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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리더의 급진거북이 전략: 도(道)를 깨닫는 방법

Jul 4, 2026 ·10분 ·jkyoon · 2
진성리더의 급진거북이 전략:
도(道)를 깨닫는 방법
거리에서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도를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거나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이 물음은, 사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기 이전부터 품어온 가장 오래된 질문이다.
도(道)란 무엇인가?
길이다.
어떤 길인가?
아무도 모른다.
도에 대해 가장 철학적 깊이를 가지고 접근했던 노자는 자신의 저서 <도덕경> 1장 첫 문장에서 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진짜 도가 아니다
길거리에서 “도을 아십니까”라고 접근하는 사람들의 실상은 도를 모르는 사이비일 개연성이 있으니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도는 우리가 찾는 진실한 도가 아니다.
도(道)라는 한자는 ‘걸어가다’와 ‘머리’가 합쳐진 글자다. 길을 걷는 행위와 그것을 이끄는 정신이 하나의 글자 안에 이미 통합되어 있다. 노자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던 그 도는, 머리로 각성한 것을 몸으로 걸어야만 열리는 길이라는 의미다.
태초에 세상에 길은 없었다. 밀림이 있었고, 황야가 있었고,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은 들판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누군가의 머릿속에 방향이 생겼다. 그 방향을 향해 몸이 움직였고, 발자국이 찍혔으며, 반복된 발자국이 풀을 눕히고 땅을 다졌다. 태초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길이 세상의 길로 태어났고, 사람들은 그것을 길이라 불렀다. 모든 길은 우리의 뇌 안에서 먼저 태어났다.
뇌과학의 도에 관한 설명:
21세기의 뇌과학은 이 고대의 직관을 실제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뇌 안에는 문자 그대로 ‘길’이 만들어진다. 그 길의 이름은 마이엘린(Myelin)이다. 신경 회로를 감싸는 이 절연 물질은, 어떤 방향을 향해 반복적으로 걸어갈 때, 즉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때 두꺼워진다. 마이엘린화(Myelinization)란 뇌 신경 연결망에 포장도로가 깔리는 과정이다. 뇌 신경망 도로에 깔린 도로포장야말로 현대 뇌과학이 발견한 도(道)의 생물학적 실체다.
인간은 태어날 때 과잉의 뇌를 가지고 온다. 신생아의 뇌에는 성인보다 훨씬 많은 신경 연결(시냅스)이 존재한다. 뉴런들은 사방으로 무질서하게 연결을 뻗으며 가능성의 잡초밭을 이룬다. 이 잡초밭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혼돈이다. 의미 있는 길이 만들어지려면 이 과잉의 연결들이 먼저 제거되어야 한다.
뇌과학은 이 과정을 가지치기(Synaptic Pruning)라 부른다. 반복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시냅스는 소멸하고, 자주 활성화되는 회로만이 살아남는다.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함께 연결된다(Neurons that fire together, wire together)’는 Hebb의 법칙이 원리다. 그리고 그 역(逆)도 성립한다. 발화하지 않는 연결은 가지쳐진다. 이 가지치기는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지만, 인간이 새로운 목적을 향해 자신을 재정의하는 순간 즉 리더가 되기로 결단하는 순간에도 동일한 과정이 뇌 안에서 발생한다.
가치치기(Pruning)는 상실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방향에 대한 설계다. 잡초가 무성한 뇌에서는 어떤 신호도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 모든 방향으로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가지치기를 통해 불필요한 연결이 제거되고 나서야, 남은 회로에 마이엘린을 쌓을 토대가 마련된다. 가치치기는 포장도로를 깔기 전에 노면을 정리하는 기초공사다. 리더로서의 삶에서 가지치기(Pruning)는 ‘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잡초의 욕망을 제거하고, 자신의 콜링이 향하는 방향으로만 에너지를 집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뇌가 길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이다.
가지치기라는 기초공사가 끝난 뇌 위에, 이제 첫 번째 오솔길이 열린다. 그 오솔길의 이름은 콜링(Calling)이다.
Antonio Damasio의 신체표지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은 이 오솔길이 어떻게 처음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한다. 인간이 어떤 목적 앞에서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등줄기에 전율이 흐를 때, 그것은 뇌가 과거의 신체 경험으로부터 축적한 ‘표지(marker)’가 새로운 자극과 공명하는 순간이다. 뇌는 이 공명을 ‘이 방향으로 가라’는 신호로 처리한다. 오솔길의 첫 발자국은 이렇게 찍힌다. 지도에도 없고, 남들도 걷지 않은 방향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Lisa Feldman Barrett의 구성된 감정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은 여기서 또 다른 층위를 열어준다. 콜링의 감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서사와의 충돌과 통합을 통해 뇌가 능동적으로 구성해내는 것이다. 콜링을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그것을 자신의 삶의 서사 안에서 재해석하는 행위 자체가 오솔길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신경학적 작업이다.
