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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길 잃은 양 한마리 명제 뇌 신경과학적 초합리성
예수의 길 잃은 양 한마리 명제
뇌 신경과학적 초합리성
신자유주의 경영 패러다임에 경도된 일부 리더십 학자들이 예수의 잃어버린 양 비유(누가복음 15장 3-7절)를 대표적 ‘비합리적 리더십의 사례’로 지목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은 100마리 가운데 99마리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는 목자가 단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기대값(expected value) 계산에서 명백히 손실을 유발하는 결정이라고 본다.
이런 설명의 배후에는 목표에 대한 도구 합리성을 추종하는 공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원배분 논리가 자리한다. 공리주의나 고전경제학은 개인의 합이 사회라는 가정하에 개인의 합리성을 더하면 집단합리성이 도출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개인의 합리성과 효율성을 도모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사회의 행복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공리주의 논리에 따르면 합리적 목자는 99마리 양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길을 잃은 한 마리는 집단 최적화를 위해 감수해야 할 희생이다.
공리주의 철학으로 무장한 신자유주의 리더십 설명은 헙리성의 측면에서도 근원적인 오류를 내포한다. 인간 집단의 작동 원리를 개인간 자원 배분의 수학으로만 환원하고, 실제로 집단동학으로 작동하는 공동체에 대한 명제가 내재화된 신경생물학적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합리성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독려해 개인들이 씨앗을 뿌리는 공동체라는 토양을 산성화 시켜 장기적으로는 개인의 이득도 놓치는 헛똑똑이 합리성을 가르친다.
뇌 신경과학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전혀 다른 결론이다. 예수의 그 행동은 비합리성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이 측정하지 못하는 초합리성(super-rationality)을 지향한다. 초합리성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공공의 목적에 주는 가치의 측면에서 기여하는 최적화 논리다. 신자유주의의 최적화 논리는 개인의 목표를 최적화하는 수단에 집중하는 부분최적화의 논리다. 더 높은 목표가 나타나면 이전의 최적화는 모두 부분 최적화로 전략한다. 부분최적화로 삶의 쳇바퀴를 돌리지만 이런 노력의 죄종 결론은 모두 시시프스의 돌굴리기로 종결된다. 인간 공동체가 추구하는 초합리성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연결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한 전체 최적화의 원리이다.
최근에 전개되는 뇌과학적 연구를 종합해보면 길 잃은 한 마리 양에 대한 사회적 배제 경험는 은유가 아니라 뇌에는 실제 통증으로 채현된다.
인간의 실제 행동과 보상에 대한 체험을 이해하려면 그간 블랙박스로 덮어 놓았던 뇌신경과학의 발견을 동원해야 한다. 예수의 행위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뇌신경계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2003년 Eisenberger 등이 《Science》에 발표한 fMRI 연구는 가상 공놀이 게임에서 배제된 참가자의 뇌에서 신체적 통증의 핵심 회로인 전대상피질(ACC)이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2011년 Kross 등은 《PNAS》에서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한 참가자에게 전 연인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신체적 통증의 감각 성분을 담당하는 이차체감각피질과 등쪽후방섬엽까지 활성화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 발견의 약리학적 함의는 더욱 충격적이다. 2010년 DeWall 등의 연구에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을 3주간 복용한 집단은 사회적 거절에 따른 고통 보고가 일상적으로 감소하였고, fMRI에서도 배제 반응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두통약이 거절의 통증을 완화한다는 사실은 사회적 배제가 ‘마음이 아프다’는 은유가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실재임을 증명한다.
길을 잃은 한 마리 양은 단순한 지리적 미아 상태가 아니다. 공동체로부터의 분리, 즉 사회적 배제가 유발하는 실제 통증의 상태다. 목자가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행위는, 신경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활성화된 통증 회로에 직접 개입하는 임상적 행위다.
도움을 주는 자가 보상을 받는 역설을 흔히 helper’s high라고 부른다. 리더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행위도 helper’ high다. 2006년 Moll 등의 《PNAS》 연구는,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자선 기부 결정이 복측 피개 영역(VTA)과 복측 선조체를 활성화하며, 순수한 금전적 보상보다 중변연계 보상 회로에서 더 강한 신호를 유발한다는 것을 밝혔다. 도파민, 옥시토신, 엔도르핀이 동시에 칵테일로 분비되는 이 상태를 연구자들은 ‘helper’s high’라 부른다.
