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해체되는 경력 사다리와 인볼루션(Involution)의 공습: 점점 현실이 되가는 우로보로스 운명
해체되는 경력 사다리와 인볼루션(Involution)의 공습:
점점 현실이 되가는 우로보로스 운명
인볼루션(Involution)이란 안으로 굽어진 진화를 의미하는 말로 밖으로 팽창하는 진화(Evolution)이란 개념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인볼루션이란 성장이 끊어진 수축사회의 국면에 진입할 때 구성원들이 살아 남기 위해 취하는 고육지책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창출하는 이익은 효율성과 최적화에 기반한다. 효율성과 최적화는 비용을 줄여서 순이익률을 높이는 방식이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파이를 키우는 방식은 아니다. 인공지능에 의한 최적화가 성숙 국면에 도달하면 본격적인 수축사회가 시작되고 이런 수축사회에서 정해진 파이를 나눠먹으며 생존하는 방식이 인볼루션이다.
1963년 문화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식민지 자바의 농업 생산 체계를 관찰하며 기이한 현상을 포착했다. 인구는 폭증하고 경작지는 고정되어 있는데도 토지 생산성은 변동이 없었다. 비밀은 점점 더 정교해지는 노동 집약에 있었다. 농부들은 같은 논을 더 잘게 나누고, 더 세밀하게 손질하고, 더 촘촘히 모를 심었다. 외부를 향한 확장이 막히자 시스템은 자기 안으로 정교하게 관료제 시스템을 만들어 굽어 들어 갔다. 기어츠는 이런 내연화 현상을 ‘인볼루션(Involution)’이라 명명했다. 성장이 아니라 정교화, 분화가 아니라 내부 밀도의 증가 시키는 현상이 인볼루션이다.
오늘날 우리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러나 섬뜩할 만큼 경력 시장에서 비슷한 인볼루션을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심화되면서 전통적 경력 방식인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Evolutionary Career가 해체되고 남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Involutionary Career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AX(AI Transformation)의 가속이 경력의 문법 자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신입으로 조직에 발을 들이던 날 우리 앞에 놓였던 약속이었던 성실히 오르면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경력의 사다리는 조용히 철거되고 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한정된 입구를 향해 더욱 정교해진 스펙의 경쟁뿐이다. 실제 변호사 자격을 손에 쥔 이들이 인턴십 문 앞에서 되돌아서고, 회계사 면허를 가진 이들이 택배 상자를 옮기며 생계를 잇는다. AX로 경력 시장이 수축 국면에 들어서자 경력 시스템은 밖으로 확장되기를 멈추고 안으로 굽어 들어가는 내연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나 일시적 공급 과잉의 문제가 아니다.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는 최근 디지털 기술의 고용 대체 효과가 기존의 기술, 노동 보완 관계를 역전시키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과거의 기술 혁신이 일자리를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적 파괴’의 경로를 밟았다면, AI 주도의 자동화는 중간 숙련 직무를 통째로 삼키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고용의 문을 열지 않는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 아니라 있는 일에 효율성을 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력 인볼루션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기술, 제도적 구조의 산물이다.
기체화 되어 사라진 경력과 우로보로스 현상: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우리 시대를 ‘액체 근대성(Liquid Modernity)’으로 규정했다. 고체처럼 견고하던 제도와 관계들이 녹아 흘러내리는 시대, 어제의 성취가 내일의 자산이 되지 못하는 시대다. 지금까지 경력은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액화된 영역이다. 30년 전 경력은 조직이 제공하는 사다리를 타고 단계적으로 축적되는 고체의 자산이었다. 오늘날 경력은 플랫폼과 프로젝트 사이를 떠도는 액체화된 부유물이다. 설령 피라미드 정점의 경쟁에서 뒤처지더라도 쌓아온 전문성이 정년이라는 안전망 위에서 빛을 발했던 시절은 AX가 정착되면서 급격히 기체로 증발하고 있다.
내연화(Involution)가 조직 내부로 침투하면 더욱 잔혹한 형상이 나타난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는 자신의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Ouroboros)가 등장한다. 영원과 자기 갱신의 상징이었던 이 이미지는 오늘날 현대 조직의 경력 생태계를 묘사하는 가장 정확한 은유로 되살아난다. AX가 주도하는 효율화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게 된 숙련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다시 이용한다. 뱀의 머리가 생존을 위해 꼬리를 씹어 삼키듯, 그들은 엔트리 레벨의 젊은 인력들이 경험을 쌓고 역량을 기를 현장을 흡수해 버린다. 기업은 비용 절감이라는 논리로 이를 묵인하거나 장려하기까지 한다.