기본값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는 이 과정의 무대다. DMN은 인간이 외부 자극에서 물러나 자신의 내면을 탐색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망이다. 오솔길이 처음 열리는 것은 바쁜 일상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고요한 성찰의 순간을 마지해 홀로 앉아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묻을 때 DMN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아 서사가 통합된다. 인공지능이 건네주는 평균의 답이 결코 콜링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DMN은 타인의 서사가 아닌 자신의 서사와의 충돌을 통해서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아름답지만 고되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되고, 낙엽이 쌓이면 방향을 잃는다. 오솔길이 포장도로가 되려면 다른 종류의 힘이 개입해야 한다. 그 힘이 미션(Mission)이다.
미션은 콜링의 방향을 따라 실체적 과제를 수행하는 행위다. 하나의 팀을 재건하고, 하나의 위기를 돌파하고, 하나의 변화를 세상에 만들어내는 것. 이 수행이 성공하는 순간, 뇌의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고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전달된다. 이것이 보상회로의 점화다. 뇌는 이 경험을 ‘이 길이 옳다’는 확증으로 기록하고, 같은 방향의 다음 행동에 대한 동기를 증폭시킨다. 도파민은 쾌락의 물질이 아니라 방향의 물질이다. 옳은 방향으로 걸어갔을 때 계속 걷게 하는 신경화학적 나침반이다.
세로토닌은 ‘나는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기효능감을 강화하고, 엔도르핀은 수행의 고통을 견디게 하는 내적 마취제 역할을 한다. 미션의 성공은 이 세 가지 신경화학 물질을 동시에 분비시킴으로써, 오솔길 위에 첫 번째 포장재를 깔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포장 효과가 영속적이려면, 미션이 외적 보상(지위, 돈, 인정)이 아닌 콜링이라는 내적 목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외적 보상으로 점화된 도파민 회로는 보상이 사라지면 급격히 약화된다. 진정한 포장도로는 외부의 승인이 아니라 내부의 목적이 까는 것이다.
길에 포장이 깔리고 고속도로가 완성되다:
마이엘린화
마이엘린화(Myelinization)는 특정 행동을 반복할 때 해당 신경 회로를 감싸는 절연 물질인 마이엘린이 두꺼워지는 현상이다. 신경과학자 Douglas Fields의 연구에 따르면, 마이엘린의 두께가 증가하면 신경 신호 전달 속도는 최대 100배까지 향상되며, 신호 간의 타이밍 정밀도는 30배 이상 개선된다. 비포장 도로에서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리던 차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0킬로미터로 달리게 되는 것이다.
마이엘린화는 모든 반복에 균등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Anders Ericsson의 의도적 연습(Deliberate Practice)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주의 집중 없는 무의식적 반복은 마이엘린화를 촉진하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그 간극을 교정하며, 목적을 되새기는 각성된 소규모 반복만이 마이엘린을 층층이 쌓는다.
마이엘린화된 회로가 충분히 두꺼워지면 그 행동의 수행은 전두엽(의지와 판단)에서 기저핵(Basal Ganglia)으로 이관된다. 기저핵은 반복적으로 강화된 행동 패턴을 자동화하여 관장하는 신경 구조다. 이 이관이 완성되는 순간, 리더는 더 이상 ‘노력해서 경청하는 사람’이 아니라 ‘본래 경청하는 사람’이 된다.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연구는 이 과정이 죽음의 순간까지 멈추지 않음을 보여준다. Michael Merzenich와 동료들의 연구는 노년에도 새로운 마이엘린이 형성될 수 있으며, 의도적 훈련이 지속되는 한 신경 회로의 재구성은 계속됨을 입증했다. 도는 완성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포장 공사는 계속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이 생긴다. Pruning으로 잡초를 제거하고, 콜링으로 오솔길을 열고, 미션으로 보상회로를 점화하고, 각성된 반복으로 마이엘린을 쌓는 이 긴 과정을 실제로 견뎌내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삶에서 제대로 길을 만드는 사람들은 진성리더십을 머리에 이고 자기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급진 거북이다.
급진거북이가 뇌과학 기반으로 만든 도의 실체:
급진 거북이의 ‘급진’은 심장을 뒤흔든 목적의 강렬함을 뜻한다. 자신의 콜링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절대성이다. 그러나 ‘거북이’는 그 급진적 목적을 향해 지루할 정도의 작은 반복을 묵묵히 견뎌내는 실행의 태도다. 이 두 가지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 급진 거북이의 본질이다. 급진적이되 서두르지 않는다. 느리되 멈추지 않는다.
