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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에 소환된 막스 베버(M. Weber) 소명으로의 정치 vs 직업으로의 정치

Jul 4, 2026 ·6분 ·jkyoon · 1
대한민국 정치에 소환된 막스 베버(M. Weber)
소명으로의 정치 vs 직업으로의 정치
막스 베버 논쟁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시작은 유시민 작가와 그에 대항하는 논객 사이에 벌어진 ABC 논쟁이 발화점인 것으로 추정된다. 잠잠해지는 듯 하더니 최근에는 이재명 대통령까지 제주 정책 토론회에서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하면 되는 것이지 정치가들이 자신의 진영을 옹호하기 위해 치장하는 가치와 이념 논쟁에 왜 이리 관심을 가지는 지를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귀가 따갑게 번지는 ABC 진영논쟁에 거리를 두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사회과학의 아버지인 막스 베버는 정치가들을 분류해 소명(Calling)을 가지고 업(Vocation)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과 정치적 기술을 습득해 자신 생계(Profession)를 위해 정치하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에 따르면 베버의 소명과 가치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A 그룹에 속하고 내집단의 이익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목적으로 정치하는 B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막스 베버를 제대로 이해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은 이런 분류는 특정한 특성을 모아서 한 방향으로 극단화 시킨 개념적 구성물인 이념형이라는 사실이다. 개념적 이상형임에도 마치 이런 범주가 현실에도 존재하는 것처럼 가정하고 현실을 재단하는 도구로 사용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개념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오류다. 이런 오류에 빠지는 순간 개념에 의해 현실을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막스 베버의 소명을 가진 정치가나 생계형 정치가 유시민 작가의 A와 B는 개념적 이상형일 뿐이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집단이다. 실제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둘이 다른 비율로 결합된 형태다. 이 조합된 하이브리드를 C라고 한다면 막스 베버에게 A와 B는 이념형이고 C는 현실이다. A와 B가 개념형인 이유는 100% A이거나 100% B인 사람은 현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시민 작가의 생각과 달리 A와 B는 개념 상으로는 존재해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마치 현실에도 A와 B가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할 때는 자신이 펼칠 진영론에 상대를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A와 B라는 이념형을 마치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A 혹은 B라는 진영으로 분류해 놓고 서로를 허수아비 삼아 공격하기 시작할 때 정치의 흑역사인 진영론이 시작된다. 유시민 작가는 이런 분류를 통해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진영론 싸움을 시작한 원조가 되었다.
진영론자들은 개념 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원론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왜곡한다. 사람들이 이 왜곡된 현실을 받아들이면 이 사람들을 이원론의 어느 한 쪽을 대표하는 것처럼 진영화 한다. 진영을 대표해 싸우게 하거나 아니면 자기 진영의 입장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 진영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공격하는 법을 가르친다. 어느 쪽 진영이든 진영론에 빠져 가진 논리와 권력을 동원해 자기 진영을 옹호하기 시작하면 정치는 이데올로기의 감옥에 갇히고 결국 타락하기 시작한다. 진영론자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를 내세워도 이 가치는 목적이 아니라 진영의 이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다. 도구가 목적으로 전치되면 목적이 된 도구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무기가 된다. 가치조차 수단화해가며 목적의 지위에 도달한 각자의 진영은 정치를 빙자해 남들을 살해하는 무기일 뿐이다. 개념을 현실로 취급해 만들어낸 진영론의 주창자들은 본인이 아무리 갈라치기할 의도가 없다고 주장해도 개념을 현실로 등치시키는 행위 자체가 교묘한 갈라지기다.
막스 베버는 이런 개념과 현실을 혼동하는 진영론을 경계해가며 실제 현실에서 정치를 제대로 하는 진성 정치인을 가치에 대한 소명을 자신을 이끄는 드라이버이자 끌개로 설정하고 이 소명을 구현하는 과제가 약속한 이득을 가져올 때 실현된 이득을 뒤에서 밀어주는 밀개이자 강화제(Reinforcer)로 만들어 둘 사이의 창의적 긴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끌개와 밀개가 거꾸로 되어 있거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정치가들도 진영론과 무관한 유사 정치가들일 뿐이다.
