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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당 청구 금액(Billable Hour) 시대의 종말 AI 시대 변호사의 운명
시간 당 청구 금액(Billable Hour) 시대의 종말
AI 시대 변호사의 운명
2026년 3월, 뉴욕 재비츠 센터에 약 7,000명의 변호사와 법률 테크 기업 관계자들이 모였다. 2026 Legalweek 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번 컨퍼런스가 법률 시장의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에 모두에게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은 “AI 도입이 법률가가 청구하는 시간 당 가치 모형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전통적 법률 시장 보상 평가 모형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이슈를 다뤘기 때문이다.
아래 첨부된 로이터 기사에 따르면 어느 강연장은 사람들이 복도까지 밀려나 강의장 밖에서도 강연을 듣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이 세션에서는 Microsoft, GSK, HSBC, Barclays의 법률 담당 임원들이 발표하고 있었다. 법률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직접 AI 법률 서비스에 대해 입을 열었기 때문에 모든 참가자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변호사들이 그 문 앞에서 줄을 선 것은 정보에 대한 갈증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실존적 불안의 행렬이었다.
시간을 팔아온 사람들의 운명
근대 법률 시장은 하나의 단순한 공식 위에 세워졌다. 시간 × 단가 = 수익. 변호사가 계약서를 검토하는 데 10시간을 쓰면, 그 10시간이 곧 청구서가 된다. 이 모형의 전제는 명확하다. 전문가의 시간은 희소하고, 그 희소성이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AI는 이 공식을 무너트리고 있다. 수십만 건의 판례를 수초 만에 검색하고, 수백 페이지의 계약서를 수분 안에 초안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 앞에서, 변호사의 시간은 더 이상 자동으로 희소하지 않다. 법률 AI 컨설턴트 오즈 베남람(Oz Benamram)은 “3년 안에 기업들은 지금 로펌에 맡기는 업무의 절반을 AI로 처리할 것이다.” 수치가 이를 뒷받침한다. AI를 활용하면 소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시간당 300달러를 청구하는 변호사가 25시간 걸리던 서면 작성이 10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치자. 같은 수익을 유지하려면 시간당 요율을 750달러로 올려야 한다. 비용 절감을 요구하는 기업 법무팀이나 고객이 이를 수용할 리 없다.
Thomson Reuters와 조지타운 로스쿨이 공동 발표한 2026 미국 법률시장 보고서는 이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지적한다. Am Law 100 대형 로펌의 변호사 1인당 수익은 2019년 대비 54% 증가했지만, 그 이면에서 청구 가능 시간은 실제 감소하고 있다. 지금은 요율 인상이 그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이러한 불균형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당 청구(Billable Hour)의 진짜 본질
AI 도입이 표준으로 장착되면서 법률 시장에 참여자들도 물음을 바꿔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변호사들은 시간당 청구 (Billable Hour) 모형이 무엇을 감추고 있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직면해야 할 시점이다.
솔직하게 생각해보면 청구 시간은 말 그대로 가치를 측정하는 단위만은 아니었다. 나름의 불확실성을 흡수하는 완충재였다. 법률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결과를 사전에 보장할 수 없다. 소송에서 이길지, 계약이 성사될지는 변호사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불확실성 앞에서 로펌은 시간이라는 단위를 방패로 삼아서 수익 구조를 만들었다. 이 청구 시간을 통해 대부분의 위험은 의뢰인에게 통상적으로 전가된다.
Weber가 근대 관료제를 ‘탈주술화(Entzauberung)’의 산물로 진단했을 때, 그는 인간의 고유한 판단과 지혜가 측정 가능한 절차로 치환되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었다. 시간당 가격을 메기는 청구시간은 법률 전문성의 탈주술화다. 지혜를 시간으로 환원하고, 판단을 시간으로 대체한 것이다. AI는 지금 그 탈주술화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
Legalweek 2026에 참가해 세션마다 줄을 선 변호사와 로펌이 해결해야 할 딜레마는 이중적이다. 첫 번째 딜레마는 수익 모형의 딜레마다. AI를 도입하면 효율이 오르고 청구 시간이 준다. AI를 도입하지 않으면 고객이 떠난다. 고객들은 단호하다. “AI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일을 맡기지 않겠다.” 2년 전만 해도 “AI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던 로펌들이 있었지만 지금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로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로펌이나 변호사들이 두려워하는 이유는 법률시장이 변화하는 속도다. 수십 년 쌓아온 수익 구조가 2~3년 안에 재편될 수 있다는 공포를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두 번째 딜레마는 보상 체계의 딜레마다. 시간당 청구하는 단순한 수익 모형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법무법인의 문화이자 권력 구조다. 어소시에이트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경로, 파트너들의 지분이 결정되는 방식, 모든 것이 시간 위에 세워져 있다. 문제는 보수적인 변호사들이 이런 요구를 그대로 따라잡을 리 없다. 실제로 Thomson Reuters 조사에 따르면 로펌의 72%가 AI 도입에 맞춰 변호사 보상 체계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보고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법률 회사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법률회사들은 연합해 AI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이 지배해온 문화 문제라고 변명해가며 사안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다. 문화는 언제나 전략보다 강하지만(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 문화도 고객이 동의할 때 무기가 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문화를 핑게로 고객이 요구하는 보상제도를 손대지 않고 있는 로펌들이 얼마나 시장에서 견딜지는 의문이다.