목자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설 때, 그 목자의 뇌는 물질적 손실을 계산하는 합리성 회로만이 아니라 호르몬 칵테일 분비가 helper’s high에 해당하는 삼중 보상 체계를 가동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비용’으로 분류하는 그 행동을, 뇌의 보상 회로는 ‘이익’으로 등록한다.
목자가 체험하는 보상보다 배제된 양이 속한 집단에 대한 뇌의 보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집단적 보상을 경험한다. 99마리 나머지 양이 경험하는 상상적 배제 해소가 가져온 집단적 탈배제라는 승수효과 가져온다.
2015년 Novembre 등의 fMRI 연구는, 타인이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직접적 배제 경험과 동일한 통증 처리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목격자의 뇌는 구경꾼의 뇌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대리 배제 통증을 처리하고 있는 뇌다.
99마리 양은 한 마리가 길을 잃는 순간, 그 배제를 대리 경험한다. 그리고 더 심층적으로는 ‘저 양이 배제되었다면, 나도 길을 잃을 수 있다’는 상상적 배제 불안을 경험한다. 목자가 한 마리를 찾아 나선다는 사실은 99마리의 양이 공통으로 가진 잠재적 불안 전체를 일거에 해소하는 안전 신호(safety signal)로 작동한다. 99마리는 리더행동에 대한 목격을 통해 확신을 얻는다. ‘내가 길을 잃더라도, 나는 구조될 것이다.’
더 나아가, 목자의 행동을 목격한 99마리에게서는 ‘고양(elevation)’이라는 정서가 유발되고, 이것이 99마리 전체의 친사회성을 증폭시킨다. Fowler와 Christakis의 연구는 이 효과가 사회적 연결망을 따라 최소 세 단계 연쇄로 확산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것이 집단적 탈배제의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 of collective de-exclusion)다. 1마리 직접 구조 + 99마리의 상상적 배제 불안 해소 + 99마리의 친사회성 상승 + 3단계 연쇄 확산이라는 구조는 단순 덧셈이 아닌 비선형 증폭이다. 신자유주의적 계산법이 ‘1마리의 비용’으로 처리하는 그 행동의 실제 편익은, 집단 전체의 신경생물학적 응집력 상승이라는 차원에서 발생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초합리성이다. 뇌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이런 현상을 기적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모든 기적은 뇌를 해킹해 만든 집단적 체험이다.
신자유주의 리더십 학자들이 예수의 행동을 ‘비합리적’이라 비판할 때, 그들은 도구적 합리성의 언어로 가치합리성의 영역을 재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더 큰 문제는, 그 비판이 신경과학적으로도 틀렸다는 데 있다. 블랙박스로 생각하고 과학의 장면에서 없는 것으로 취급해왔던 뇌과학의 발견을 도입하면 단순한 자극과 행동반응을 연결해 얻은 신자유주적 행동과학 논리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효과처럼 대부분이 비합리적인 부분최적화를 위한 헛똑똑이 논리로 전락한다.
뇌과학의 발전을 인정하고 자극과 반응 사이에 뇌의 작동을 매개변수로 삽입하면 지금까지 모든 고전경제학에 기반한 합리성 원리는 집단차원에서는 대부분 반합리성 원리가 된다. 또한 매개변수로 뇌는 단순한 자극에 뱐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해석하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전제로 판단하는 등 구성주의적 증폭기다. 증폭기를 통과한 어떤 자극은 더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증폭될 수도 있지만 이런 행동이 미친 부정적 결과는 다시 뇌에 자극으로 이입되 점진적이지만 초합리적 방향으로 교정된다.
필자가 Edward Lawler, Shane Thye와 함께 30년간 연구해온 정서에 집단의 관계응집이론(Relational Cohesion Theory)은 뇌과학이 지금처럼 빌전하기 이전에도 감정과 정서가 집단에 미치는 초합리적 영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왔다. 목자가 한 마리를 찾아 나선 행위는 집단 전체의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 밀도를 재조정하는 기폭제다. 이런 초합리성이 『진성리더십』에서 논증한 존재우위(Existential Advantage)의 핵심이다.
예수의 비유가 2000년을 살아남은 것은 그것이 종교적 계율이어서가 아니다. 예수가 뇌과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어도 인간 공동체의 신경생물학적 작동 원리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통찰하고 기술했기 때문이다.
초합리성이란 도구적 이성이 측정하지 못하는 차원에서 작동하는 합리성이다. 가장 고통받는 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행위가 집단 전체의 신경생물학적 응집력을 재건한다는 사실은 진성리더십이 오늘날 초분절 수축사회를 재건해 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명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