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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가 사라진 장례에 대한 성찰: 송길원의 『임종일기』
애도가 사라진 장례에 대한 성찰:
송길원의 『임종일기』
송길원 목사가 최근 출간한 『임종일기』를 읽으며, 먼 훗날의 이야기로만 치부했던 죽음을 현재의 시간으로 소환하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진정한 애도를 넘어 우리가 왜 오늘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죽음에 대한 각성이 미래의 죽음을 어떻게 존엄하게 만드는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송길원은 가족 사역 전문 기관인 하이패밀리(Hi Family)의 대표이자,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청란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다. 평생을 가정 회복과 생명 존중 사역에 헌신해 온 그는 최근 죽음의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임종 감독’으로서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하이패밀리는 ‘가정을 천국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고통받는 가정들을 치유하며, 양평에 ‘안데르센 공원묘원’ 등을 조성하여 죽음마저 아름다운 이별과 축복의 과정이 되도록 돕고 있다. 그가 시무하는 청란교회(靑卵敎會)는 자연과 예술, 영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신자들이 일상을 떠나 본질적 자아를 대면하는 안식처다.
저자는 오늘날 한국의 장례식이 자본의 논리에 휘말려 하나의 소비상품으로 전락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상품화된 장례는 겉보기에 화려할지 모르나, 고인의 삶을 진지하게 대면할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망자를 또 한 번 장사지내는 의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프로이트 (Sigmund Freud)는『슬픔과 우울증』에서 애도를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리비도를 철회하여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는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심리적 작업’이라 정의했다. 즉, 애도는 단순히 슬퍼하는 행위를 넘어 고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가 남긴 의미를 자신 삶에 밀알로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애도 철학자 레비나스와 데리다는 프로이드가 주장하는 애도를 통한 고인과의 결별을 넘어 고인이 남긴 유산의 밀알을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 소생시켜 자신이 윤리적 주체로 세워지는 행위를 애도로 해석한다. 특히 레비나스는 애도를 자아 중심적 회복을 넘어 타자를 향한 윤리적 개방의 과정으로 해석한다.
현재의 장례 시장은 이러한 심리적, 영적 과정을 소거한 채 죽음의 의미를 희석하고 있다. 현대의 장례식은 그냥 빨리 잊기 위한 소실과 망각의 과정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장례의 본질적 의미, 즉 남겨진 이들이 고인의 유산을 발견하고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애도의 회복’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잠이 낮 동안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 입었던 무거운 옷을 잠시 벗는 일이라면, 죽음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썼던 모든 직책과 지위, 역할의 가면을 영원히 내려놓는 사건이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듯, 매일의 죽음은 내일이라는 새로운 부활을 준비하는 안식이다. 살아가며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와 성취를 곧 자신이라고 착각하지만, 매일 죽음을 연습한 이들에게 장례는 덧없는 외피를 걷어내고 존재의 순수한 본질로 돌아가는 엄숙한 예식이다. 이때 한 존재의 진정한 가치는 권력이 아니라,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밀알’과 같은 이야기, 즉 타인의 가슴에 심어진 선한 사명과 긍휼로 남는다. 고인의 삶을 정중하게 해석하여 이러한 이야기를 부활시키고 진심으로 애도하는 일이 바로 장례 감독의 핵심적 책무다.
책에 등장하는 무하(無下) 문기수 선생의 유품인 ‘검은 고무신’ 에피소드는 이러한 본질로의 회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워싱턴 공항에서도 한복에 흰 고무신을 고집하며 당당했던 그는, ‘자신 아래로는 아무도 없다’는 뜻의 호처럼 철저히 겸손한 삶을 살았다. 사후 추모 시간에 네 아들이 고인의 작은 검은 고무신에 발을 끼워 넣으려 낑낑대던 장면은 숭고한 애도의 정점이다. 화려한 구두 앞에 기죽지 않던 고인의 기개, 즉 아버지가 평생 입었던 ‘낮아짐’이라는 옷에 아들들이 접속하는 순간은, 페르소나를 벗고 남긴 본질적 밀알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감동적으로 웅변한다.
온전한 마무리가 없는 장례는 고인의 삶을 다시 고려장 시키는 것과 같다. 애도가 살아있는 장례식은 남겨진 자들에게도 삶의 본질을 직시하게 하는 각성 사건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로 규정하며, 죽음을 미리 ‘앞서 달려가 보는(Pre-running)’ 경험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경험이라고 역설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유한성을 사유할 때,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비본래적 삶을 벗어나 자기다운 본래적 삶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현재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편집된다. 죽음은 그 편집이 마감되는 순간이며, 인생의 모든 조각이 기승전결로 맞춰지는 결말이다. 고통스러웠던 순간마저 남은자가 해결해야한 삶으로 해석하고 고인을 예우하는 것, 애도받지 못한 무연고자를 애도하는 행위는 윤리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행위다.『임종일기』는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을 통해 가면을 벗고 진실한 내면과 정렬된 삶을 살 것을 권하는, 죽음을 초월한 생의 가장 정직한 지침서다. 잠언의 지혜를 삶으로 풀어내는 책의 기록을 통해, 많은 이들이 죽음이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새로운 부활을 경험하길 기대한다.
책은 애도가 있는 장례식은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 마음 속에 그리움이라는 밀알을 남기는 숭고한 의식이라는 점을 명료하게 각성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