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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의 가면을 벗고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인간으로서의 문양을 갖추기 위한 충분조건
초인의 가면을 벗고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인간으로서의 문양을 갖추기 위한 충분조건
신과 인간의 실존을 가르는 결정적인 경계는 완벽이라는 상태를 점유하고 있느냐, 아니면 타고난 결핍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있다. 신은 그 자체로 결점이 없는 완벽을 전제로 존재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본질적인 전제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실존적 면모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신과 구별되는 지점은 역설적이게도 완벽이라는 ‘초인의 가면’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찰나에 형성된다.
본래 인간은 고통과 상처라는 피할 수 없는 생의 자극을 통과하며 정신과 마음, 그리고 신체의 미성숙한 근력을 단련하고, 그 결핍을 극복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을 체험하고 학습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이런 점에서 인간에게는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경계가 필수적이다. 인간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은 경계 안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스스로 설 수 있는 근력을 만들고 이 근력을 이용해 더 큰 아픔과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경계를 조금씩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경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의 의외로 위험한 이유는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수월성은 아픔을 치유하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근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깊이 뛰기를 통해 내면적 경계를 넘을 수 있는 몸, 마음, 정신의 근력이 없는 사람이 무경계를 추앙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일이다. 인간은 안으로 깊이 뛸 수 있는 근력을 확보한 사람이 그만큼 밖으로 멀리 뛸 수 있는 근력까지 확보했을 때 멀리 뛰기한 경계와 깊이 뛰기한 경계 사이의 공간만큼 무경계를 체험한다. 밖으로 멀리 뛰기와 안으로 깊이 뛰기를 할 수 있던 그 디딤돌 경계가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는 혼돈의 가장자리(Edge of chaos)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자각하고 이 한계가 외주화 되어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경계를 세우고 근력을 보완해가며 끊임없이 조금씩 나아지는 ‘학습하는 죄인’의 형상을 띤다. 성숙이란 완벽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안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다루는 근력이 조금씩 높아지는 과정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리고 인간다운 실존을 회복하는 유일한 열쇠는 ‘상처받을 개연성(Vulnerability)’, 즉 취약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용기(Courage)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상처를 감내할 용기’를 학문적으로 가장 체계 있게 정립한 학자는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다. 아들러는 열등감이란 자신이 감내해야할 고통을 외재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이것들이 누적되어 꼬임이 발생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한 얽힌 실타레를 컴플렉스(Complex)라고 규정한다. 이런 컴플렉스라는 꼬인 실타래를 풀고 인간으로서의 희열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열쇠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에 대한 해석과 이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본의 아들러 해석가인 기시미 이치로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이런 꼬인 실타래가 자신의 내면임을 인정하고 푸는 용기에 관한 것이다.
아들러는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이 지향하는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이해한 학자다. 리더십은 자신의 열등감과 취약성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 취약성을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동체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고도의 정신적 연금술이다. 리더는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대신, 자신의 불완전함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구성원들과 격의 없는 수평적 연결을 시도한다. 만약 리더가 상처를 감내할 내면의 용기가 부족하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완벽이라는 ‘페르소나의 가면’ 뒤로 숨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가장 치명적인 징후는 ‘고통의 외주화’다. 리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실패의 상처를 부하 직원에게 전가하거나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려 드는 것이다. 이는 조직 내에 불신과 냉소를 퍼뜨리는 발단이 된다.
리더십의 핵심 요소로 꼽히는 신뢰, 책임, 헌신 역시 리더 자신이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서늘한 자각과, 눈앞에 닥친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용기에서 발원한다.
신뢰란 단순히 상대의 역량을 데이터로 검증하는 계산적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손해와 상처까지 내가 감내하겠다는 선제적 결단이다. 예를 들어, 동료에게 중차대한 과업을 맡기거나 자금을 융통해 주는 행위는 단순히 수치를 신용하는 것을 넘어, 그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겪게 될 실망과 경제적 타격이라는 취약성을 리더가 먼저 껴안는 행위다. 100만 원을 빌려주는 행위의 본질은 돈의 이동이 아니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리더십의 심리적 근육이 작동한 것이다.