막스 베버는 현실 정치 속에서 끌개와 밀개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세 가지 근력도 언급한다. 세 근력은 열정, 균형, 책임감이다.
열정이란 자신이 드라이버로 설정한 가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고난 속에서도 이 가치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실현하려는 정서적 근력이다. 책임감이란 자신의 존재목적과 가치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초래한 불편이나 손해를 남들에게 떠넘기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감당하는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용기의 근력이다. 실현되지 못한 약속에 대해 지는 책임도 중요한 근력이다. 균형이란 자신이 신념과 가치가 진영론에 빠져 극단화 되거나 자기확증 편향 때문에 방향을 잃고 탈로하지 않도록 자신이 가진 삶의 나침반의 떨림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살아 있는 나침반에 근거해 제대로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력이다.
현실과 이론을 구별하지 못하는 진영론을 넘어섰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가는 유시민 작가의 생각과는 달리 A와 B는 존재하지 않고 A와 B가 다른 비율로 섞인 본질적으로 유시민 작가가 지칭하는 C와는 다른 C만 존재한다. A, B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그룹으로 설정하는 이유는 진영론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함이다.
모든 현실 정치가가 속한 하이브리드 C그룹 사람들을 통계적으로 다시 분류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이들 중 끌개와 밀개를 제대로 설정한 정치가의 비율, 거꾸로 설정한 정치가의 비율, 상황에 따라 끌개와 밀개의 위치를 바꾸는 철새 정치인의 비율, 말로는 끌개와 밀개를 제대로 설정한 것처럼 주장하는데 행동을 보면 그런 주장이 의심스러운 유사정치인의 비율을 통계적으로 계산해내 이 비율을 놓고 논쟁한다면 논쟁은 과학적 논쟁이지 정치적 진영론 싸움은 아니다.
정치가들 사이의 더 큰 내재적 변이는 베버가 언급한 열정, 책임감, 균형이라는 끌개와 밀개를 연결하는 근력에 위해서도 생긴다. 목적, 사명, 가치가 끌개로 설정되어 있고 여기서 약속한 것을 실현할 경우에 공유하는 이익이 밀개로 제대로 설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들 사이의 창조적 긴장이 유지되게 만드는 근력은 정치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상황이 어려워져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는 진정성의 힘은 베버가 언급한 세 근력이 결정한다. 이 세 근력이 탄탄한 정치가들이 진성 정치인일 것이다.
막스 베버를 자신의 입맛에 맞춰 왜곡해가며 인용하고 A와 B라는 이념적 개념을 진영론의 무기로 사용해가며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망치는 주범이다. 유권자들은 이런 진영론자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정말 국민의 행복에 기여하는 가치인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챙기고 포장하기 위해 위장된 가치인지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본인은 이처럼 개념과 현실을 왜곡한 진영론에 기반한 정치 평론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지독히 경계한다. 특히 종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사람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비현실적 개념을 현실처럼 왜곡해 자신의 만든 정치적 진영론을 상품으로 파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야구장에서 야구에 대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감독과 선수를 지속적으로 훈계하고 욕하는 제 삼의 관중일 뿐이다. 이들에게 관중석에서 내려와서 선수로 직접 뛰어보라고 주문하면 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심지어 지금은 인공지능이 이들보다 더 잘 훈수를 둘 수 있는 세상이다. 비현실적 논리에 기대어 소음을 내는 정치 평론가들이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런 논평가들이 사라져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케노시스 세상을 염원하는 것은 나 혼자 뿐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은 유시민 작가나 종편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이런 시끄러운 훈수꾼이 아니라 오늘도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끌개와 밀개를 제대로 세우고 끌개와 밀개 사이의 창조적 긴장이 풀어지지 않도록 묵묵히 근력을 훈련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런 삶의 일인칭 주체로 나서는 사람들이 만들지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것같은 비현실적 삼인칭 평론가나 훈수꾼이 만들지 않는다.
진영론에 기대어 남들 규정하는 재미에 사는 생계형 정치 평론가들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제발 이들이 개념적 이념형과 현실의 차이를 구분하고 평논할 정도의 상식을 갖춘 사람들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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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