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어떻게 노예들에게 그 어려운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르칠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노예들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르칠 수 있었을까?
희랍시대에 학자들은 어느 누구도 노예들에게 수학적 원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검증해보면 노예가일반인 보다 지적으로 하등할리는 만무하지만 사람들은 노예는 일반인보다 지적으로 하등하다고 믿었다. 노예들 스스로도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믿음의 감옥에 갇혀서 살고 있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노예들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를 가르쳐 이해시키는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답은 소크라테스만이 유일하게 노예들을 자신들이 지적으로 하등하다는 믿음의 감옥에서 탈출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노예들이 자신들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하기 전에는 지적인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다가 이런 믿음을 회복하는 순간 일반 사람들과 같은 지적인 노력을 기울여 피타고라스 정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원리는 현대의 교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학생들은 누구든 자신이 그 과목을 잘 할 수 있을 것인지 못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교사는 이 기대치를 재생산하여 그 수준만큼의 집을 학생들에게 만들어주는 과정에 불과하다. 학생은 기대치를 가져오고 선생은 이 기대치를 수업을 통해 확증해서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 스스로가 낮은 기대치를 가지고 수업에 임할 경우 교사가 아무리 현란한 티칭기법을 가지고 있다해도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결국 학습의 결과는 선생이 학생들에게 통상적으로 알려진 기대치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기대치를 높혀잡을 수있게 하고 이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주는지에 달려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면 그 과목에 대한 흥미가 급증하고 성적도 상승했던 한두번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바람에 갑자기 지적능력이 진화해서 110이던 아이큐가 130으로 변화했을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선생님과의 신뢰로운 관계가 자신을 낮은 기대의 감옥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많은 다른 요인들이 있겠지만 학생과 선생들 사이의 학습의 효과성은 선생님이 학생에 대해서 얼마나 높은 기대치를 설정해주는지, 학생들이 이 기대치에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얼나나 신뢰롭게 행동했는지, 이 기대치를 확증하게 위해서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지금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학원 선생님을 더 신뢰하는 분위기에서는 참교육이 아니라 지금처럼 선생과 학생간의 최소한의 신뢰도 끊어진 잠자는 학생들만을 더 양성할 것이다.
훌륭한 교육은 관계의 힘에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