책임 또한 과거의 실수를 부정하거나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발생한 고통의 현장에 리더가 직접 나서서 그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려는 용기다. 사고가 터졌을 때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기 전에 “이 상처를 내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가 리더의 책임을 완성한다.
나아가 리더가 조직의 존재 목적에 헌신한다는 것은 공동의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에게 닥칠 단기적인 대안이나 개인적 손실을 기꺼이 감수해가며 목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리더의 자기희생적 헌신이 있을 때 조직이라는 배는 비로소 사공이 많아 산으로 가는 혼선을 멈추고 공동의 목적지를 향한 응집된 열의를 잉태한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보여주는 취약성을 담보로 한 신뢰가 선행될 때, 구성원은 비로소 자신의 좁은 이익을 넘어 공동의 목적에 대한 믿음(Shared Belief)에 헌신한다. 또한 자신의 몸, 정신, 마음을 정렬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협업의 장으로 뛰어든다. 이런 협업을 통해 공동의 책무성(Shared Accountability)이 생성된다. 또한 조직이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서 리더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을 지는 모습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나도 이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공동의 책임의식(Shared Responsibility)을 흐르게 하는 강력한 도덕적 전염성을 지닌다. 목적에 대한 헌신, 협업에 기여하려는 책무성, 고통을 기꺼히 분담하려는 책임감이 갖춰진 팀과 조직을 이길 방법은 없다.
경영 현장에서 상처를 인정하지 않고 완벽주의라는 허상에 매몰된 리더는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우위에 서야만 안심하는 ‘우월성의 쳇바퀴’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오직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파괴적 우월감만 남을 뿐, 스스로의 내면적 탁월함을 기르는 ‘수월성(Excellence)’의 길은 차단된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근력을 만드는 소중한 학습의 기회를 스스로 박멸하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부모에게 유전자 복권으로 받은 머리, 재능, 외모, 능력, 등을 많이 받은 리더일수록 자신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성리더십은 이러한 아픔과 상처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리더십의 충분조건으로 설정한다. 진성리더십이 긍휼(Compassion)을 리더십 나침반의 ‘남극’으로 설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침반의 북극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북극성인 ‘존재 목적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라면, 남극은 자신의 취약성을 직면하고 타인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기반한 ‘긍휼’이다. 여기서 긍휼은 단순히 타인의 불행을 가엽게 여기는 연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용기 있게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그 고통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협업에 나서는 능동적 행위까지를 포괄한다. 세상의 변화와 위기라는 거센 바람에 따라 나침반의 북극(목적)과 남극(긍휼)이 서로 역동적으로 회전하며 정렬될 때, 조직 내에는 자연스럽게 집단적 희열과 열정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리더가 자신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업의 장을 열 때, 고통의 해소와 함께 찾아오는 공동의 기쁨, 즉 ‘신바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따라오는 숭고한 덤이다.
인간으로 문양을 만든다는 것은 완벽한 초인의 쇼가 아니라, 목적을 향한 믿음과 상처를 돌보는 긍휼이라는 두 축을 통해 조직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구도의 길이다.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구별하는 경계를 세우고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들어온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죽는 순간까지 학습으로 만든 근력이 인간의 고유한 문양이다. 자신의 문양인 근력을 만드는 “학습하는 죄인의 정신”이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숭고한 인간 정신이다. 이들만이 리더로서 개입이 종결되는 시점에 자신이 약속한 존재목적을 지키고 실현한 인간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가진 인간으로 불릴 수 것이다. 이들의 피땀으로 실현한 약속이 이들의 문양이고 이 문양들을 모여 우리는 후세에게 약속을 지킨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될 것이다.