더 깊은 비극은 그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다. 살아남은 이들조차 안심할 수 없다. 시장이 수축하는 국면에 진입하자 외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갈고닦은 AI 전략은 언제부터인가 동료를 제거하고 자리를 빼앗기 위한 내부 무기로 전용된다. 선물처럼 기업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트로이 목마가 되어 구성원을 전멸시킬 운명이다. 혁신을 위해 설계된 도구가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내부 소모전의 촉발제로 변질되는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배가 고파진 뱀은 꼬리를 다 삼키고 나면 결국 자신의 몸통마저 갉아먹는다. 우로보로스가 운명이다.
공유지의 비극과 고용 없는 수축사회:
생태학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은 1968년 「공유지의 비극」에서 목초지를 공유하는 목장주들의 딜레마를 이론화했다. 각 목장주에게 소 한 마리를 더 놓아기르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 합리성을 따를 때 목초지는 황폐해진다. 개별 합리성의 집합이 집단적 파국을 낳는 구조다.
오늘의 고용 생태계가 정확히 이 경로를 밟고 있다. 단기적으로 기업의 효율 지표는 빛난다. 인건비는 줄고 생산성은 유지된다. 그러나 그 빛의 반대편에는 차가운 역설이 자란다. 각 기업이 AI를 통해 고용을 한 명씩 줄여나갈 때, 그 선택은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그 논리를 따를 때 사회 구성원들은 소비할 능력을 잃고 수축사회 국면에 진입한 시장 자체가 무너진다.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AI는 날마다 완성에 가까워지지만, 그것을 구매할 인간은 소득을 잃고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엔트리 수준의 인력을 공급해오던 대학도 우로보러스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다. 생계가 시급한데 취업이 미끼가 될 수 없는 대학에 들어올 젊은이들은 없다. 대학 뿐 아니라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서 사회의 모든 국면은 우로보로스의 운명에 처해진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꼭지는 기업에게 있지만 문제는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유지의 비극은 공유지를 관리할 집합적 주체가 등장할 때 비로소 멈춘다. AI와 인간이 공존할 새로운 사회 계약, 고용과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을 재설계할 제도적 개입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 진화는 멈추고 내연화만이 심화된다.
진성리더십이 서야 할 자리: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산업화 시대의 사회 해체 현상을 ‘아노미(anomie)’로 포착했다. 규범과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 상태, 연대의 끈이 끊어진 초분절된 원자들이 각자의 궤도로 흩어지는 상태다. 사회의 아노미가 진전되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은 사는 것의 무료함과 덧없음을 극심하게 경험하고 결국 택하는 길이 아노미 자살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아노미 자살에서 OECD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다. AX가 초래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노미 자살의 그림자는 대한민국 전체를 먹구름으로 덮을 것이다.
경력 인볼루션이 심화된 오늘날 조직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노미의 축소판이다. 후배는 선배를 협력자가 아닌 위협으로 바라보고, 선배는 후배를 잠재적 대체재로 계산한다. 공유된 사명으로 뭉쳤던 동료애와 공유지였던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데이터와 개별 생존의 논리가 작동하면 공멸이라는 우로보로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인간을 이익을 내는 수단이자 비용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주의의 끝물이 AX와 연합해 만든 것이다. 진성리더십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할 시스템을 비용과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인간 위에 올려놓을 때 생긴다고 진단한다. 진성리더의 눈에 구성원은 저마다 고유한 사명과 성장 가능성을 품은 존재다. AI를 동료를 제거하는 무기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성장을 위해 재배치하는 것, 후배 세대가 공동 과업 안에서 경험을 쌓고 관계응집력을 형성할 공간을 창출하는 것, 이런 가치와 문화적 기반을 만드는 과제들이 진성리더십의 기업과 사회의 미래 설계에 대한 제안이다. 이것은 당위의 구호가 아니다. 아노미를 넘어 시급한 리더들의 헌신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우로보로스는 원래 파괴의 상징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순환하고 재생하는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 은유가 오늘날 우리 조직에서 파괴의 형상으로 현현하는 것은 은유의 필연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리더십의 결과다.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일은 거창한 혁명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내 옆의 후배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 AI의 과실이 조직 전체로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 구성원의 성장을 내 성과의 일부로 계산하고 책임지는 작은 선택들이 쌓일 때 비로소 내연화의 고리는 끊어지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공진화의 경로가 다시 열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