때문에, 주변을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들로 채우면 현실적이고 통제 가능한 수준의 인정 욕구에 따라 긍정적 자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성숙한 타인들이 비춰주는 ‘외면의 거울’은 내면의 거울을 닦는 데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
내면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작동하는 ‘경계의 모호함’은 이득보다는 독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내면의 고통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울 뉴런이 타인의 신호를 포착하면, 뇌는 상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상대에게 덧씌워 자신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즉, 거울 뉴런이 ‘나와 너의 미분화’ 특성을 통해 투사라는 잘못된 해석과 귀인을 과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다.
밖의 사람들의 모습 속에 투영된 자신을 보는 외적 거울과 자신의 고통의 그림자를 보는 내적 거울이 없거나 있어도 닦여지지 않은 모습일 때 인간은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과 자신의 고통에 대한 투사를 일삼는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왜곡된 심리적 자아를 형성한다. 거울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 엄청난 재능까지 가지고 태어나면 이 사람은 반드시 나르시스적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진성리더십에서 언급하는 진성이란 내면의 거울과 외면의 거울의 존재를 인지할 뿐 아니라 모두 깨끗하게 닦여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진성의 모습이 구현된 것을 가장 잘 표현한 시가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에는 온갖 풍파를 겪고 돌아와 잘 닦여진 외면과 내면 “거울 앞에 선” 누님이 등장한다. 소쩍새의 울음과 천둥, 무서리라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내고, 마침내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온전히 직면하게 볼 수 있는 진성의 상징이다. 누님이 거울 속에서 마주한 모습은 타인의 기대에 휘둘리는 자아도, 내면의 고통을 밖으로 투사하는 일그러진 자아도 아니다. 풍성이 아름다운 국화꽃으로 핀 정체성 자체다. 그것은 내면과 외면의 거울이 하나로 일치된, ‘진성(Authentic)’이 픔성으로 나타난 자아다.
진성리더십의 관점에서 내면과 외면의 거울 만들기와 거울 닦기를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코칭 질문을 만들어보았다.
[기대의 분리] 지금 내가 느끼는 인정에 대한 압박감은 나의 삶의 주인으로 서려는 진실된 가치인가, 아니면 주인으로의 삶과 무관한 외면의 거울이 비춘 ‘타인의 인정에 대한 기대’인가?
[뒷모습의 확인] 내가 지금 저 사람에게서 비난하는 특징은, 사실 내 안에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뒷모습’은 아닌가?
[경계의 인식]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면 거울 뉴런이 상대의 반응을 내 안의 고통과 뒤섞어 만든 ‘왜곡된 시뮬레이션’인가?
[환경의 재구성] 나의 거울 뉴런은 지금 어떤 사람들의 에너지를 복사하고 있는가? 나의 내면 거울을 맑게 비춰줄 건강한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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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옆에서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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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