기사에 따르면 워싱턴 대학교 로스쿨의 올리버 로버츠(Oliver Roberts)는 Legalweek 강연장에서 “AI는 100% 변호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리버 로버츠가 한 다음 주장이 더 중요하다. “AI가 대체하는 것은 시간을 파는 변호사다. 판단을 파는 변호사, 관계를 파는 변호사, 신뢰를 파는 변호사는 다른 문제다.” “AI가 할 수 없는 판단력을 지닌 변호사에게 기업들은 시간당 1만 달러를 지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I가 법률 시장에 가져온 파문은 변호사라는 직업의 소멸이 아니라, 어떤 변호사인가의 변호사 정체성이 문제라는 의미다. 시간을 파는 변호사는 AI에 대체된다. 존재를 파는 변호사는 오히려 더 비싸진다.
이것은 법률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초분절 수축사회에서 모든 전문직이 마주한 근본 물음이다. 수단을 기반으로 한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의 세계에서는 더 빠른 AI가 더 느린 인간을 항상 이긴다. 달리기에서 인간이 말을 이길 수 없고 빨리 달리기에서 말이 자동차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존재우위(ontological advantage)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누가 이 의뢰인의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가? 누가 법의 문자가 아니라 정의의 정신을 붙잡고 있는가? 누가 이 기업의 10년 후를 함께 걱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AI 법률 에이전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률 에이전트라는 말에 올라탈 수 있는 기수가 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대한민국 법률시장이 글로벌에서 배워야 할 것
대한민국 법률시장은 Legalweek 2026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는 문제에 절연된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률 시장은 오히려 더 위급한 형편에 처해 있다.
한국 법조계는 오랜 관행과 진입장벽으로 보호 받아온 시장이어서 변화의 문제에 특히 둔감하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체계의 전환을 거치면서도, 변호사 보수의 불투명성과 수임 계약의 관행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빌러블 아워 모형은 한국에서 서구만큼 명시적으로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본질인 전문가의 시간을 불투명한 방식으로 거래하는 구조는 한국 법률시장에서 더 암암리에 존재한다.
이런 와중에도 국내 선두 기업 법무팀들은 AI 기반 계약 검토 도구를 내재화하고 있고 외부 로펌에 위탁하던 단순 반복 업무가 빠른 속도로 인하우스화되고 있다. 한국 대형 로펌들도 AI 플랫폼 구축에 나섰지만, 투자 대비 보수 모형 전환 논의는 아직 구체적으로 표면화 되지 않고 있다. 한국 법률시장의 가장 위험한 지점이 여기다. 기술은 도입하되, 비즈니스 모델은 바꾸지 않는 반쪽짜리 대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법률 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첫째, 가치 기반 수임 계약의 제도화다. 시간이 아니라 결과와 가치에 기반한 수임료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AI 시대의 출발점이다. 둘째, 법률 서비스의 전문화·고도화다. 할 수만 있다면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인 복잡한 국제 중재, 전략적 M&A 자문, 규제 환경 해석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셋째, 법학 교육의 재편이다. AI 리터러시를 법조인의 기본 역량으로 통합하고, 윤리적 판단과 복잡계 사고를 교육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기사에 따르면 Legalweek의 한 발표자가 언급했듯이, 2년 전 기업들은 “AI를 쓰지 말라”고 했고 지금은 “AI를 반드시 쓰라”고 한다. 이 전환이 2년 만에 일어났다. 앞으로의 2년은 더 빠를 것이다. 빌러블 아워의 종말은 단순히 수익 모형의 교체가 아니다. 전문직의 가치가 무엇에 근거해야 하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정의 해야 할 시점임을 알리고 있다. 시간의 희소성에서 판단의 희소성으로, 절차의 효율성에서 관계의 신뢰성으로, 수단우위에서 존재우위로의 근원적 전환이 요구된다.
미국 법률가들의 가장 큰 컨퍼런스 Legalweek의 복도에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세션에 줄을 서던 변호사들이 정말로 듣고 싶었던 것은, AI에 관한 기술 정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는 확인이었다. 그 확인은 바깥에서 오지 않는다. AI 시대에 살아남는 변호사는 더 빠른 AI 도구를 가진 자가 아니라, 자신이 왜 법률가가 되었는지를 아는 자, 즉 자신의 사명을 알고 일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런 질문이 진성리더십이 AI 법률 시장에 던지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