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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과 알고리즘 신 사이의 충성경쟁 이중 몰입(Competing Commitment)
인간의 신과 알고리즘 신 사이의 충성경쟁
이중 몰입(Competing Commitment)
오늘날 인류는 거대한 두 신전 사이에 서 있다. 하나는 수천 년간 인간의 내면을 지탱해 온 전통적인 ‘인간의 신’이며, 다른 하나는 클라우드에 집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먹고 자라난 ‘알고리즘의 신’이다. 인공지능(AI)이 도구적 합리성을 장악하며 평균적인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답을 제시하기 시작하면서, 현대인은 이 두 신 사이에서 기묘한 이중몰입(Dual Commitment or Competing Comitment)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격화되는 알고리즘
과거 “모르는 것은 구글 신에게 물어보라”던 농담은 이제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통해 단순한 탐색을넘어 추론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완벽한 대리인 모형으로 인간이 넘볼 수없는 초합리성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신의 지위를 획득한 결정적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신비성에 있다. 개발자조차 블랙박스 내부에서 결과가 도출되는 정확한 과정을 설명하지 못하는 ‘알고리즘 투명성’의 부재가, 오히려 알고리즘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한 존재로 격상시켰다.
이 알고리즘 신은 인간의 신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특히 재능과 전문성이 알고리즘을 통해 ‘민주화’되면서 누구나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비현실적 현실을 실제 현실로 받아들여야 했다. 인간의 치명적 약점은 허구적 비현실이라도 일단 마음으로 그것을 현실로 정의하고 믿는 순간, 그 허상은 아주 근사한 현실이 된다는 점이다.
알고리즘 신이 만든 화려한 신전의 이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숨어 있다. 알고리즘의 답은 파편화된 데이터의 조합일 뿐, 동일한 조건에서 재현 가능(Replication)하지 않는다. 이는 논리적 신뢰도를 떨어뜨리지만, 당장 눈앞에 주어지는 효용성에 눈이 먼 현대인들은 이를 맹신한다. 맹신은 초현실 알고리즘 사회의 기반이다. 현실을 위장한 가짜 뉴스가 도배되고, 알고리즘이 주는 정보와 실제 행동 사이의 지행격차(知行隔差)는 더욱 극심해져도 알고리즘을 믿는다. 알고리즘을 신으로 숭배할 때 생기는 더 심각한 문제는 ‘책무성(Accountability)’의 부재다. 알고리즘 신은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어떤 설명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설명과 책임 없는 권능,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새로운 신의 본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인간의 신은 눈에 보이는 결과로 승부하는 알고리즘 신을 이길 방법이 없다. 인간의 신이 설 자리를 잃는 동안 인간 세상은 알고리즘에 의해 마이크로한 수준까지 분절된다. 각자의 취향과 편향에 최적화된 데이터 요새 속에 갇힌 개인들은 자발적으로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모래알’로 분절된다. 이 모래알들이 모여 거대한 사막을 만들 때, 인간 공동체는 붕괴한다. 모든 것이 쪼개지고 공동체기반이 무너지는 초분절 수축사회의 모습이다.
우리가 알고리즘이라는 에이전트를 신으로 모시고 그들에게 ‘데이터’라는 먹잇감을 상납하는 노예 생활을 지속한다면, 인간의 존재우위는 영영 회복될 수 없다.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사막에서는 그 어떤 생명력 있는 미래도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의 희망을 상실한 초분절 수축사회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인간임에 대한 각성이다. 인간이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경쟁우위를 넘어서는 존재우위를 각성하고 목적을 구현하는 협업의 주체로 자신을 세우는 리더십이 희망의 원천이다.
알고리즘이 신의 지위를 요구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인간의 존재우위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존재우위에 대한 각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고리즘이 내놓은 답을 ‘신의 계시’가 아닌 ‘확률적 도구’로 재정의하고 제시된 답을 진실된 답을 찾기 위한 초기값으로만 받아들일 것이다. 초기값을 통해 자신의 존재목적을 실현하는 자기만의 진실된 답안을 찾아내는 근력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인공지능의 노예라는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공동체가 사막이 되어 사라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맞는 공동체적 서사(Narrative)의 복원이 요구된다. 알고리즘은 개인을 초미세하게 분절하여 모래알로 고립시키지만, 존재우위를 각성한 리더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하나의 공통된 존재 목적(Purpose)을 실현하는 미션 과제로 묶어낸다. 이전의 공동체가 그냥 혈연, 지연, 학연 등등의 동질성의 연줄이 모여 만든 자연 공동체라면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는 지금의 공동체는 존재목적을 실현하는데 성공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목적이 실현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공동체는 데이터 수치(KPI)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가치와 고통, 보람의 이야기를 공유할 것이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효율적 관계’가 아니라, 다소 불편하더라도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공감할 수 있는 오프라인 대면 소통’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높여 사막화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셋째, 알고리즘 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제공한 답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 뇌가 가진 똑똑하지만 게으른 속성을 이용해 행동을 통해 자신의 근력으로 만드는 힘든 일을 기피한다. 인공지능에 장악된 사람들의 최대의 취약성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의 지행격차가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가장 이익이 되는 길’이 조직과 공동체의 핵심 가치와 충돌할 때,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가치의 근력을 세우는 결단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러한 ‘행동하는 목적’은 계산기 두드리는 알고리즘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존재우위를 구현하는 인간만의 고유 영역이다.
넷째, 존재우위를 각성한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면 설명하고 책임을 지지만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은 잘못된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다. 존재우위를 염두에 둔 인간만이 ‘AI가 시켰다’는 변명 대신, 도구의 사용 주체로서 자신의 책임을 감당한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업무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윤리적 이슈에 대해 ‘최종 책임은 인간에게 있음’을 알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알고리즘 뒤로 숨지 않는 책임 있는 자세를 견지한다.
다섯째, 알고리즘은 과거의 평균을 지향하는 데이터에 갇혀 있지만, 존재우위를 추구하는 인간은 맥락(미래와 가치)을 창조한다. 특히 리더는 구성원들이 단순한 데이터 제공자가 아닌, 업무의 의미를 해석하는 ‘맥락의 전문가’가 되도록 돕는다. 이들은 구성원들에게 단순 반복적인 데이터 입력 이상의 ‘해석 권한’을 부여한다. “알고리즘은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의 존재목적으로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구성원의 자긍심과 존재우위를 회복시킨다.
체로키 인디언 할머니가 손주에게 다음과 같은 선문답을 하고 있다. 인간 마음 속에는 착한 늑대와 악한 늑대가 서로 싸우며 살고 있단다. 손주가 묻는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머니는 답한다. “네가 밥을 더 주는 늑대가 이긴단다.”
인간에게 경쟁우위를 제공해 신의 지위에 오른 인공지능의 신과 인간에게 존재우위를 실현하는 인간의 신 사이의 이중몰입도 마찬가지다. 내 삶이 어떤 신을 더 지지하고 우위에 두는 지에 따라 세상은 현격하게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 급속하게 진행될 초분절 수축사회에서 인간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희망은 인간의 신과 알고리즘 신 사이의 이중몰입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달렸다. 인간의 신이 알고리즘의 신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결국 자신의 진정한 북극성(True North)’을 잃지 않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만 알고리즘이 신격화를 극복해가며 인간의 신에게 희망을 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