뇌과학은 이 자세가 마이엘린화의 최적 조건임을 정확히 가리킨다. 급진성인 콜링에서 발원한 강렬한 목적의식은 전두엽을 각성시키고 도파민 회로를 지속적으로 작동시킨다. 거북이의 속도 즉, 성과에 조급하지 않고 작은 반복을 쌓아가는 태도는 희소돌기아교세포가 마이엘린을 겹겹이 감쌀 시간을 확보한다. 서두르면 마이엘린이 형성되기 전에 회로가 다른 방향으로 분산된다. 거북이의 속도야말로 마이엘린화의 생물학적 요건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콜링에 불이 붙는 순간의 흥분으로 출발하지만, 잡초를 제거하는 Pruning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거나, 오솔길을 포장도로로 만드는 반복의 지루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미션의 성공이 켜놓은 보상회로의 황홀감에 머물다가, 그 에너지를 마이엘린화로 이어가는 규율을 갖추지 못한다. 급진 거북이는 다르다. 미션의 성공이 끝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다음 반복을 위한 출발점이며, 그 반복의 누적이 결국 정신과 가슴과 몸이 하나로 통합된 신경의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것을.
타인이 만든 평균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결코 급진 거북이가 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최적화하여 제시한 길은 빠르고 편하지만, 그 위에는 자신의 마이엘린이 존재하지 않는다. 급진 거북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뇌 안에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길이 처음에는 남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오솔길일지라도, 거북이의 속도로 반복하여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고속도로가 된다.
리더가 되기로 작정한 최초의 순간을 기억해보자. 그 순간의 뇌 안에는 목적을 향한 신경 회로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잡초만 무성한 뇌였다. 아직 가지치기(Pruning)도 되지 않았고, 콜링의 오솔길도 열리지 않았으며, 마이엘린의 포장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좁은 문이었다. 문이 좁은 것은 도덕적 결핍 때문이 아니라 신경학적 현실 때문이다. 마이엘린이 없는 신경 회로는 신호 전달이 느리고 불안정하다. 생각해도 감동이 없고, 감동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며, 행동해도 지속되지 않는다. 정신과 가슴과 몸이 분절되어 있는 것이다.
가지치기(Pruning)로 잡초가 제거하고, 콜링이 오솔길을 열고, 미션이 보상회로를 점화하고, 각성된 반복이 마이엘린을 쌓으면 길은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신경 회로들이 통합되고, 전두엽에서 기저핵으로 이관된 행동들이 자동화되며, 정신과 가슴과 몸이 하나의 통합된 신경 루프 위에서 흐르기 시작한다. 좁은 문이 큰 문이 되는 것은 의지의 팽창이 아니라 신경 지형도의 재구성이다.
삶을 정산하는 순간인 자신의 개입이 끝나감을 느끼는 그 마지막 경계에 이르렀을 때 진성리더의 뇌 안에는 수십 년에 걸쳐 마이엘린으로 포장된 고속도로가 존재한다. 이 지형도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평균의 답 위에 있지 않다. 수천 번의 각성된 반복이 빚어낸, 세상에 하나뿐인 신경의 도(道)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이런 말이 있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이불언, 하자성혜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배나무)는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꽃향기와 열매에 이끌린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도의 완결된 경지다. 급진 거북이가 자신의 뇌 안에 마이엘린의 고속도로를 완성하는 긴 여정의 끝에 이르렀을 때, 그가 개척한 길이 도달한 곳이 과수원이다. 이 과수원에서 풍기는 배꽃과 복숭아꽃의 향기에 취해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 찾아온다. 리더가 ‘나를 따르라’고 외치지 않아도, 그가 몸으로 만든 길이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세상의 길이 되는 것이다.
태초에 세상에 길은 없었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방향이 생겼고, 그 방향을 향해 몸이 반복해서 걸어갔으며, 그 발자국들이 세상의 길이 되었다. 진성리더는 급진거북이 전략을 등에 엎고 잡초밭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보다는 가치치기(Pruning)로 잡초를 제거하고, 콜링으로 오솔길을 열고, 미션으로 보상회로를 점화하고, 급진 거북이의 자세로 각성된 반복을 쌓아 마이엘린의 포장도로를 완성하는 리더다. 선구적으로 자신의 뇌 안에 먼저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진성리더의 뇌에 만들어진 내면의 길이 세상의 길로 다시 태어난다.
道可道, 非常道. 말해질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마이엘린으로 포장된 도인 몸으로 걸어서 만든 도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그 도가 과수원에 이르렀을 때, 복숭아꽃과 배꽃은 말없이 향기를 피우고, 그 아래에는 저절로 길이 생긴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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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